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신재생 확대 땐 전기료 40% 오르는 것 알고도 11%로 축소 발표

김경필 기자 2023. 11. 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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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 에너지 사업 감사 결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11월 1일(현지 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뉴시스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원자력·화력보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발전하는 비중을 높이더라도 2018년부터 2030년까지 12년 동안 전기요금이 단 10.9%만 오를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전망을 내놓게 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산업부는 전기요금이 40% 가까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상승률이 10.9%에 그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 확대로 인해 국민이 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실제보다 축소 발표한 것이다.

감사원이 14일 공개한 ‘신재생 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5년에 세운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2029년까지 신재생 발전 비중을 11.7%까지 높이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신재생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겠다고 공약한 상태였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산업부는 문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이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에 ‘신재생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높일 경우 전기요금을 2030년까지 39.6% 올려야 한다’고 보고했다. 국민들로부터 12년 동안 전기요금을 140조원 이상 더 거둬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이 계산마저도 원자력, 화력, 신재생 에너지 발전 단가가 2018년부터 2030년까지 조금도 상승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내놓은 것이었다.

산업부는 또 신재생 발전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송·배전 설비 보강에 18조원, 에너지 저장 장치 확충에 6조5000억원 등 24조5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발전량이 많을 때 미리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발전량이 적을 때 이를 꺼내 쓰는 에너지 저장 장치가 많이 필요하다. 또 태양광 발전판 등을 전력망에 하나 하나 이어줘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송·배전 설비도 늘려야 한다. 이런 설비 확충을 게을리하면 전력망 전체에 과부하가 걸려, 최악의 경우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당시 산업부는 “구체적인 대책 없이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확대할 경우, 전력 안정 문제 등 국가 안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보고를 접한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은 신재생 발전 단가가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는 것으로 계산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산업부는 신재생 발전 단가는 2016년부터 2030년까지 현재의 30~50% 하락하고, 당시 두바이유가 배럴당 53달러에 불과했던 이례적인 저(低)유가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가정해, 전기요금이 2030년까지 단 0.5~6.6%만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만들어냈다. 산업부의 전망치는 이후 전력거래소의 전망을 반영해 10.9%로 바뀌었으나, 처음에 계산한 39.6%에 비하면 약 4분의 1에 불과한 것이었다.

산업부가 내놓은 전망치에 대해 국회와 언론에서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신재생 발전 확대에 따른 제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전력도 신재생 발전 확대로 비용이 상승해 한전이 적자로 전환될 수 있다고 산업부에 보고했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문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신재생 발전 확대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률은 10.9%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언론 보도에 반박하는 자료만 9차례 발표했다.

신재생 발전 확대로 한전이 전기를 사들이는 데 들이는 비용이 늘어난다는 분석은 한전이 외부 연구기관에 의뢰해 작성하게 한 연구 보고서에도 언급됐다. 그러나 한전과 산업부는 이 보고서에서 ‘탈원전·신재생 에너지 확대로 한전의 전력 구입비가 증가할 수 있다’ ‘전기요금이 낮아 인상이 필요하다’ 등의 내용을 임의로 삭제하고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일들은 신재생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12%로 확대하기로 박근혜 정부가 설정한 목표치를 문 정부가 20%로 바꾸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감사원이 조사해 보니, 문 정부는 2021년에 산업부를 압박해 이 목표치를 30.2%까지 높이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 전 대통령이 2021년 11월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40%로 크게 높인다’고 발표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초 한국은 2030년까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2018년 배출량 대비 26.3% 줄이겠다는 목표치를 공표해놓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 참여한 세계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에 따라 내놓은 목표치였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이 목표치를 상향할 것을 지시했고, 산업부·환경부 등 정부 부처들이 협의를 시작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계획보다 더 줄이려면, 발전 분야에서는 화력 발전의 비중을 크게 낮춰야 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높이지 않으려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야 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탈원전을 기조로 삼고 있었으므로 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신재생 발전 비중을 더 높이는 방안이 논의됐다.

산업부가 계산해 보니, 2030년까지 높일 수 있는 신재생 발전 비중은 현실적으로는 24.2%, 이상적인 경우에도 26.4%가 한계였다. 이러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30.0%까지로는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환경부 등의 반대로 이런 계산은 무시됐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35.0~37.5%까지 높이는 방안이 ‘관계 부처 합의안’이 됐다. 대통령 보고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는 40.0%였다. 이에 맞춰, 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 비중을 30.2%까지 높인다는 목표치도 설정됐다. 이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여부는 무시됐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11월 1일(현지 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파리협정에 따라, 한번 높여놓은 목표치는 낮출 수 없다. 한국이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받게 될 수 있는 불이익은 2030년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져야 한다.

감사 결과에 대해 산업부는 “신재생 에너지 정책의 주무 부처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신재생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조속한 후속 조치와 강도 높은 정책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향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과 변화된 여건 등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합리적 신재생 에너지 목표를 설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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