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의 TINA, 윤석열의 외길[뉴스와 시각]

황혜진 기자 2023. 11. 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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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철(鐵)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한 대처 총리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대처 총리는 확고한 지지를 얻어 1990년까지 11년간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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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 국제부 기자

“다른 길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철(鐵)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을 따 ‘TINA’(티나)로 불리는 이 단어는 그녀의 별명이기도 하다.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한 대처 총리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76년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도 치솟았다. 1979년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차 오일쇼크 여파로 15%까지 치솟았다. 이 와중에 탄광노조를 비롯한 강성노조는 파업을 일삼았다. 대처 총리가 가장 먼저 내세운 건 긴축정책이었다. 재정을 풀어 경제를 살리기보다는 당장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잘못된 재정을 바로잡는 것이 고질적인 ‘영국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봤다. 그러자 야당뿐 아니라, 같은 보수당 내각 각료들도 반발했다. 그럼에도 대처 총리는 “유턴은 없다. 다른 길은 없다”며 긴축재정을 고수했다.

그는 지지도가 20% 초반까지 떨어졌지만, 개혁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철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 자유 시장경제를 앞세운 개혁의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0년 중반 인플레이션이 3%대까지 떨어지자 산업 생산은 활력을 되찾았다. 긴축재정으로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대처 총리는 확고한 지지를 얻어 1990년까지 11년간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대처 총리가 집권한 1980년대 초반 한국도 똑같은 경제 상황에 처해 있었다. 1980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0%대까지 치솟았다. 재정적자는 1년 새 40%가량 불어나는 등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국에 ‘티나’가 있었다면 한국에선 김재익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1980년 경제수석비서관이 된 김재익은 예산안 동결을 통한 긴축재정을 선택했다. 그 역시 긴축재정을 유일한 대안이라고 봤다. 금융과 무역, 투자 분야에서도 시장 친화정책을 펼치는 등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한국의 경제정책에 처음으로 반영했다. 이 결과, 30%까지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은 3년 만에 3% 안팎으로 떨어졌다. 만성 적자였던 재정수지도 1988년과 1989년 연속 흑자로 돌아섰다. 체질 개선이 된 것이다. 1980년대 한국 고도성장의 씨앗은 여기서 탄생했다.

김 전 수석의 일화는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민 60여 명이 참석한 ‘민생 타운홀’에서 등장했다. 확장재정을 펼쳐야 한다는 야당 주장을 일축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김 전 수석의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시장경제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맞는 얘기다.

문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정부가 ‘긴축재정’이라는 인기 없는 정책을 고수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전 정부처럼 재난지원금 등으로 돈을 푸는 것만큼 확실한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 티나와 김재익의 선택 외에 다른 길(alternative)이 과연 있을지도 궁금하다.

황혜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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