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모빌리티 판례 (2) 전기차 배터리 화재사고 손해배상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사고 손해배상 판례를 통해 본 여전히 넘기 어려운 입증책임의 허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4. 6. 선고 2020가합608301 판결)
“두 차례 리콜했으면, 자동차에 결함이 있다는 것 아닌가요?”
바야흐로 전기차 시대의 막이 열렸습니다. 이제는 도로에서 친환경 전기차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는 얼마나 될까요?
전력거래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5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45만여대로, 전체 등록된 자동차의 약 1.8%입니다. 눈에 잘 띄는 전기택시나 전기버스가 많아져서인지 체감상으로는 그보다 많이 보급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전기차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만큼, 전기차 관련 사고와 분쟁도 늘고 있습니다. 전기차와 관련해 가장 많이 문제가 되는 이슈는 단연 ‘배터리 화재’입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는 최근 3년간 매년 약 2배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44건(인명피해 4명)의 화재사고가 발생했으며, 올해는 상반기에만 벌써 42건의 화재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화재 발생률이나 사망률이 높지 않다고 하는데, 전기차 화재는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해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기차를 이미 구매한 사람들은 배터리 화재 이슈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본인이 구매한 전기차 모델에 연쇄적으로 화재가 발생하고 있고, 자동차 제조사는 화재 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리콜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에 더해, 단종까지 시킨다면? 자동차 소유자 입장에서는 제대로 뿔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2020년 11월경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전기차 코나EV 소유주 약 170여명은 배터리셀과 배터리 관리시스템에 존재하는 하자 및 결함 등을 이유로 현대자동차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배터리 등에 결함이 있는 제품을 정상가격으로 판매하였으므로, 그 차액 및 차량 리콜로 고객 불편과 중고차 시세 하락 상당액, 위자료 등을 합해 소유자 1인당 800만원을 배상하라는 것이 소의 주된 취지였습니다.
2018년 4월경 출시된 코나 EV는 2020~2021년경 배터리 관리시스템 등 업데이트를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리콜됐으며, 리콜 전후까지 17건의 화재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20년 10월경 위 차량 화재사고 중 일부에 관해 ‘배터리팩 내 전기적인 원인으로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코나 EV 소유주들은 차량 내 배터리셀 또는 배터리 관리시스템에 설계·제조·성능상의 하자나 결함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법적으로 코나 EV 차량에 하자가 있다거나 그로 인해 다른 전기차에 비해 더 높은 화재 발생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차량 소유주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합608301).
재판부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돼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품의 경우 일반 소비자로서는 제품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하자가 존재하는지, 발생한 손해가 하자로 인한 것인지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증명하기가 지극히 어려우므로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입증책임이 완화될 수 있지만, 소유주들이 제시한 증거자료만으로는 코나 EV 차량에 하자가 존재한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코나 EV가 국내외에서 16만대 이상 제조·판매되었음을 고려할 때, 화재 사고가 발생한 차량의 비율이 극히 미미하다고 지적했고, 차량 리콜과 관련해서도 제조업자가 피해 사전 예방 및 소비자 신뢰 확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리콜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리콜을 실시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해당 차량 모델에 하자가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코나 EV 소유주들은 항소를 포기하거나 소를 취하해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최근 전기차의 급발진 의심 사고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차량 소유자가 잘못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차량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임에도 충분히 배상받지 못한다면, 큰돈을 들여 전기차를 장만한 고객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억울할 것입니다.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법원에 소를 제기해도 입증책임이라는 허들을 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 ‘입증책임 완화’를 넘어 ‘입증책임 전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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