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공정성 훼손하고 신뢰 잃어…국민께 사과"
-경영 정상화까지 임원진 임금 30% 반납…구조조정도 고려
-취임 하루 만에 대규모 물갈이 단행…노조 반발 기습 시위도
박민 KBS 사장이 취임 바로 다음 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몇 년간 불공정 편파보도 논란으로 국민 신뢰를 잃은 현 상황을 반성하고 경영 정상화를 통해 쇄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이를 위해 임원진 월급 삭감과 대대적인 구조조정 가능성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노조는 취임 당일 단행된 인사와 프로그램 개편 등에 반발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박 사장은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하고 국민의 신뢰를 잃은 현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지금까지의 과오를 돌이켜보며 보도 공정성부터 경영 정상화까지 KBS 쇄신 방안을 공개했다. 박 사장이 내놓은 불공정 편파 보도 차단을 위한 대책은 △무분별한 속보 경쟁 금지 △확인된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 구분 △익명 보도 자제 △팩트체크 활성화 △정정보도는 뉴스 첫머리에 보도 △중대 오보는 국장·본부장까지 문책 등이다.
박 사장은 이어 △검언유착 사건 오보 △고(故) 장자연 사망 관련 윤지오 출연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오세훈 생태탕 의혹 집중 보도 △김만배 녹취록 보도 등 최근 몇 년 사이 논란이 된 KBS 보도를 언급하며 "지난 몇 년간 공정성 비판이 있었지만, 형식적인 사과와 징계만 되풀이했다"며 "앞으로 불공정 편파 보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엄정하게 징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프로그램 제작비 효율화와 함께 임원 임금 삭감까지 단행하겠다고 했다. 명예퇴직도 확대하고, 필요시 구조조정까지 단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약 8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가운데, 수신료 분리징수 위기까지 맞은 현 상황을 기존 경영 방식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박 사장은 "능력과 무관한 순번식 프로그램 제작은 지양하고 능력 있는 제작자를 집중 채용해 무보직 고임금 직원, 기둥 뒤 직원을 없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저 자신과 임원들은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솔선수범해 임금의 30%를 반납하고, 나머지 간부와 직원도 동참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취임 당일 단행한 대규모 간부 인사도 쇄신안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KBS는 지난 13일 보도본부장부터 각 실·부장 등 100명이 넘는 간부급 직원을 갈아치웠고, 뉴스 앵커도 대거 교체했다. 박 사장은 "(KBS 사장) 공모에 응한 10월25일부터 KBS 안팎 분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들으며 7~8명의 본부장급 인사를 선임했다. 나머지는 각 본부장 및 실장이 전권을 갖고 각 조직 내에서 인사하도록 했다"며 취임 하루 만에 대규모 인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박 사장은 과오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김만배 녹취록 인용 보도 문제로 부과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심위는 지난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조작 의혹이 불거진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을 인용한 KBS에 과징금 3000만원의 중징계를 부과했다. 박 사장은 "보도 경위나 내용을 봤을 때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고 봐 방심위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했다. 똑같은 사안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았지만 법적 조치나 재심 청구를 예고한 MBC나 JTBC와는 정반대되는 행보다.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헌법소원 철회 가능성도 언급됐다. 박 사장은 "지금 한국전력과 수신료 관련 협상 중"이라며 "헌법소원을 유지할지 취하할지 언급하기에 적절할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 달라"고 했다.
KBS 노조는 이같은 박 사장의 행보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는 이날 기자회견장에 모여 "프로그램 폐지 등 방송 독립 파괴를 규탄한다"며 "박 사장은 사과할 게 아니라 사퇴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전날 성명에서 "이번 조치들은 편성규약과 단체협약 위반 행위"라며 "해당 행위를 한 보직자들에 대해서는 방송법 위반과 단체협약 위반 혐의로 고발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한님 기자 bhn2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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