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맞아도 멀쩡한 이스라엘군 기갑차량의 비밀 [무기로 읽는 세상]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격전지, 마리우폴·바흐무트가 보여준 것처럼 시가전은 군인이라면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전장이다. 특히 건물이 밀집해 있고 민간인이 남아 있는 곳은 더더욱 그렇다. 적탄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전혀 알 수 없고, 멀쩡해 보이는 길에서도 언제 갑자기 급조폭발물이 터질지 모른다. 눈앞에 보이는 민간인들은 언제 어떻게 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그들은 아군에게 총을 쏘거나 폭탄을 몸에 달고 달려와 자폭 공격을 감행할지 모르는 위험 요소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나중에 전범재판에 회부될 수도 있다.
세계 최강 미군도 고전하는 시가전
그만큼 시가전은 어렵고, 까다로우며 복잡하다. 제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최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임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시가전이다. 특히 목표 도심을 점령하거나 소탕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공격 측은 방어 측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방어 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을 골라서 전투를 할 수 있고,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공격 측을 괴롭힐 수도 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현재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자행하고 있는 것처럼 시가지에 남아 있는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런 전장에서는 세계 최강의 군대라는 미군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저항세력과 숱한 시가전을 치렀다. 상대는 고작 총 쏘는 법 정도만 익힌 민병대나 테러리스트였고, 미군 장병들은 고도로 훈련된 정예 군인들이었지만 미군은 팔루자·모술 등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2주 동안 가자지구 시가전에서 발생한 이스라엘군 전사자는 40여명
이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자지구 시가전 역시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스라엘군에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스라엘은 3개 사단에서 최소 7개 여단을 가자지구 도심에 밀어 넣었는데, 지상 작전 개시 2주 동안 발생한 전사자 숫자는 40여 명에 불과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바흐무트 시가전이나 마리우폴 시가전에서 러시아군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사망한 것과 비교하면 이상할 정도로 적은 숫자다. 그렇다고 전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11월 9~10일 가자시티 북쪽의 자발리아 지역에서는 하마스의 관측소 하나를 두고 10시간 넘는 교전이 있었다. 이 전투 중 이스라엘군은 단 한 명도 전사하지 않았지만 하마스 대원은 수십여 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가자지구가 지난 수십 년간 요새화되고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도심이라는 점, 이곳에서 시가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대부분이 예비군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제아무리 예비군 정예화가 잘된 나라라고 해도 최첨단 장비들로 무장한 숙련된 직업군인들로 구성된 미군보다, 그것도 더 악조건인 전장에서 더 우수한 효율을 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스라엘은 사람이 귀한 나라다. 지금은 950여만 명까지 인구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변 아랍 국가들에 비해서는 매우 작은 규모이고, 전체 인구의 13.5% 이상이 사회적 생산 활동과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병역도 기피하며 사회에 기생하는 유대교 근본주의자인 하레디(Haredi)다. 하레디는 특히 젊은층 비중이 높은데, 이들은 강제 징집해 군대에 보내더라도 정상적인 복무를 거부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투원으로 쓰기 어렵다. 이런 탓에 이스라엘은 귀하디귀한 장병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와 시스템 개발에 예전부터 많은 공을 들여왔다.
시가전 병력 피해 줄이는 전차·장갑차 등 중장비
이스라엘군의 시가전 모습을 보면 굉장히 많은 중장비들이 식별된다. 일반적으로 시가전은 대형 기갑차량의 기동이 어렵기 때문에 전차나 장갑차와 같은 중장비를 동원해 도심 전투를 벌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집채만 한 전차와 장갑차, 장갑전투도저를 끌고 시가지에 들어와 이들 중장비를 중심으로 시가전을 수행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메르카바’ 전차는 65톤 이상, ‘나메르’ 장갑차는 50톤이 넘고, D9 장갑전투도저 역시 60톤이 넘는다. 이 장비들을 이용한 이스라엘군의 시가전 방식은 간단하다. ‘막고, 부수고, 밀어버린다’는 것이다.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전차들이 하마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주포와 기관총으로 하마스 진지에 집중 사격을 퍼부은 뒤 육중한 장갑차와 도저들이 건물로 돌진해 건물 자체를 밀어버리는 것이다.
하마스에는 전차나 대포가 없다. 그들이 중장비를 대동한 이스라엘군에 맞서는 방법은 대전차 미사일이나 로켓을 쏘고, 급조폭발물로 부비트랩을 만들어 터트리는 것뿐이다. 하마스는 이러한 방법으로 개전 이후 50대 이상의 이스라엘 전차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며 전차 공격 영상까지 공개했지만, 개전 첫날 드론에 파괴된 1대를 빼면 지금까지 파괴된 채로 가자지구 내에서 발견된 이스라엘군 전차는 단 1대도 없다. 파괴된 전차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마스의 공격이 이스라엘군 전차에 먹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전차를 파괴했다고 공개한 영상들의 공통점은 미사일이나 로켓 발사 후 전차 근처에서 큰 폭발이 발생하는 상황까지만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영상에서는 전차가 폭발하거나 불에 타 승무원들이 탈출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상 속 폭발은 ‘전차’가 터진 것이 아니라 전차가 발사한 요격탄에 맞은 하마스의 미사일·로켓이었기 때문이다.
전차에 날아오는 로켓탄 요격하는 APS
이스라엘이 시가전에 투입한 대부분의 전차와 장갑차에는 ‘트로피(Trophy)’라는 능동방어장치(APS)가 장착돼 있다. 이 장치는 차량 외부에서 고속으로 접근하는 로켓탄을 레이더로 식별해 요격탄을 발사하는 무기로, 현존하는 대부분의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을 막을 수 있다. 11월 5일 촬영된 이스라엘군 메르카바 Mk.4M 전차의 교전 영상을 보면 하마스가 전차의 왼쪽 측면을 노리고 2발의 RPG-7을 발사해 전차 측면에서 두 번의 큰 폭발이 발생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파괴된 것 같지만 이후 해당 전차는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게 움직이는데, 이는 전차에 탑재된 APS가 로켓탄 2발을 모두 막았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기갑차량의 두꺼운 장갑을 뚫기 위해 이중탄두를 갖추고 있는 RPG-7VR을 사용하고 있지만, APS 때문에 기갑차량의 장갑판 자체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 기갑차량이 하마스 대전차 무기에 완파돼 내부 승무원이 사망한 사례는 10월 31일, 자발리아 난민 캠프 일대에서 단독으로 작전하다가 대전차 미사일에 피격된 제84여단 소속 차량 1대뿐이다. 이 차량에는 APS가 없었고, 이 때문에 탑승자 중 8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교전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제는 APS가 ‘옵션’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APS의 유무에 따라 적게는 3, 4명에서 많게는 12명의 목숨이 결정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과거 전쟁에서 전사자는 그저 통계에 잡히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대 선진 문명국가에서는 전사자가 한 명 나올 때마다 가족은 물론 많은 이들이 슬픔을 느끼고, 그 한명 한명의 이름을 사회가 기억한다. 우리가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전에서 산화한 용사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이 다 돼가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한 달이 넘어가며 세계 각국에서 기동·기갑장비 방어력 개선 대책과 APS 도입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서도 우리 군은 너무도 조용하다. 우리 군은 10년 전에 APS를 개발해 놓고도 교리와 전술이 연구되지 않았고,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그 어느 전차와 장갑차에도 이를 장착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달 가격을 낮추는 데만 집착해 세계 최저 수준의 방어력을 가진 싸구려 장갑차를 차세대 장갑차라며 대량 배치 중이다. 장갑차는 문자 그대로 탑승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무기다. 탑승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장갑차는 장갑차로서의 가치가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병역 자원 부족을 호소하면서 전시에 그 귀한 병사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우리 군 수뇌부가 이스라엘군의 사례를 보며 깨닫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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