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IRA' EU 핵심원자재법, 마지막 관문 통과…문제는 자금줄
유럽연합(EU)이 13일(현지시간) 핵심 원자재의 제3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핵심원자재법(CRMA)' 최종안에 합의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에 맞서려는 조치다. 다만 일각에서는 역내 자본과 조달 능력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이란 비판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간) EU집행위원회는 성명문을 통해 이날 27개국으로 구성된 핵심원자재이사회와, 유럽의회, EU집행위 간 3자 협상을 통해 CRMA 최종안을 잠정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협상은 CRMA 입법 절차의 가장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졌다. 합의를 마치고 나면 형식적 절차인 핵심원자재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 시행이 확정된다. 이르면 내년 초 발효될 전망이다.
EU는 이번 협상을 통해 초안을 일부 수정했다. 쟁점 사항이던 원자재 재활용 비율을 종전 15%에서 25%로 상향 조정했다. 역내 원자재 채굴 목표치는 10%로, 가공 및 처리 비율은 40%로 설정했다. 목표치라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인프라 투자 확대, 보조금 지원 등 후속 조치가 잇따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EU가 재활용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EU에서 판매되는 제품 원자재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추후 재활용 비율 정보공개와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이미 전기차 모터의 필수 부품인 영구자석의 경우 별도로 원자재 재활용 비율에 관한 정보 공개 의무화 조처가 초안에 명시된 바 있다.
EU 집행위는 항공 우주, 신재생에너지 등 핵심 산업 분야에 사용되는 16가지 '전략 원자재'에 알루미늄을 추가했다. 초안에서 전략 원자재로 분류한 천연 흑연 외에 합성 흑연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신규 원자재 추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최대 27개월 이내, 가공·재활용 프로젝트는 15개월 이내로 사업 허가에 걸리는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방안도 합의됐다.
EU는 지난 3월 CRMA 초안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제3국에서 생산한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EU 전체 소비량의 65%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원자재 공급선을 다각화하기 위한 취지다.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을 확대하는 점에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사하다.
CRMA 발효가 임박하자 섣부른 입법이란 비판이 나온다. 원자재 채굴 및 가공 프로젝트를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유럽 금융업계의 투자가 부진해서다. 유럽 금융업계는 위험도가 높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했다. 실제 EU 통계에 따르면 유럽은 지난해 세계 원자재의 25~30%를 소비했지만, 광물 자원 탐사에 대한 지출은 3%에 그친다.
EU 광산업계의 조달 역량도 부족한 상황이다. 글렌코어(스위스), 리오 틴토(영국), BHP(호주) 등 세계 전역에서 리튬 등 핵심 원자재를 조달할 수 있는 글로벌 광산업체도 유럽에는 없다.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200대 글로벌 광산업체 중 EU 회원국 내에 기반을 둔 기업은 6곳에 불과했다.
공적 자금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향후 원자재 확보에 난항을 겪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자본과 조달 노하우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적 보조금의 원천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초 EU 집행위는 27개국이 공동 출자한 유럽 공공기금(European Sovereignty Fund)을 조성하려 했지만, 일부 국가의 반대로 결성이 불투명한 상태다.
유럽의 싱크탱크 카네기 유럽의 올리비아 라자드 연구원은 "EU는 중국의 압박과 미국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금이 없는 상태다"라며 "사실상 우주선 없이 달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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