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 “공정성 훼손 사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사과기자회견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그동안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는 시청자의 목소리에 더 활짝 귀를 열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진정한 공영방송 KBS로 거듭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습니다.또한 저를 포함한 임원들의 임금을 30% 삭감해 방만한 경영에 대한 대책도 수립하겠습니다.”
박민 제 26대 KBS 사장이 취임 이틀만인 14일 서울 여의도 KBS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기자회견을 가졌다. KBS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사과 기자회견을 연 건 이례적이다.
박 사장은 “저는 오늘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그동안 KBS가 잘못한 점을 사과드리고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 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면서 “올해는 KBS가 공영 방송으로 출발한 지 반세기가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지금 KBS는 절체절명의 생존 위기에 직면해있고, 그 중심에는 신뢰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이어 박 사장은 “대표 프로그램인 KBS 9시 뉴스는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오보로 하루 만에 사과를 했고, 사법당국의 수사로 관련 기자가 기소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에 파문을 불러온 고 장자연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선 후원금 사기 혐의를 받자 해외로 도피한 윤지오 씨를 출연시켜 허위 주장을 펼치도록 했습니다. 2021년 4.7 재보궐 지방선거 직전엔 이른바 ‘오세훈 시장 생태탕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생태탕 보도’는 단시일내 진실 규명이 어려운 내용을선거 직전에 집중 보도함으로써, 선거판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고 덧불였다.
박 사장은 “202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엔 결국 조작된 내용으로 드러난, ‘김만배 녹취’를 보도했습니다. 검찰수사와는 별개로 방송통신 심의위원회는 김만배 보도와 관련, 어제 KBS에 과징금 3천만원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이런 대표적 사례 외에도 KBS 뉴스는 지난 몇 년간 불공정 편파 보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TV나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일부 진행자가 일방적으로 한쪽 진영의 편을 들거나, 패널 선정이 편향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공정성 논란으로 방심위로부터 무려 40건의 제재를 받기도 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박 사장은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몇 년간 공정성 비판이 거듭됐지만, 형식적인 사과나 징계에 그쳤을 뿐 과오는 계속 되풀이됐다는 점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런 사례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공정 편파 보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해당 기자나 PD는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최대한 엄정하게 징계하겠습니다”라면서 “오보 사례의 재발을 막기위해 주요 불공정 방송의 경위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백서를 발간하겠습니다. 회사측이 해당 사안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살펴서 필요하다면 추가 조치도 취하겠습니다”고 불공정 보도에 대한 징계와 대책을 밝혔다.
이어 “불공정,편파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강도 높은 대책도 시행하겠습니다. 우선 무분별한 속보 경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확인된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은 분명하게 구분하고, 익명 보도는 최대한 자제하겠습니다. 팩트체크를 활성화해 오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그래도 오보가 발생했다면 바로 사과하겠습니다. 정정보도는 원칙적으로 뉴스 첫 머리에 보도하겠습니다. 불공정 보도로 논란이 될 경우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묻겠습니다. 특히 의도적이고 중대한 오보에 대해서는 국장과 본부장 등 지휘라인까지 문책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박 사장은 “공영방송 KBS에는 ‘방송제작 가이드 라인’이 있습니다. ‘제작자는 논쟁이 되는 사안에 대해 특정 관점에서 취재, 보도, 방송해서는 안되며, 시청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KBS는 모든 보도와 프로그램에서 이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방송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KBS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겠습니다”고 공정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박 사장은 “KBS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방만 경영‘입니다. KBS는 국민으로부터 지난해 7천억원의 수신료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지난해 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낸데 이어, 올해는 약 8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됩니다”면서 “그리고 국민의 신뢰 상실로 인한 수신료 분리 징수로 과거 IMF나 금융위기보다 더한 비상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기존 경영 방식으로는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는 만큼 특단의 경영 혁신에 나서겠습니다. 우선 저 자신과 임원들은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솔선수범해 임금 30%를 반납하겠습니다. 나머지 간부와 직원들도 동참하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명예퇴직을 확대 실시해 역삼각형의 비효율적인 인력 구조를 개선하겠습니다. 그래도 인력 운용의 효율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도 검토하겠습니다. 인사.승진,예산 제도도 전면 쇄신하겠습니다. 입사하면 성과와 관계없이 누구나 상위직급으로 올라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비판을 받아온 무보직 고임금 직원, 기둥뒤의 직원도 사라질 것입니다”고 앞으로의 조직운용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박 사장은 “예산에서 가장 큰 부분인 제작비 낭비는 원천적으로 차단하겠습니다. 제작진의 능력과 무관한 순번식 제작 관행을 없애고, 능력있고 검증된 연출자를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프로그램별 예산 투입과 수익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해 제작비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겠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도 없습니다. 파괴적 혁신을 통해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공영방송으로 거듭 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희들은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의 회초리를 맞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당장 지금부터 변하겠습니다. 시청자의 목소리에 더 활짝 귀를 열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진정한 공영방송 KBS로 거듭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민 사장과의 일문일답
-KBS가 추구하는 공정성은 무엇인가? 문화일보에 근무할 때의 공정성인가?
▶신문시장과, 공영방송은 다르다. 제가 근무한 문화일보의 가치는 다양성이었고, 특정신문의 가치라도 재직시 이를 벗어난 적이 없다.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정확성, 균형성,객관성으로 실행된다.
-사장에 취임하자마자 임원, 간부진을 대거 교체했다. 오히려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KBS 직원이 4100명 정도 된다. 부장만도 138명이다. 내가 이 분들을 다 파악해 적재적소에 인사를 한다는 건 무리다. 내가 KBS 사장에 지원한 지 제법 됐고, 두 가지 경영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절차를 통해 인사가 되어야 하는데 외부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또 능력과 성과에 대한 평가가 인사에 반영이 잘 안됐다. 이런 걸 파악해 그 분들(본부장)이 인사하게 했다.
저는 본부장과 일부 노사주간 등 7~8명 정도 인사했다. 부장 인사에 개입한 적은 없다. 본부장들이 알아서 했다. 그래서 본부장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게 했다.
KBS의 문제가 방송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지난 15년이 증명한다. KBS 출신이 사장 하는 게 좋은 전통이다. 그렇게 일곱 분이 사장을 했지만 이런 사태를 맞았다. 별 성과가 없고 매출도 별로다. 저는 방송 전문성은 부족하지만 원칙을 지켜 능력있는 사람들을 기용하겠다. 제가 토대를 다지면 KBS 사람이 와서 미래를 준비하면 될 것이다.
-팩트체크도 말씀하셨는데 보도의 원칙과 방향을 다시 말해달라. 구조조정은?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원칙을 만드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한다. 방송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이유는 정확한 보도와 균형감, 객관성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확성이다. 속보보다는 뉴스 취재원이 누구인지, 사실관계를 확실하게 해 취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제가 (문화일보) 편집국장을 할 때도 항상 그 경계에서 고민했다. 물론 보도와 편성본부에서 결정할 사안이다. 제작진의 자율성과 게이트키핑 경험이 중요하다.
(장한식 보도본부장 보충설명=부분별한 보도를 지양한다. 확실하게 달라진 뉴스를 보여주겠다. 방법론적인 건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저도 어제 임명됐다.)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KBS 사장 공모에 응하면서 나도 놀랐다. KBS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데 놀랐다. 장애인, 해외방송, 재난방송 등 상업성과 무관한 일이다. KBS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돈도 들어간다.
KBS는 임금이 전체 지출의 33%를 차지한다. BBC의 20% 후반에 비해 높은 편이기는 하다. 방만한 경영에 대한 질타가 있었고, 줄여야 될 부분도 있다. 일단 저를 포함한 임원 임금의 30% 삭감부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임금을 20%대로 낮추는 건 무리이기도 하다.
-취임하자마자 뉴스 메인앵커 교체는 무리수 아닌가? 공정한 절차를 밟았나?
▶사장으로서 특정 프로그램을 언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부 프로그램이 공정성에 대해 지적을 받았고, 제작 편성 본부에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대책을 마련, 추진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장한식 보도본부장 보충설명=새로운 사장의 취임 계기로 달라진 뉴스를 보여주자 차원에서 기존 앵커를 교체했다. 하차 사실은 정중하게 통보했다.)
-KBS의 콘텐츠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얼마전 엔터테인먼트 전문 경영인을 만났는데, tvN에는 히트작들이 많은데, 모기업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물론 코로나, 극장 사업 부진 등이 있지만 오너가 플랫폼, 제작 , 유통을 다 가지려고 한다고 하더라. KBS도 강력한 플랫폼이었다. 지금은 OTT와 모바일 등으로 경쟁력이 과거와 달라졌다. KBS미디어, KBSN 등으로 제작과 유통까지 가지는 건 성공하기 힘들다. 이를 혁신해야 한다. 제작진이 순서대로 제작하기도 했고, 제작 영역에서 독단적인 게 작용했다. 대단한 성과를 거둬도 보상을 못받기도 하고 실패 해도 별 제재가 없다. 인력도 빠져나갔다. 단기적으로 스튜디오 시스템을 넘어 신규제작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 KBS에서 제작했으니 KBS에서 방송해야 한다는 것도 벗어던지고, 상업적인 프로그램도 일부 제작하면서 전체적인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겠다. 물론 아웃소싱을 통한 통폐합을 포함하고 있어 단기일에는 안된다. 나는 임기중 그 기반은 마련하겠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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