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빛수원] 식량 작물 품종의 고향 ‘수원특례시’…국민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요즘은 급격하게 감소한 쌀 소비량을 걱정하는 시대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이다. 30년 전인 1992년(112.9㎏)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반세기 전에는 쌀이 모자라 걱정이었다. 법으로 쌀밥을 못 먹게 하고, 쌀막걸리를 만들지도 못하게 했다.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은 수원에서 만들어진 식량 품종들이다. 국민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든 수원의 품종 이야기를 조명해 본다.
■ 주곡 자급의 일등 공신 ‘통일벼’가 탄생한 수원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목표이던 시절, 굶주림의 역사를 끊어내고 쌀 품종의 식량 자급을 이뤄낸 벼 품종은 ‘통일벼’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되는 벼는 자포니카 품종으로, 둥근 모양에 찰지고 윤기가 있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병충해 피해가 많고 쓰러짐이 심해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웠다. 이에 우리나라는 1960년대 들어 종자갱신 사업을 시작, 병충해에 강하고 잘 쓰러지지 않는 품종 육성에 집중한 끝에 통일벼를 만들었다.
통일벼는 당시 수원에 있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필리핀에 세워진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공동 연구에서 출발했다. 허문회 교수(1927~2010)가 초청 연구원으로 가 생산성 높은 품종 개발을 위해 열대지역 품종인 인디카와 결합하는 3원 교배 방식으로 다수확 품종 IR667을 육성했다. 이 중 우수한 종자를 선발하고 교배하는 것을 되풀이한 끝에 유망한 우수계통 3종이 장려품종으로 선발됐다. ‘수원213호’, ‘수원214호’, ‘수원213-1호’다.
수원에서 적응을 거쳐 1971년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한 통일벼는 정부 시책에 따라 폭발적으로 재배 면적이 늘었다. 1977년에는 전체 논 면적의 54%에서 재배됐고, 10a당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통일벼로 생산량이 증대되면서 삶의 모습도 변했다. 쌀 자급률이 113%로 올랐다. 또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점심은 쌀밥을 먹을 수 없던 ‘무미일(無米日)’이 1977년 1월 중순부터 사라졌고, 그해 12월부터는 14년 만에 쌀로 막걸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재배 면적이 확대된 통일벼는 이후 가뭄과 수해, 도열병, 태풍, 냉해 등을 잇달아 겪으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국가적으로 품종 분산정책을 추진했고, 통일벼 개발 이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자포니카 품종의 개량도 지속적인 성과를 거뒀다. 결국 자연스럽게 재배 면적이 줄어든 통일벼는 1992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수원이 고향인 쌀 품종은 통일벼 외에도 다양하다. 2000년대 들어 최고품질 품종으로 개발된 ‘고품(수원479호)’, ‘하이아미(수원511호)’, ‘삼광(수원474호)’ 등과 기능성 쌀로 붉은 빛이 도는 ‘홍진주(수원501호)’, 항산화 성분이 함유된 ‘적진주찰(수원524호)’, 체지방을 줄이는 검정쌀 ‘흑광벼(수원477호)’ 등 다양한 쌀 품종이 대표적이다.
■‘식량 작물 개발’과 ‘육종의 중심지’ 수원
수원은 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물 품종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농촌진흥청이 수원을 떠나기 전까지 개발된 다수의 품종들이 수원의 지명을 활용한 계통명을 갖고 있다.
옥수수는 ‘수원19호’가 유명하다. KS5(Korea Suwon 5)와 KS6(Korea Suwon 6)을 모본과 부본으로 사용해 만들어 낸 우리나라 최초의 옥수수 교잡종이다. 1977년 농가에서 시범 재배를 시작한 뒤 옥수수 수확량이 큰 폭으로 늘면서 대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후 재래종이 대부분 수원19호로 대체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옥수수 육종이 식용과 사료용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개발돼 주목받기 시작한 ‘찰옥2호(수원17호)’, ‘일미찰(수원찰45호)’ 등 찰옥수수 품종이 나왔다.
맥류 품종에서도 수원이라는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977년 개발된 ‘동보리1호(수원183호)’는 추위에 강한 품종이다. 한파가 극심하던 1976년 육성 포장에서 대부분의 보리가 모두 얼어 죽은 가운데 파랗게 살아 있던 품종을 육종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새찰쌀보리(수원292호)’, ‘두원찹쌀보리(수원304호)’, ‘서둔찰보리(수원252호)’, ‘진미찹쌀보리(수원332호)’, ‘재안찹쌀보리(수원356호)’, ‘풍산찹쌀보리(수원358호)’, ‘삼광찰(수원394호)’, ‘황금찰(수원403호)’ 등의 품종이 수원에서 개발됐다.
콩의 경우 이름 자체를 수원의 지명을 딴 품종이 있다. 1960년대 수원농업시험장으로 콩 육종 중심지가 옮겨진 후 1969년 개발된 신품종 ‘광교(수원30호)’다. 광교 품종은 재래종보다 33%가량 수확량이 많고 잘 털리지 않아 인기를 끌면서 20여년간 전국에서 재배되는 주력품종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괴저바이러스로 타격을 입었고, 이를 계기로 ‘황금콩(수원97호)’, ‘신팔달콩(수원144호)’, ‘태광콩(수원145호)’, ‘대원콩(수원181호)’ 등 현재도 많이 심는 대표 품종이 만들어졌다.
■ ‘부국원’에서 수원 품종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수원에서 탄생한 품종들이 녹색 혁명을 이끌어 낸 역사는 수원 구 부국원에서 접할 수 있다. 오는 12월30일까지 열리는 ‘품종의 탄생 : 수원 쌀 이야기’를 통해서다. 지난해 말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센터)가 발간한 구술총서 ‘품종의 탄생 : 농학자가 들려주는 수원 품종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된 전시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부터 종자와 비료 등을 판매하던 회사의 본점이었던 부국원을 무대로 하고 있어 기존 상설 전시물과도 의미를 연결한다. 이번 전시와 연계한 테마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11월18일 옥수수, 12월9일 보리 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인터넷 예약으로 접수받는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품종의 탄생’에 나와 있다. 1부에는 식량작물 품종 개발과 수원에서 육종된 품종에 대한 설명이, 2부에는 농학자들의 구술이 실렸다. ‘농학자가 들려주는 수원 품종 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육종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부국원의 정체성과 20세기 수원 농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를 통해 수원에서 탄생한 품종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확인해 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fac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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