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없앤다는 정부, 이런 예산안 막아야 [세상읽기]
[세상읽기][윤석열 정부 예산안]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국회가 2024년 예산안을 심의 중이다. 국회 밖에서 그간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120억원, 청소년 활동 예산 183억원,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 전액, 장애 아동·청소년 성인권교육 예산 전액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토론회, 시민 서명 등이 계속됐다. 11월 국회는 예산안을 부처에 질의하고, 정부는 답변하며 조정한다. 중요한 예산을 깎거나 없애는 것만큼 그 안에 깔린 정책기조는 더 큰 문제라는 점을 직시하고 바로잡을 때다. 여성가족부의 예산과 관련한 대표적인 주장 네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통합은 추세다? 여가부는 10월30일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유사중복 사업 통폐합, 보조사업 운영 효율화’가 국정기조라고 밝혔다. 11월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장혜영 의원 질의에 김현숙 장관은 “통합은 트렌드”라고 말했다. 여성폭력 지원체계에서 통합은 지역별로 인구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비어 있는 여성폭력 지원 인프라가 있을 때 이를 해소, 조정하는 정책방안 중 하나다. 또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성산업착취, 이주, 장애, 친밀한 관계 기반 폭력이 젠더 구조상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여가부는 지방자치단체 담당 실·국을 급히 불러 새로 숫자를 할당하고 탈락시킬 곳과 선정할 곳을 미리 지정해주면서 전국 상담소를 줄세우기와 경쟁으로 몰고 있다. 여성폭력 사건 지원보다 기타 가족상담을 많이 했던 곳을 통합상담소로 하겠다는 계획도 어불성설이다. 이는 통합이 아니라 ‘통제’에 가깝다. 잘 지원하기 위한 통합이 아니라, 흩어놓고 줄세우려는 통제다.
둘째, 스토킹 등 신종 폭력에 집중한다? ‘신종’과 ‘트렌드’에 집착하고 소비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는 ‘유사중복 사업’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원인이다. 여가부는 가정폭력 신고가 2019년 24만건에서 2022년 22만6천건으로 6% 감소, 스토킹 신고가 2019년 5468건에서 2022년 2만9565건으로 440% 증가했다며 각각 예산 감축과 확대의 근거라고 한다.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스토킹이 ‘신종’ 폭력인가? 그리고 스토킹과 가정폭력이 제로섬 게임 대상인가? 다음으로 가정폭력은 한해 신고 건수가 22만건이나 되지만 기소율은 10%가 채 안 되고, 스토킹은 21년 만에야 형사처벌하기 시작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예산 삭감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가정폭력 대응 아닌가?
셋째, 1366센터와 해바라기센터를 확충하겠다? 민간상담소는 인원과 예산을 줄이고, 사각지대는 여가부 산하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와 해바라기센터에서 수행하겠단다. 결국 피해자들과 연대해 현장성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 문화에 관해 목소리 내고 바꾸어온 민간 영역을 숨쉬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 직영기관은 이렇듯 민간상담소를 줄이고 무분별하게 통폐합하는 자리에서 여가부의 일방적 계획이 주어지는 위치다. 피해자 지원 현장은 아래에서 위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곳임에도 자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특히나 해바라기센터는 병원, 지자체, 경찰서, 여가부 4자 협약으로 운영되어 현장 실무자가 소신 있게 일하기 어려운 구조다.
넷째, 지자체 예산으로 하겠다? 여가부는 ‘디지털 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전국 확대’라는 대통령 공약조차 지자체 예산으로 하게 할 것이라고 응답한 바 있다. 이번 국정감사 때도 일부 지방정부는 여가부가 삭감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지방정부는 성평등, 여성폭력 대응에 중요한 주체다. 그러나 국비와 지방비가 매칭돼야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한국 사회 전반의 정책 변화를 격차 없이 끌어낼 수 있다. 지방정부에만 맡겨지면, 여성폭력 방지 활동과 거점 운영이 지자체의 일상적인 간섭 아래 놓일 우려도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들은 연대를 통해 성폭력 문제를 개선해왔다. 2023년 119개 상담소는 4765건의 강간 사건을 모으고 분석해 법정책 방향을 제시했고, 전국에 피해자가 있는 디지털성폭력 사건을 긴밀히 연대해 지원한다. 11월25일 서울 보신각에서는 제3회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 생존기념축제가 열린다. 오랫동안 혼자 버텨온 피해생존자와 연대자들이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행진한다. 여가부와 정부·여당은 이 현장에 와보라. 각자도생, 고립과 경쟁 대신 연대의 행진을 하는 이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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