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 비판···“범죄 예방 효과 없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에 대해 시민사회·학계는 물론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흉악범죄로부터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주장하지만,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거운 형벌이 범죄 예방에 직접적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14일 열린 ‘사형제도 폐지 없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거운 형벌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점은 많은 연구에서 나오는 공통된 지적”이라며 “범죄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거운 형벌이 아니라) 확실한 형벌”이라고 했다. 범죄 발생 요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형벌과 범죄의 관계를 단순히 설명하기 어렵고, 오히려 중한 범죄일수록 형벌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론도 있다고 했다. 사형확정자들을 조사해보면 범행 당시 사형 가능성이나 처벌 수위는 고려하지 않고 검거될까봐 두려워했다는 연구도 있다.
법무부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미국은 유례없는 중형주의와 엄벌주의를 하는 나라이지만 인구 10만명 당 범죄 발생률은 오히려 높다”고 반박했다.
또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법원이 판결 선고시 결정하도록 한 것은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어떤 범죄가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해당하는지는 행위시에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죄형법정주의)이 형법 교과서 맨 앞장에 쓰여있는 내용인데, (법무부 안은) 예측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법치국가적 정형성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흉악범죄자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년이 지나 가석방 대상이 됐다고 하더라도 가석방 심사를 하는 법무부가 재범 위험성 등을 검토해 허가하지 않으면 될 일이고 별도의 법 개정 필요성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은 가해자 인권보다 피해자 인권을 먼저 생각할 때’라는 한 장관 발언도 비판했다. 그는 “피해자 인권은 매우 중요하고 저도 피해자 관련 연구를 오랫동안 했지만 이 제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인권과 가해자 인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면)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경찰행정과 교수는 “2022년 기준 전체 가석방 인원 1만310명 중 무기형 수형자는 16명이고, 이는 전국 교도소에 수용돼있는 1313명의 무기형 수형자 중 1.2%”라며 “98.8%의 무기형 수형자들은 여전히 엄중한 통제와 감독 아래 무기한의 구금상태에 있으므로 현재의 무기형 제도가 결코 허술하게 운영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가 폐지될 경우 대체형벌 중 하나로 논의된 적이 있지만 이조차도 인간 존엄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더구나 현재 법무부 안은 사형제 폐지를 전제한 것도 아니다. 이 교수는 “법무부가 정말 대체형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논의를 하면 여러 논의 결과가 제시되겠지만 그런 내용이 하나도 없다”면서 “과연 법무부가 무기형 제도 전반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토론회는 사형제도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연석회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박용진·박주민·이탄희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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