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황정민·정우성에 소름 돋은 사연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2023. 11. 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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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충무로의 중견 김성수 감독이 일을 제대로 냈다. 신작 '서울의 봄'으로 연출 장인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위기의 한국 영화계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서울의 봄'은 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이 벗겨진 바, 가히 올해 최고 기대작다운 웰메이드 완성도로 평단의 만장일치 호평 세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영화는 실시간 예매율 20%가 넘는 압도적인 수치로 1위를 차지, 예비 관객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중이다. 김성수 감독은 13일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호평과 예매율 1위라니, 얼떨떨하다. 관객분들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고 그래도 아직은 개봉 전이니까 그저 좋은 마음으로 잘 되길 바라고 있다"는 소감을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이 지난 2016년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아수리언'이라는 마니아 팬층까지 형성했던 흥행 주역 황정민, 정우성과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 특히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기며 화제를 더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담아냈다. 황정민은 신군부의 주축인 보안사령관 전두광, 정우성은 수도경비 사령관 이태신을 연기했다. 각각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장태완 전 수도경비 사령관을 모티프로 삼은 역할이다.  

먼저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을 맞이하기까지, 한차례 고사할 정도로 고뇌했던 시간들을 들려줬다. 그는 "사나이픽처스와 '아수라'를 함께한 뒤 또 다른 작품을 같이 오랫동안 준비했다. 시나리오도 썼으나 진행이 잘 안 됐다. 그러다 2019년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님으로부터 '서울의 봄' 대본을 받은 거다. 여러 명이 쓰신 거였는데 처음 받았을 때부터 시나리오를 정말 잘 썼다고 느꼈다. 제가 어릴 적 한남동에서 살았을 때 실제로 (당시 故 정승화 계엄사령관) 납치되는 소리를 듣고 그쪽에 가서 총격전을 듣다가 왔었다. 저한테는 뜨거운 기억이라, 대본을 받는 순간 전율이 올라오더라"라고 작품과 범상치 않은 인연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주저했던 이유에 대해선 "항상 꿈꾸던 일이 벌어졌는데, 막상 대본을 받으니 자신이 없고 겁이 났다. 그리고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지만 전두광 위주로 되어 있었다. 이태신 역할의 비중이 조금 작고 캐릭터도 많이 달랐다. 대본은 재밌게 읽기야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잘못 만들면 반란군 승리 중심의 영화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악당이 주인공이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이 영화를 만드는 취지가 없어지는 것이라 고민이 된 거다"라고 설명했다.

김성수 감독은 "대표님께 생각을 좀 해본다고 했는데 '서울의 봄'을 본 이후로 저는 거기에 갇혀버렸다. 도망가질 못하고 계속 그 생각을 했고 결국 10개월쯤 지났을 무렵, 2020년 여름에 용기를 냈다. 하겠다고 한 뒤 대신 내가 대본을 고쳐보겠다고 그랬다"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성수 감독이 직접 각색에 참여하며 전두광과 이태신의 팽팽한 대립각이 흥미로운, 지금의 '서울의 봄'이 탄생된 것. 그는 "이 영화가 그 사람(전두환)만을 겨냥한 영화는 아니니까. 제가 '서울의 봄'을 한 건 단순히 '그 사람이 나빴어요'를 말하고자 했던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저 나름대로 현재성이 있다고 봤다. 제가 어릴 때 겪은 역사의 변곡점, 거대한 떡고물을 향해 움직인 무리와 그들의 돌발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 욕망의 일렁거림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하룻밤 사이에 바뀌었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 9시간 동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지.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선 항상 중요한 변곡점이 될 만한 일들이 벌어졌는데 12·12 사태를 다룬 건 제 개인의 삶에 중요한 모멘텀이 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을 수 없다'라고 말한 떳떳한 분들이라 그런지 더욱 그날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여겨졌다"라고 작품 의도를 짚었다.

그는 "총격전을 들었을 당시엔 어떤 사건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가 훗날 하나회를 색출했다는 심층 보도를 보고 알게 되었다. 감히 말씀드리면 내 인생에서 수수께끼 중에 하나가 풀린 거다. 그런데 내막을 알았을 때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 화가 많이 났다. 너무 속상했고. 이 짧은 시간 중요하신 분들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함부로 결정한 행동 때문에 우리나라가, 나의 20대가 최루탄 연기 속에 흘러갔다는 생각에.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를 겪은 사람들은 다 공통된 생각이었을 거다. 그래서 감독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했지만 아무래도 엄숙했던 시대라 엄두가 안 났다. 막연히 까발리면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용기를 못 낸 거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9년 시나리오를 받아서 깜짝 놀랐다"라고 거듭 '서울의 봄'과의 남다른 인연을 얘기했다.

전두광 캐릭터만 실존 인물과 싱크로율을 맞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수 감독은 "모든 인물을 다 그대로 구현하기엔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너무 실화 베이스에 근거하다 보니까 오히려 발목이 잡혀서 이야기를 잘 못 끌어내겠더라. 그래서 역할들의 이름을 바꿨고, 비로소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의 기조는 '관객분들이 재밌게 봐야 한다'니까. 다만 '서울의 봄'을 만든 이유가 거대한 욕망을 품은 사람한테 동조하면서 탐욕의 수레바퀴가 만들어지고 그게 굴러가며 나라를 망가뜨렸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니까, 이 핵심 인물의 상징성만은 갖고 출발해야 한다고 봤다. 황정민 또한 자기 모습을 완전히 지우는 것에 동의했고.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해서 비주얼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의 대머리 분장을 보여드리기까지 여러 번의 시도를 거쳤고, 영화에서도 다섯 개 버전의 가발이 사용됐다. 주름까지 표현할 정도로 저희들끼리는 너무나 험난한 과정을 통해 형상화되었다"라고 디테일을 자랑했다.

여기에 황정민의 신들린 명품 열연으로 객석의 혼을 쏙 빼놓은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제가 '서울의 봄'을 만들며 제일 두려워한 부분이 바로 악당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였다. 우리 영화는 그렇게 되면 만든 뜻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니까. 정말 예의주시하며 찍었는데 황정민이 연기하는 순간부터 내려놨다. 사실 늑대 무리의 왕이라는 건 영화적으론 매력적인 설정 아니냐. 근데 황정민이 워낙 스킬이 있어서 그걸 본인이 최대한 차단하더라. 현장에서도 항상 전두광 그 자체로 앉아있었다"라고 공을 돌렸다.

또 황정민에 대해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는 가족사진 소품을 위한 촬영도 전두광으로서 세밀하게 해석하셨다. 저는 전두광이 가족들과 있을 땐 그래도 따뜻한 아버지일 거란 생각에 웃는 모습을 부탁드렸는데, 스태프가 가져온 사진을 보니 웃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래서 왜 그랬는지 물었더니 황정민이 '전두광은 그런 모습 없어요'라고 답하더라. 그 말을 듣고 저도 바로 알아들었다. 황정민은 이렇게 카메라에 정말 살짝 보이는 것까지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미가 드러날 수 있는 요소를 아예 차단해서 연기하는데, 경지에 도달한 배우들은 저렇게 하는구나 싶어 놀라웠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우성과는 무려 다섯 번째 협업.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아수라' 등을 함께했다. 김성수 감독은 "정우성은 굉장히 순수하고 인간이 괜찮다. '비트' 이후 지금까지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여러 작품도 함께하고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도 나누며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라고 끈끈한 신뢰를 내세웠다.

'나라 지키는 군인' 강직한 신념의 이태신 캐릭터는 꼭 정우성이어야 했다고. 이에 대해 김성수 감독은 "사실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래 이태신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분은 전두광보다 더 불같고 호랑이처럼 무시무시하다. 바꾼 이유는 뭐냐면 전두광에 비해 이태신은 점차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중에는 외로이 홀로 남아야 하는데 그랬을 때 흔들림 없고 지조 있는 선비처럼 보였으면 해서다. 품위와 자기 고집을 가진 남자였으면 했다. 마초같이 크게 소리 지르는 그런 강력한 리더보다 오히려 이렇게 설득력 있고 믿음이 가는 사람한테 요즘 관객들은 더 감정이입할 거라고 봤기 때문에. 그래서 이태신을 화내거나 강압적인 훈계 이런 게 아예 없는 사람으로 바꾼 거다. 정우성이 그런 실질적인 선한 이미지라, 녹여내면 좋겠다 싶어서 그가 하도록 시나리오를 고쳤다. 근데 정우성이 '헌트'를 했다고 고사하더라. 한다고 할 때까지 괴롭혔다(웃음). 제 생각엔 '헌트'는 우리 작품과 달리 실존 인물에 대한 부분이 강하지 않고 상황극이 세니까, 괜찮을 거라 봤다"라고 섭외 뒷이야기를 전했다. 

다섯 번째 작업이지만, '서울의 봄' 속 정우성은 또 달랐다는 김성수 감독. 그는 "저는 정우성이 특히 외로움을 잘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정우성 본인은 '서울의 봄'을 찍을 때 좀 너무 고독할 정도로 외롭다고 했는데, 저는 마음속으로 '당신은 그렇게 느껴야 해. 그게 맞는 것이고' 하며 좋아했다. 이건 연기의 영역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넘볼 수 없는 정우성만의 분위기다. 이태신 역할이 어떻게 보면 낭떠러지에 떠밀려 혼자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의 느낌을 풍겨야 했다. 정우성의 일상생활에서, 그가 서 있는 위치와 입장 때문에 오는 그런 느낌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고 봤다. 정우성의 평상시 이미지가 이태신과 닮아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고쳐 쓴 것이고 저는 좀 투영했으면 싶었다"라고 정우성 본연의 인간적인 매력을 높이 샀다.

김성수 감독은 "근데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정우성이 불편한지 '왜 자꾸 역할 얘기를 하는데 내 행동에 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느냐' 묻더라. 정우성은 난 나로부터 출발하여 이태신으로 가는 먼 길을 여행해 겨우 여기까지 와 있는데 자꾸 뒤돌아보면서 '원래 나를 갖고 와' 하는 그런 디렉션이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 저는 아무튼 당신이 여기 서서 하는 행동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걸 했을 때 '정우성 같은 느낌이 있다' 그걸 포착하고 싶다 그랬다. 그제야 정우성이 지금부터 의견 안 내고 자신의 연기를 할 테니 좋으면 좋다, 아니면 다른 걸 해달라 하더라. 저는 정우성과 이런 약간의 냉랭한 분위기도 좋았다(웃음). 정우성이 현장에서도 철저히 고립되어 혼자된 상태로 그렇게 하는 게 좋더라. 극 말미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는 장면이 제가 말한 정우성만의 분위기가 포착된 순간인데, 그때 진짜 이태신처럼 보였다. 아 저 사람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못한 혼자만의 분노, 생각을 담고 전두광에게 향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라고 엄지를 척 내밀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의 봄'은 배우 정해인과 이준혁의 특별출연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김성수 감독은 "정해인은 넷플릭스 'D.P.'를 보고 완전히 좋아하게 되어 섭외했다"라고 팬심을 고백하면서 "이준혁은 아주 작은 역할이라 죄송한 제안을 드렸는데 선뜻 좋은 영화에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하더라. 그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맡은 역할처럼 실제로도 그런 진중한 분인 거 같았다. 액션도 굉장히 잘하셔서 좀 길게 찍었는데, 최종 편집본에서 러닝타임 때문에 결국 덜어냈다.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이준혁이 전혀 상관없다고, 영화가 훨씬 중요하다고 하시더라"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다.

정우성부터 정해인, 이준혁까지 훈남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보호본능을 자극했다는 반응에 김성수 감독은 "잘생김을 노린 게 없지 않아 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성수 감독의 숙원사업이었던 '서울의 봄', 마침내 22일 관객들과 만날 일만 남았다. 그는 "황정민, 정우성이 '서울의 봄'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더라.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도 다들 진정되지 않은 상태로 헤어졌다. 다음날 황정민과 통화했는데 좋은 영화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정우성도 기가 다 빨릴 정도로 잘 봤다고 하더라. 내내 짊어지고 다닌 건 아니지만 인생의 숙제를 풀어 홀가분한 게 있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욕먹는데' '이렇게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함께하는데 영화를 못 만들면 정말 평생 동안 욕먹겠지' 이런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제가 보기엔 미흡한 점이 많은데 다행히 주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 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끝으로 김성수 감독은 "제가 '서울의 봄'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뭐냐면 중요한 순간 속에서 선한 사람들과 탐욕스러운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의미에서 저에게 영화적 재료가 된 거다. 제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역사는 이렇게 하찮은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말하고자 했다. 관객분들이 이 상황 안에 들어가서 옆에서 보시고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 이게 핵심 포인트였다. 그래서 제 야망이자 원대한 포부는 젊은 관객분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하는 거다. 각자의 관점으로 들여다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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