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폐기물' 아닌 '사용 후 배터리'..."600조 시장' 도전길 열어달라

이세연 기자 2023. 11. 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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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이제부턴 정확한 방향과 빠른 속도 중요"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앞줄 왼쪽 네 번째)과 박진원 LG에너지솔루션 부사장(앞줄 왼쪽 세 번째)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사용후 배터리 통합관리체계 업계안 전달식'에서 국내 배터리 업계 주요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3.11.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아직 개화 단계 시장이어서 각종 규제가 업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A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업계가 정부에 '사용후 배터리(폐배터리)'를 폐기물 관리 규제에서 제외해 달라고 한 배경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업계 전반의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에 발목이 잡힐 경우 600조원 규모로 성장이 예견된 세계 폐배터리 시장 각축전에 자칫 뒤쳐질 우려가 있다는 것.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14일 사용후 배터리 통합관리체계 업계안 및 관련 법률안을 담은 건의서를 정부에 공식 제출했다.

배터리 얼라이언스는 1년간의 관련 논의 끝에 공식안을 마련했다. 배터리 얼라이언스에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와 자동차사(현대자동차), 재제조·재사용·재활용 기업, 폐차업계, 보험업계 등 총 24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배터리 생태계를 구축한 사실상의 모든 관계사의 목소리인 셈이다.

현재 폐기물로 취급되고 있는 사용 후 배터리를 제품으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게 이번 건의의 핵심이다. 폐기물이 아닌 산업 활동에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새롭게 정의해 달라는 것. 업계는 폐배터리 관련 사업이 여러 부처로부터 복합적인 규제를 받고 있다는 판단에서 이 같은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 현제 폐배터리 사업은 폐기물 관리법과 자원순환법, 자동차 관리법 등의 규제를 받고 있다.

사용후 배터리를 폐기물이 아닌 '전기차에서 분리돼 재제조, 재사용 또는 재활용 대상이 되는 배터리'로 정의해 달라는게 이번 건의의 구체적 내용이다. 재제조는 상태가 좋은 폐배터리에서 배터리셀을 분리해 새로 조립한 후 전기차에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재사용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다. 재활용은 배터리 파쇄 후 리튬·니켈 등 유기금속을 회수하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재제조, 재사용, 재활용 가운데 특히 재활용 단계에 대한 규제 강도가 높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재활용 과정에서 위험성 물질이 나올수 있다는 이유에서 이를 지정폐기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부 시각 관련, 업계는 재제조와 재사용, 재활용이 사실상 같은 생산라인에서 동일한 원료를 다룬다는 점에서 위험 물질 함유량에 차이가 없다고 강조한다.

복합 규제가 이어질 경우 이제 막 시작한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 각축전에서 자칫 밀릴 수 있다는게 업계 우려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은 2030년 70조원, 2040년 230조원, 2050년 60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에서 폐차되는 전기차가 2025년 56만대에서 2040년 4227만대로 늘어나며 새롭게 개척되는 시장인 셈이다.

이 같은 시장 개화 시점에 맞춰 국내 업계는 이미 전방위적 투자에 나선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1년부터 GM과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캐나다 기반 북미 최대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회사인 Li-Cycle과 사업 협약을 맺고 기술력을 확보해왔다. SK온의 모회사인 SK 이노베이션도 수산화리튬을 회수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2025년부터 연산 6만 톤 규모의 BMR(Battery Metal Recycle) 공장을 상업 가동할 계획이다. 삼성 SDI는 사용후 배터리 재사용 업체 '피엠그로우'에 지분을 투자하고, 성일하이텍과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와 포스코, 배터리 소재사인 에코프로와 앨앤에프까지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투자했다.

업계는 이번 건의안이 수용되면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기업들은 향후 5~6년 사이에 폐배터리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선두 주자로 치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간 규제로 인해 제한됐던 부분이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박태성 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배터리 재사용·재활용에 관한 업계 최초의 단일 합의안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며, 통과 시 배터리 순환경제 체계 강화와 사용 후 배터리의 조기 산업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건의안 제출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법제도 제정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건의안 제출은 배터리 업계의 현실과 목소리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 주요한 것은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라며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해소가 늦은 만큼 속도를 내야만 한국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승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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