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이라 납득됐던 '악인전기'에 담긴 서민들의 복합적 감정과 욕망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11. 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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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균, 끝끝내 악인으로 성공했지만 그에게 남은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럼 당신이 원하는 건 뭔데? 내가 평생 빚이나 갚고 뭐 고물차나 끌고 다녔으면 좋겠어? 교도소 가서 잡범들 비위나 맞추면서 빌빌 거리면서 살면 좋겠냐고? 문상국한테 당한 거, 점장한테 끌려 다닌 거, 엄마 돌아가신 거, 다 없어서 그런 거잖아? 모르겠어? 우리 가족 이제 더 이상 억울한 일 당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고! 그런데 왜 그걸 몰라 주냐고! 범재도 당신도 왜 내 마음을! 혜영아 우리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어?"

ENA 일월드라마 <악인전기>에서 한동수(신하균)는 아내에게 그렇게 항변한다. 남편이 변했다는 걸 알고는 두려움을 느끼고 이제는 떠나려는 아내였다. 그에게 가방 가득 채워진 돈다발을 보여주며 그런 돈이 창고에 가득 채워져 있다고 말하는 한동수는 그 돈으로 "좋은 데 이사도 가고 사고 싶은 거 맘대로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그 동안 못했던 거 다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한동수의 착각이자 일종의 변명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들이 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고, 다 함께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변명. 서도영(김영광)이라는 악당 앞에서 공포에 질려 살아남기 위해 손을 잡았고, 힘이 없어 당하지 않기 위해 그 악당의 힘을 빌어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는 이들을 막았으며, 나아가 자신이 살기 위해 문상국을 죽이는 일까지 하게 됐지만, '○○을 위해'라는 건 사실 다 변명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사업(불법 인터넷 도박)을 서도영이 가져갔다며 억울해했고, 그걸 자신이 차지하려는 욕망에 빠져들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서도영이 먼저 선수를 쳐 한동수의 동생 한범재(신재하)를 문상국을 죽인 범인처럼 위장해 경찰에 넘겼고, 그러자 한동수는 또 다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서도영을 제거하고 한범재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 무고한 이웃집 남자인 형사 마철진(권혁)을 이용한 것. 결국 마철진은 살해됐고 서도영은 그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되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한동수를 악인으로 만든 건 과연 서도영 같은 외부적 조건들 때문이었을까. 서에서 풀려난 한범재는 마철진이 자신 때문에 살해됐다고 자책하며 한동수에게 아프지만 사실인 이야기를 던진다. "형 이렇게 된 거 다 서도영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아닌 거 같다." 한동수는 끝내 서도영을 죽이고 돈과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좋은 집에 살게 됐다. 하지만 그 집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동생 범재는 서도영과의 결전 중 살해됐고, 아내와 딸은 떠나버렸다. 텅 빈 집에는 벽에 걸린 가족사진만 덜렁 남겨져 있을 뿐이다.

<악인전기>가 여타의 범죄스릴러와 달랐던 건 그저 괴물 같은 악당들의 범죄를 그린 게 아니라 어떻게 평범한 서민이 그런 괴물 같은 악인이 되어가는가를 그렸다는 점이다. 물론 악마처럼 속삭이는 서도영이 욕망에 불을 붙였지만, 그의 내면에는 불안과 공포, 열등감, 박탈감이 더해진 분노 같은 것들이 있어 기름처럼 그 불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동수의 상황과 처지들은 어찌 보면 힘없는 서민들이라면 공감할만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의지와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련의 선택들이 있었던 것. 하지만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린 욕망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게 번져버렸고 결국 한동수를 집어 삼켜버렸던 거였다.

늘 작품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신하균의 연기를 상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가 보여준 복합적인 감정 연기들이 있어 한동수라는 변화해가는 인물이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생계형 서민으로 시작해, 끝내 눈이 텅 비어버린 성공했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 악인으로 끝나는 그 과정을 신하균은 납득되게 연기했다.

"괴물이랑 싸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돼. 당신이 그 괴물의 속을 들여다볼 때 그 괴물도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마지막 장면에 한동수가 툭 건드려 바닥으로 떨어진 야구공이 한쪽으로 흘러가고, 그쪽에서 환영처럼 서도영이 그 공을 집어 들고 그렇게 말한 후 다시 한동수에게 그 공을 굴리는 대목은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다.

그건 서도영이 한동수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 역시 촉망받던 야구선수에서 범죄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동수는 서도영을 닮았다. 끝끝내 악인으로 성공했지만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있는 처지가 그렇다. 그리고 그 욕망의 끝에 비참한 최후로 끝난 서도영처럼 그 역시 자신의 '악인전기'의 끝을 어느 정도는 아는 것처럼 보이는 텅 빈 눈빛까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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