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메디치 문학상' 받은 한강 "이제 봄 같은 소설 쓰고파"
"소설을 쓰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작별하지 않는다> 완성한 때"
"프랑스판 제목 참 맘에 들어…언어가 달랐지만 자연스럽게 닿았다" 작별하지>
"다 주변적인 것 같아요. 상을 받은 건 물론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요. 저는 상을 받을 때가 아니라 소설을 완성한 순간이 제일 행복해요. 소설을 쓰고 완성하는 게 제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한국 작가 중 처음으로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14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껏 소설을 쓰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한 순간"이라며 "워낙 오래 걸려서, 힘겹게 썼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난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메디치 외국문학상 올해의 수상작으로 발표됐다. 메디치상은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힌다. 역대 수상자로는 밀란 쿤데라, 도리스 레싱,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등이 있다.
메디치상 발표 직후 소설은 다시금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역주행'했다. 1주일 만에 2만부가량 팔려나갔다.
이 소설 불어판은 프랑스에서는 지난 8월 말 그라세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최경란·피에르 비지우 씨가 번역했다.
'르몽드'지는 이 소설에 대해 "소설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꿈과 현실 사이의 연속체를, 독특하고 신빙성 있는 정신적 공간을 창조해내고 있다는 점"이라며 "기본적으로 한강의 소설은 페이지에 스며든 역사적 정치적 연상이든 주인공의 정신적 궤적이든 독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구성하도록 내맡긴다"고 평가했다.
2021년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소설이다. 작품 속 경하는 친구 인선이 손가락을 잘리는 사고를 당하자 빈 집과 앵무새를 살피려 인선의 제주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경하는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환영을 통해 고통의 역사를 마주한다.
경하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글을 쓰며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자전적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한 작가는 2014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뒤 이 소설을 구상했다.
한 작가는 "소설은 2021년 9월에 출간됐지만, 시작점은 2014년"이라며 "소설 첫부분에 나오는 꿈을 실제로 그 해 여름에 꿨고,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며 몇 년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설을 준비하며 악몽에 시달리면서 고통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며 "당연히 직접 사건을 겪은 분들에 비해서는 하찮은 아픔이지만, 고통은 사랑과 연결돼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 책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길 바란다"고 썼다. "폭력의 경험은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찌르고 그것을 다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깨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지극하게 사랑하면 그것이 고통과 연결되고, 또 어떤 고통은 지극한 사랑을 증거하는 것인가…. 저는 아주 깊게, 끈질기게 용감하게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상상해봤어요. 그 인물이 정심이라는 소설 속 인물이에요."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은 역사적 비극, 폭력의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다' 혹은 '기억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한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라며 "정말로 이별을 행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지만, '이별을 짓지 않는다' '이별을 고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이 소설은 정심이라는 인물의 마음에 가까이 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예요. 정심은 끝까지 애도를 멈추지 않고, 싸웠던 사람이니까요. 그 마음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작가는 불어판 제목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불어판 제목은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 그는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생략할 수 있어서 작별하지 않는 행위의 주체가 '나'일 수도 있고 '너', '우리', '그들'일 수도 있지만, 유럽어에서는 주어를 정해야 한다"며 "불어판 제목은 절묘하게 주어를 특정하지 않고 원래 의미를 살려서 참 좋았다"고 말했다.
수상을 위해 프랑스를 찾았던 한 작가는 인상 깊었던 순간에 대해 '소설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우리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역사적 맥락도 다르지만, 인간의 폭력이나 학살 경험을 우리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이 자연스럽게 가닿고 함께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소설을 쓸 때 '감각'을 중점에 뒀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독자로부터 '소설을 감각적으로 느꼈다'는 평을 들었는데요, 저는 소설을 쓸 때 감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특히 뜨겁고, 차갑고, 찔리면 아프고, 피가 흐르는 촉각적 심상이 제게 중요했어요. 차가운 눈이 내리는데 죽은 사람 몸 위에서는 눈이 녹지 않는…. 그런 감각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다만 한 작가는 앞으로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소설을) 지금 제 생각에는 더 이상 안 쓸 것 같다"며 "<소년이 온다>를 2014년에 완성했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1년에 완성을 했는데, 두 소설이 하나의 짝인 셈이라서 (오래 매달렸으니) 더 이상은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 작품은 "생명에 대한 소설"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생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며 "우리 모두 태어나서 일회적 생명을 선물받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젠가 반납을 해야 하는데,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진척시켜서 다음 소설을 쓰고 싶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밝은 소설을 쓰겠다고 너무 오래 전부터, 많이 말했는데요, 이제 그런 약속은 하지 않고요. 아마 써지는 대로 쓰겠지만…. (웃음) 제 마음은 겨울에서 봄으로 가고 싶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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