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해진 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 업권…내후년부터 응급체계 현실화

정심교 기자 2023. 11. 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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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부터 권역응급센터 내 임상병리사·방사선사 의무 배치
응급구조사, 응급환자 정맥로 확보 후 정맥혈 채혈 업무 첫 명시

오는 2025년부터 전국의 권역응급의료센터 내에 임상병리사·방사선사가 의무적으로 배치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기준 가운데 인력 확보 규정을 신설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시설 기준, 장비 기준에 따라 응급환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검사하기 위해 임상병리사·방사선사 등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일반 운영기준 항목에 새로 생겼다.

의료기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치과기공사·치과위생사)의 한 직군인 임상병리사는 의사·치과의사의 지도에 따라 의화학적(醫化學的) 검사를 실시한다. 환자의 질병을 진단·치료·예방하기 위해 혈액·체액·세포·조직 등 검사물을 채취·검사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심전도 측정, 정맥 채혈 등의 업무도 포함돼있다. 임상병리사가 되려면 복지부 장관이 발부하는 임상병리사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지난 3월 이후 7만2000여 명의 단체인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측은 면허를 받지 않는 '응급구조사'가 면허를 받아야 하는 임상병리사의 업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이는 당시 복지부가 '2023년 제1차 중앙응급의료위원회'에서 제출한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안 때문인데, 이 조정안에 따르면 '응급구조사가 병원 응급실 등에서 정맥혈 채혈, 심전도 측정 및 전송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병원 응급실 등에서 면허가 없는 응급구조사에게 이들 검사 업무를 수행하게 해주는 건 불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현재까지 응급구조사는 구급차 안에서만 합법적으로 심전도 검사, 채혈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구급차에서 내려 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하면 그 순간부터는 심전도 측정, 정맥 채혈 등의 업무를 임상병리사가 담당해야 한다는 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측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조정안이 적용될 경우 응급구조사가 병원 응급실뿐만 아니라 병원 내 어디든지 환자의 정맥혈을 뽑고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임상병리사 측의 우려였다.

이에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지난 3월 30일 전·현직·예비 임상병리사 500여 명과 함께 충북 오송의 복지부 앞에서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검사와 채혈은 병원 밖 현장 이송 단계에서만 하게 하라"고 외치며 게릴라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중증의 응급환자에 대해 응급구조사가 구급차 안에서 응급처치하고, 이후 병원 응급실부터는 임상병리사에게 넘기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업무 범위 중 '정맥로 확보'도 있는데,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가 정맥로를 확보한 후 임상병리사가 올 때까지 정맥혈 채혈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있었다. 또 병원 대부분은 임상병리사가 응급실이 아닌 진단검사의학과나 채혈실 등에 상주하는데, 응급환자가 도착할 때 빠르게 도착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2025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실린 1급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임상병리사와 업무 충돌이 예상된 '아' 항목의 '심전도 측정 및 전송' 업무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내 응급실에 한한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사진=응급의료법 개정안 캡처.

이에 복지부가 이번에 내놓은 개정안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센터 내에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를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의 응급환자를 중심으로 진료하는 곳으로, 대형 재해가 발생했을 때 응급의료를 지원하고, 특정 지역 내 다른 의료기관에서 이송되는 중증 응급의료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권역별로 지정된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 이상의 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 14일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임상병리사를 의무적으로 두게 된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응급실에 상주한 임상병리사가 응급상황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게 돼서다.

응급구조사(1급)의 심전도 측정 및 전송 업무에 대해서는 '병원 응급실 등'으로 병원 내 장소가 특정되지 않았던 기존 조정안에서 '의료기관 안에서는 응급실 내에 한한다'는 내용으로 명시됐다. 장인호 협회장은 "중증의 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실려 올 경우 상주하는 임상병리사, 환자를 응급처치해온 응급구조사 모두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 회장은 "환자가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비 중증 응급환자가 도착할 경우 임상병리사가 응급실 내에서 정맥혈 채혈, 심전도 측정 등 임상병리사 면허 범위 내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응급구조사단체인 대한응급구조사협회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강용수 대한응급구조사협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존엔 응급구조사의 업무가 '응급처치'로 표현돼 업무 범위가 애매하고 타 직역과 충돌할 수 있었지만, 이번 개정안은 현실을 반영해 구체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개정안에선 1급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 가운데 '정맥로의 확보 시 정맥혈 채혈 업무'가 새로 명시됐다. 강 협회장은 "응급구조사가 정맥로를 확보하고, 확보한 정맥로를 통해 정맥혈을 뽑는 것까지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로 명시된 건 분초를 다투는 응급 현장에서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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