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0대 건물주 살인사건…쪽방촌 재개발이 부른 비극이었나
40대 모텔 주인도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
피해자와 영등포 재개발 문제로 반목
경찰 “범행 동기, 다차원적으로 수사”
서울 영등포구 80대 건물주 살인사건에서 살해 용의자를 숨기고 폐쇄회로(CC)TV를 지운 40대 모텔 주인 조모씨가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피살된 건물주와 갈등을 빚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경찰은 14일 조씨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고 흉기를 휘두른 30대 주차관리원 김모씨와 조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조씨는 2021년 영등포 쪽방촌 주민 대책위원장을 맡아 일대 재개발 사업에 관여하려 했다.
유족들과 인근 주민들은 조씨와 피해자 A씨가 지난해부터 영등포 일대 재개발 문제로 반목했다고 전했다. 재개발 조합장을 하겠다고 나선 조씨를 A씨와 아들들이 반대해 사이가 틀어졌다는 것이다. A씨 일가는 영등포 공공주택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 큰 지분을 갖고 있어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A씨의 유족 측은 “조씨는 자신이 조합장이 되면 ‘1억원 받을 것에서 1000만원, 2000만원을 더 받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다녔다”며 “하지만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는 게 수상해 우리가 계속 반대했다”고 했다. 이어 “조씨는 그 이후로 우리를 아주 싫어했다. ‘내가 돈 댈 사람을 많이 안다. 저들을 망하게 해서 경매 넘어가면 그 사람들을 끼고 지휘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지난해까지 영등포 재개발 사업에 관여하며 목소리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상인들은 조씨가 지난해 8월까지도 “300억원 보상을 받게 해주겠다. 30%는 나를 달라”며 A씨를 설득했다고 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조씨는 A씨로부터 임차한 주차장 관리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A씨는 조씨와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조씨는 서울역 동자동 쪽방촌에서도 건물소유주 등 20여명 정도를 모아 사업을 벌이는 등 재개발 사업 추진에 관여했다고 한다. 2021년 동자동 민간개발에 관여한 한 건물주는 조씨가 그 무렵부터 동자동에 혼자 와 건물주를 한 명씩 만나고 다니며 설명회를 했다고 했다. 그는 “토지 소유주들이 자식에게 높은 가격에 땅을 팔아 사전에 시세를 높여야 한다더니, 민간개발 찬성 세력과 협력이 틀어진 후 네이버 밴드 등에서 서로 욕을 하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동자동의 한 쪽방촌 활동가는 “2021년 정부가 후암1구역에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하기 전날 조씨가 어머니의 1평짜리 땅을 자기 명의로 등기를 올렸다”며 “앞서 영등포 쪽방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개발 정보를 미리 흘려들은 게 아니냐, 브로커가 아니냐는 뒷말이 많았다”고 했다. 이들은 사업이 표류한 뒤로는 조씨를 동자동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
A씨를 살해한 주차관리인 김씨는 조씨가 운영하는 모텔에서 숙식하며 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상인 B씨는 “김씨가 주차장 박스에서 24시간 먹고 자며, 모텔을 청소하면서도 조씨의 말이라면 무조건 충성했다”고 했다. A씨의 유족은 “지난 10일 A씨와 조씨 사이에 말싸움이 있었는데, 그게 (범행의) 기폭제가 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김씨는 지적장애 2급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지난 12일 오전 10시쯤 영등포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A씨의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살인 이후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조씨의 모텔로 도주했다가 KTX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후 9시32분쯤 강원도 강릉 KTX 역사에서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조씨는 도주 경로를 비추는 CCTV를 삭제하고 혈흔을 닦는 등 증거인멸을 한 정황이 확인돼 같은 날 오후 10시10분쯤 참고인 조사를 받던 중 피의자로 전환됐다.
김씨는 경찰에서 “조씨가 범행도구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흉기와 옷은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이날 조씨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조씨는 묵비권을 행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와 조씨가 2달전쯤부터 범행을 모의했다고 보고 구체적인 범행 동기 등을 수사 중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범행 동기 파악에 있어 영등포 재개발 문제와 금전적인 관계, 고소·고발 관계 또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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