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 된 얼룩말 ‘세로’…새 짝 찾아주는 것이 최선일까 [플랫]
13일 오후 1시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초식동물 방사장을 지나던 중학생 남자아이 무리가 “와, 얼룩말이다!” 하고 소리치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남학생들이 가리킨 곳에선 지난달 3월 담장을 넘어 거리를 활보했던 얼룩말 ‘세로’가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우물거리며 씹고 있었다. 세로는 울타리 쪽으로 머리를 내밀거나 관람객을 등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암컷도 있었는데 죽었잖아” “왜 죽었어?” 40대로 보이는 여성과 초등학생 딸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탈출 얼룩말’ 세로의 짝이었던 얼룩말 ‘코코’가 지난달 16일 갑자기 폐사하고 한 달이 흘렀다. 코코는 2022년 5월생으로 광주시 우치공원에서 자라다 세로의 탈출 소동 이후인 지난 6월 어린이대공원으로 거처를 옮겨 약 4개월을 살았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다시 혼자가 된 세로를 위해 충북 청주동물원에서 암컷 얼룩말 ‘하니’를 데려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코코 폐사 직후 어린이대공원 자문회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날 통화에서 “다른 얼룩말을 데려오는 것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어린이대공원에 따르면 얼룩말 코코의 폐사 원인은 ‘산통(말의 배앓이)에 의한 소결장 폐색 및 괴사’였다. 말에게 산통이 생기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으나 코코의 경우 수컷 세로와의 합사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9년 태어나 성적으로 성숙한 세로와 달리 코코는 어린 말인데도 너무 이르게 합사했다는 것이다. 동물원 내 야생동물 개체를 줄이는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얼룩말이 번식하면 지금 사육환경에선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 최태규 수의사는 “세로가 어린이대공원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어떤 문제가 되는지 객관적인 복지 평가가 필요하다”면서 “평가 후에도 세로에게 무리를 형성해줘야 한다는 판단이 든다면 얼룩말 무리가 있는 다른 곳으로 세로를 옮기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수의사는 “얼룩말이 울타리를 넘어 차도까지 나가 잡아와야 할 정도의 관리 수준이라면 추가로 얼룩말을 데려오는 것은 좋은 대안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다른 동물원에서 얼룩말을 데려오면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주동물원의 얼룩말 하니는 2020년 8월 세로처럼 동물원 울타리를 넘은 적이 있다. 함께 살던 얼룩말이 노령으로 죽은 뒤 담장을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사람이 보기에는 동물이 암컷, 수컷 짝을 지어 있는 게 보기 좋을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잘 지낼 수도, 못 지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동물원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얼룩말은 멸종 위기종도 아니기 때문에 동물원이 ‘종보전’을 내세워 데리고 있을 이유도 없다”면서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어느 정도로 증식시킬 건지, 어떤 종을 포기할 건지,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플랫]의인화한 동물 이미지를 제멋대로 소비하는 ‘뻔뻔함’
어린이대공원은 청주동물원과 조율을 거쳐 하니의 거처 이동을 결정하고 시점을 정할 방침이다. 조경욱 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팀장은 “(하니를) 데려오는 시기는 내년 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세로 탈출 이후 방사장 면적을 (210㎡에서 420㎡까지) 2배 늘렸으나 여전히 최선은 아니라고 본다. 동물원 보수 공사 시점을 앞당길 계획”이라고 했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수의사는 “하니를 어린이대공원에 보낸다면 사육 환경이 일정 부분 유지되도록 중성화 수술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강은 기자 eeun@khan.kr ·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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