압수수색 공포에 떠는 나라 [아침햇발]
[아침햇발]
이춘재 | 논설위원
“압수수색을 아침 7시5분에 왔어요. 애들 학교 보내려고 깨우려던 시간이에요. 누가 벨을 누르길래 차를 빼달라는 소리인가, 하고 모니터를 봤더니 양복 입은 분이 보였어요. 몹시 당황해서 남편과 애들을 깨웠죠. 다들 파자마 바람이었죠. 이것(남편 변고)의 시작은 그거였던 것 같아요.”(중앙일보 조강수의 세상만사, 2017년 11월16일)
2017년 서울중앙지검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관련 수사를 받던 현직 부장검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계기는 아침 댓바람부터 집으로 들이닥친 압수수색이었다. 검찰 수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자랑스러운 아빠, 듬직한 남편도 국가 공권력 앞에서는 한낱 힘없는 개인에 불과하다. 한 집안의 가장이지만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가족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부장검사는 그 모멸감을 견디지 못했다.
검찰은 집 안에 노부모와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다른 곳으로 ‘피신’시킨 뒤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준칙이 있지만, 당시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고인의 빈소에서 후배 검사들의 원망과 성토를 들었다.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빈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신중하게 하고 인권침해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압수수색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 건수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39만여건으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34만여건에 비해 5만건 늘었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매년 3만건씩 늘어난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급증한 셈이다. 지금 검찰의 행태를 보면, 올해는 더 늘어났을 게 확실해 보인다.
압수수색 방식도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 내용적으로는 더 독해졌다. 언론중재나 민사소송(손해배상)으로 해결할 만한 명예훼손 사건을 마치 중대범죄 수사하듯 언론사와 기자를 압수수색한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민주화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른바 ‘대선개입 여론조작’을 수사한다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강백신)은 최근 두달 동안 전·현직 기자 6명을 압수수색했다. 첫 타깃은 9월14일 뉴스타파 기자들이었다. 한 기자는 마침 초등학생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던 참이었다. 현관문 앞에 버티고 있던 수사관은 ‘아이의 학교가 멀어서 차로 데려다주고 오겠다’는 기자의 부탁을 일축했다. 맞벌이 부부의 사정을 얘기하며 ‘의심스러우면 학교까지 같이 가자’고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공권력 앞에서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형사소송법은 압수수색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임의 제출로 압수수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고,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그 범위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이른바 ‘비례성 원칙’이다. 대법원은 2004년 폐수 무단방류 혐의를 이유로 공장과 기계는 물론 폐수운반차량까지 죄다 압수수색한 것을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혐의의 중대성과 수사의 필요성에 견줘 피압수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가 지나치다는 취지다. 기자가 고의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밝힌답시고 집까지 쳐들어가는 건 전혀 비례하지 않다. 검찰이 임의 제출을 요구했다면 기자는 기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욕심에 더 많은 근거 자료를 제출했을 것이다.
더욱 한심한 건 법원의 태도다. 법원은 검찰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법원은 그 역할을 포기한 것 같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일부 기각 포함)은 무려 99.1%에 이른다. 이쯤 되면 ‘영장 자판기’라는 조롱이 전혀 과하지 않다.
수사 개시를 위한 압수수색에는 관대한 게 법원의 관행이라고 하지만, 항상 그랬던 건 아니다. 2018년 ‘양승태 대법원’을 겨냥한 사법농단 수사에서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은 무려 90%에 달했다. 이때도 다른 일반 사건은 발부율이 90% 수준이었다. 검찰이 유독 사법농단 수사에서만 압수수색을 남발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무려 4차례나 기각했다. 영장전담판사가 밝힌 기각 사유는 ‘주거의 평온과 사생활 보장’이었다. 안락한 가정과 사생활이 판사에게만 소중한가. 디케의 저울이 너무 심하게 기울어졌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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