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갈 때 목욕도 시켜주세요”…어린이집 교사에게 이런 요구 ‘금지’

손덕호 기자 2023. 11. 1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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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상담·민원 시스템 도입
부모 방문·유선 상담 최소 하루 전 예약
보육 교사, 부모가 개인 휴대전화로 민원 제기하면 응대 거부 가능

“선생님, 아이들이 너무 놀기만 하는 것 같아요. 글자 읽기, 쓰기 지도도 부탁드려요.”

“저희 아기 기저귀 갈 때 목욕까지 다 씻겨주세요.”

“저희 아이는 더위를 많이 타니까 종일 음료수를 시원하게 보관해주세요.”

서울시가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들에게 배포할 ‘부모가 알아야 할 어린이집 이용 안내서’에 담긴 부모의 부당한 요청 사례다.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한 어린이집 교사와 아이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14일 어린이집 보육 교사 등 보육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반영해 보육 교직원들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5대 개선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진 가운데,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 권익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대책이다.

서울시가 이 같은 대책을 마련한 것은 보육 교직원의 권익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3년 마다 실시하는 ‘전국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육 교직원 30.1%가 권리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 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아동학대를 했다는 의심을 받은 경험이 있는 보육 교직원은 21.6%였고, 이 가운데 36%는 신고로 이어졌다. 이 중 실제 처벌을 받은 경우는 4.6%였고, 처벌받지 않은 비율은 95.4%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의심 사례는 아동학대와 거리가 먼데, 소송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육 교직원은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시가 마련한 ‘보육 교직원 권익보호 5대 개선대책’은 권익 침해를 예방하고 보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체계와 제도를 마련하고, 권익 침해가 발생했을 때 법적·심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관련 제도 마련과 준비를 거쳐 내년 3월 새 학기부터 시내 모든 어린이집에 적용한다.

먼저 상담·민원 응대 시스템을 마련한다. 현재는 일관된 기준이 없어서 부모가 보육 교사에게 업무시간이 끝난 뒤 개인 번호로 연락해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보육 교사의 개인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근무 시간이 아니거나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경우 상담을 거부할 수 있다. 방문·유선 상담은 최소 하루 전 예약해야 한다. 상담 중 폭언·협박을 하면 즉시 중단할 수 있다. 보육 교직원은 부모가 개인 휴대전화로 민원을 제기하면 응대를 거부할 수 있다.

또 이런 내용으로 마련한 상담·민원 응대 시스템을 실제 어린이집에 적용하기 위해 어린이집별로 ‘보육교직원 권익보호 규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사·원장·부모 등 3주체의 책무, 보육활동 침해 유형, 권익 보호 대응 절차 등을 명시한 규칙 표준안을 마련해 어린이집에 배포한다. 개별 어린이집은 이 표준안을 참고해서 운영위원회를 통해 규칙을 제정·시행한다.

부모가 새롭게 시행되는 제도를 미처 인지하지 못해서 불필요한 요청을 하는 일이 없도록 ‘부모가 알아야 할 어린이집 이용 안내서’도 제작한다. 이용 안내서에는 보육 과정의 이해, 보호자의 의무, 보육교사 전문성 인정의 필요성 등 어린이집을 이용할 때 부모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담긴다. 어린이집 신규 입소 또는 매 학기 초 오리엔테이션 때 제공한다. 서울시는 어린이집 이용 에티켓을 동영상으로도 제작해 부모 교육 시 활용한다.

실제 권익 침해가 발생하면 대응할 수 있게 전 어린이집은 어린이집 안전공제회에서 운영하는 형사보험에 단체 가입하도록 하고 변호사 선임비 등 형사방어 비용도 지원한다. 현재는 개별 어린이집에서 가입비를 전액 부담해야 해서 가입률이 63%에 불과하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어린이집 소속 보육 교직원은 업무상 과실치상이나 정서 학대 의심으로 신고가 접수되거나 소송이 제기되면 홀로 대응해야 했다.

보육교직원의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마음건강을 챙기기 위한 ‘찾아가는 심리상담 버스’를 도입한다. 상담버스가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보육교직원의 심리와 스트레스 상태를 측정하고 상담한다. 보육 교직원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상담실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서울시는 어린이집 근무 환경도 개선하고 있다. 보육 교사 1명이 돌보는 아동 수를 줄이고 보육 품질은 높이는 사업을 400개 어린이집에서 추진하고 있다. 보육교사가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가를 부담없이 쓸 수 있도록 어린이집에 정규인력을 배치하는 ‘서울형 전임교사’를 300곳에서 추진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2023 서울 보육인 한마당 축제’에 참석해 보육 교직원 권익보호 5대 개선대책을 소개했다. 오 시장은 “보육 교직원이 학부모의 민원에서 벗어나 보육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육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5대 개선대책을 마련했다”며 “’아이 키우기 좋고 보육인이 행복하게 일하는, 보육특별시 서울’로 가는 길에 보육인 여러분이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 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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