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굽혀 사과한 박민 KBS사장 "편파 보도 기자·PD 즉각 업무 배제"

노지민 기자 2023. 11. 1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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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사장, 앵커 기습 교체에 "구체적 과정 정확하게 모르고 개입한 적 없어"
'뉴스타파 인용보도' 3000만 원 과징금 부과에"겸허하게 수용하겠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박민 KBS 신임 사장이 14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힌 뒤 이춘호 전략기획실장, 김동윤 편성본부장, 장한식 보도본부장, 임세형 제작1본부장, 조봉호 경영본부장 등과 허리를 굽혀 사과 인사를 했다.

박 사장은 '불공정 보도' 사례로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보도, 고 장자연씨 사망 사건 관련 윤지오씨 출연, '오세훈 시장 생태탕 의혹' 보도, 지난해 대선 직전 '김만배 녹취'(뉴스타파 인용) 보도 등을 들었다. 그는 “이런 대표적 사례 외에도 KBS 뉴스는 지난 몇 년간 불공정 편파 보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TV나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일부 진행자가 일방적으로 한쪽 진영의 편을 들거나 패널 선정이 편향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떤 프로그램은 공정성 논란으로 방심위로부터 무려 40건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2023년 11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박민 KBS 사장과 신임 본부장들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KBS

박 사장은 이어 “불공정 편파 보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해당 기자나 PD는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최대한 엄정하게 징계하겠다. 오보 사례의 재발을 막기위해 주요 불공정 방송의 경위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백서를 발간하겠다. 회사측이 해당 사안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살펴서 필요하다면 추가 조치도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불공정, 편파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강도 높은 대책'으로는 △무분별한 속보 경쟁을 하지 않을 것 △확인된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을 구분하고 익명 보도를 자제 △'팩트체크'를 활성화하고 오보 발생 시 바로 사과 △정정보도는 원칙적으로 뉴스 첫 머리에 보도 △불공정 보도로 논란이 될 경우 잘잘못 따져 책임 물을 것 △의도적이고 중대한 오보에 대해 국장과 본부장 등 지휘라인까지 문책 등을 제시했다.

KBS '방만경영' 지적에 대해선 “임원들은 경영이 정상화될때까지 솔선수범해 임금 30%를 반납하겠다. 나머지 간부와 직원들도 동참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명예퇴직을 확대 실시해 역삼각형의 비효율적인 인력 구조를 개선하겠다. 그래도 인력 운용의 효율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도 검토하겠다. 인사·승진, 예산 제도도 전면 쇄신하겠다”고 했다. 또한 “예산에서 가장 큰 부분인 제작비 낭비는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 제작진의 능력과 무관한 순번식 제작 관행을 없애고 능력있고 검증된 연출자를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사장은 '공정성' '편파 보도'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KBS가 마련해야 할 공정성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그는 “공정의 핵심은 정확성, 균형성, 객관성”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공정 보도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도 “정확과 균형, 객관”이라면서 “정확성을 기하려면 속도보다 보도되는 내용, 뉴스 취재원이 누군지, 사실관계가 정확한지, 배경은 뭔지에 대한 충분한 확인 취재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불공정 사례로 언급한 보도를 선정한 기준에 대해선 “내부에서 들어보면 KBS 구성원조차도 가장 많이 기억하는 사건 네 가지”라고 했다.

대규모 인사가 급박하게 이뤄진 이유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박 사장은 임명 당일인 12일부터 본부장, 국·실장, 부장 등 72명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14일에도 부장급 중심의 102명 인사 발령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이 취임하기도 전에 정식 권한 없는 인사들이 '뉴스광장' '주진우 라이브' 앵커 하차를 종용 내지 지시하고, '뉴스9' '최강시사' 앵커 하차 결정이 통보되는 등 편성규약과 방송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2023년 11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한 박민 KBS 사장. 사진=KBS

박 사장은 이번 인사 배경에 대해 “저는 본부장을 중심으로 능력과 성과, 또 사내 안팎의 평가를 중심으로 잠정적인 분들을 정한 다음에 그분들이 전면적으로 전권을 가지고 본부 내 인사를 하도록 국실장 인사, 밑에 부장 인사까지 하도록 했다”며 “제가 각 본부 국장과 부장에 대해 개입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메인 앵커 등 교체를 한밤에 기습작전 펼치듯 강행한 배경'에 대해선 “사장으로서 특정 프로그램의 개폐나 방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역할·책무를 제대로 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들을 점검해서 적당한 대책을 협의해 추진을 하라 지시를 한 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이후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모르고 개입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뉴스 진행자교체를 물으셨으니 보도본부장에게 설명을 들어보겠다”고 말하며 공을 넘겼다.

이에 장한식 보도본부장은 “뉴스 진행자 교체 부분은 새로운 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새롭고 달라진 KBS 뉴스를 보여주자, 더 완전하게 공정한 뉴스를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기존 앵커의 교체를 결정했다. 그에 따라서 기존 진행자들에게는 하차 사실을 정중하게 통보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뉴스 앵커 교체에서 역시 '공정'을 평가하는 기준과 절차에 대해선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박 사장을 둘러싼 자격요건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해임된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법인카드 사용 의혹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받는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해임된 가운데, 박 사장도 문화일보 재직 중 기업 자문역 활동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신고로 권익위 조사를 받고 있다. 박 사장은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권익위에서 현장 조사를 네 분이 나와서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 그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KBS의 과거 '뉴스타파'(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에 과징금 3000만 원을 부과한 사안에 대해선 “보도 경위나 내용을 보니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방통심의위 결정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답했다. 같은 인용 보도로 과징금을 부과 받은 MBC의 안형준 사장이 이를 “언론 입막음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JTBC도 재심 청구 방침을 밝힌 것과 대비되는 입장이다. 법정 제재인 과징금은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감점 사유로 적용된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은 박 사장이 후보자 공모에 지원하면서부터 밝혔던 주요 공약이다. 그러나 약 40분간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선 거듭 '10개까지 질문을 받겠다'는 공지가 이뤄지고, 실시간 생중계 또는 사후 중계가 차단되는 등 '대국민'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지점들이 눈에 띄었다. 박 사장은 이날 “시청자들이 이런 부분은 앞으로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이런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이런 자리를 마다하지 않겠다. 부르시면 언제든지 나와서 답변하고 사과하고 반성하고 다시 고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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