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1저자다] ①"연구 트렌드에 안 흔들려야...현재 처우론 가정 꾸리기 어려워"
[편집자주] 과학자들의 연구성과는 보통 논문으로 공개됩니다. 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이나 대학의 교수들이 연구를 주도하는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리지만 논문의 ‘1저자’는 보통 박사후연구원이나 박사급 연구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빛나는 시기 연구에 대한 열정도 가장 뜨거운 이들의 역량은 미래 과학기술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청년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청년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포스텍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청년 과학자들의 꿈과 현실, 미래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룹인터뷰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국내 모든 청년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순 없겠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과학계에서 작지만 힘있는 ‘울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버려지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시켜 수확하는 기술인 에너지 하베스팅은 몇 년 전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분야지만 수년 전보다 과제 수가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매년 연구 트렌드가 바뀌고 있지만 자신이 정말 흥미를 가진 분야에 집중하면 보람과 성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서울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원에서 만난 장두준, 배준호, 김현수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연구원들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학교를 떠나 연구 현장에 발을 딛으면 연구 주제나 방향성이 흔들릴 수도 있는데, 처음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인 ‘자신의 흥미’와 초심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다.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는 극한환경 조건에서 안정적인 성능을 갖는 극한소재 기술을 연구한다. 지진, 화재, 미세먼지 등 재난에 대응하는 소재 기술은 물론 최첨단 전자재료에 관한 기술도 다룬다.
수평적인 본부의 분위기는 청년 과학자들의 혁혁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올 한해에만 굵직한 논문을 잇따라 발표했다. 장두준 연구원이 참여한 '사람의 체온을 센서를 구동하는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에 관한 논문은 지난 7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에 게재됐다. 폐에너지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하베스팅’ 사례인 이 연구는 후면표지 논문으로 실리며 학계에서도 주목받았다.
배준호 연구원은 3D 프린터로 배터리를 제작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도면 파일만 있으면 사람이 없어도 손쉽게 원하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기차 충전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전고체전지용 고분자전해질도 그의 연구 분야다. 김현수 연구원은 열이나 기계적인 진동과 같은 폐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전달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무선으로 에너지를 충전해 전자기기를 구동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다.
Q. 과학자가 되기로 한 계기는. 연구 분야는 어떻게 선택했나.
장두준 연구원(이하 장)=학생 때부터 성향상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원래는 항공공학과로 진로를 선택했었는데 이후 더 폭넓은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기계공학과에 진입했다. 석사와 박사 과정에선 마이크로 유체와 나노유체 공학을 전공했다. 개인적인 적성에 맞는 진로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배준호 연구생(이하 배)=학부 때부터 화학을 전공했다. 학생 시절부터 세상이나 만물에 대한 이해에 관심이 있었다. 어떠한 현상에 담겨있는 원리나, 물체의 구성을 새롭게 알게 될 때 성취감을 느꼈다. 아직 공부 중이어서 ‘예비 과학자’라고 내세우기 조금 부끄럽지만,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밝혀내지 못한 사실을 알아내고 싶다. 기존의 과학적 통념을 반박하는 일에도 도전하고 싶다.
김현수 연구원(이하 김)=기초과학에서 기술적인 쪽으로 연구 분야를 옮겼다. 학창 시절에는 심도 깊은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학업을 이어가면서 에너지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의 연구 분야에 오게 된 것 같다. 순수 과학쪽에서도 기업으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더 많은 연구 활동을 하고 싶어 연구기관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Q. 과학자로 진로를 택하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배=과학 연구는 어쩌면 사업이랑 비슷한 것 같다. 얼마나 관심을 쏟고 투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부분이 그렇다. 퇴근하고 나서나 주말, 휴가 중에도 연구에 대한 생각을 끊기가 어렵다. 연구와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지칠 때도 있지만 몰입한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구와 삶의 관리는 나 자신의 영역인 것 같다.
김=과학기술계는 전세계 과학자들과 함께 호흡하기 때문에 밤낮의 경계가 때로는 허물어진다. 원거리 화상회의를 하거나 발행되는 논문을 쫓을 때 그렇다. 명절 때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런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과학기술계로 진로를 택한 본인의 선택에 만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다. 실험을 하기 위해선 재료 같은 것도 사야하고 장비도 구매해야 한다. 어떻게 펀딩을 받을 수 있을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우 문제라 생각한다. 박사후연구원의 현재 처우로만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어렵다.
장=박사후연구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역시 커리어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고민을 하게 된 경험이 많다. 한국의 경우 보통 학위과정을 마치면 군 문제가 걸려있다. 외국의 과학자들과 비교하면 출발선이 늦어지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후에는 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주변 동료들 중 가정을 꾸리게 된 경우 처우나 안전성을 가진 일자리를 찾는 것과 관련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적잖게 봤다.
Q. 최근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안 발표 이후 체감하는 분위기는.
김=박사후연구원의 계약을 연장해줄 수 없다는 얘기가 바로 나왔다. 올해 12월까지만 근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커리어가 끊기게 되는 사례를 보며 불안감을 느끼는 동료들이 많다.
장=경력이 많지 않은 연구원은 연구사업을 통한 소득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생계에 대한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대학에서는 박사과정생을 뽑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교수님들의 이야기가 계속 들려온다. 이미 연구 현장에선 유능한 연구원들의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조치가 젊은 과학자들의 사기를 꺾었다는 외신 등의 평가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배=학생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젊은 친구들도 이용하는 과학기술계 커뮤니티를 보면 연구에 타격을 받게 됐다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Q. 연구소에 들어오고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대학의 환경과 다른 점은.
김=대학과 비교하면 시설과 장비 지원이 상대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KIST에선 고가의 장비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느꼈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선임 연구원 선배들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비를 사용하게 되면 연구에 대한 의욕을 제고할 수 있다.
장=연구기관은 대학에 비해 양질의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에 동의한다.“
배=대학에선 동년배 친구들과 과학적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격의 없는 토론을 하게 될 때도 많았다. 연구소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만큼 대학과는 분위기가 또 다른 점도 있다. 연구소에선 궁금증이 있을 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박사님들이 많이 계신다. 각 기관의 성격상 이같은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Q. 젊은 과학자들의 미래를 위해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은. 또 과학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장=연구과제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어렵게 따낼 수 있다. 박사후연구원들에게는 중요한 기회다. 초반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더 많은 기회가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길 바란다.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연구분야에 확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분야든 연구 여건, 마래 가능성 등 각 측면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본인 역시 학교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분야에 최선을 다하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연구과제의 경향을 보면 아무래도 정부가 그때 우선순위를 두는 분야가 보이게 된다. 다양한 관점에서 특정 분야가 각광받는 시기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소위 ‘관심이 떨어진’ 분야에서도 연구가 안정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는 역시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흥미 있는 분야를 하면 밤을 새워 연구를 해도 피곤하지 않다.
배=교수님이나 선배 박사님들이 연구비로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실험에는 정말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인력, 장비, 측정, 분석에서 제약없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길 바란다. 후배들에게는 과학을 탐구하면서 언젠가 한번씩을 느꼈을 성취감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힘든 상황에서도 지탱할 수 있는 동인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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