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도전하는 여성도 증가
“기능등급제 등 제도적 유인장치 시급”
“고깃집 서빙, 택배 상하차 다 해봤는데 건설 일자리가 제일 할 만하던데요?”
경기도 수원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김성호(25) 씨는 6년 전, 수능을 치른 직후인 겨울방학 열아홉 살 나이로 처음 건설 현장을 경험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인 근무시간에 일당 12만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고정적인 시간대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와 달리 원하는 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그랬다.
김씨가 주로 맡은 일은 전기케이블을 땅에 묻는 ‘포설’작업이다. 김씨는 “종일 반복적인 데다 쉬는 시간도 없는 상하차보다 훨씬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로도 주말에 종종 하루씩 시간을 내 건설 현장을 찾았다. 방학이면 지역 소재 반도체공장을 찾아 숙식하기도 했다. 이렇게 김씨가 올해까지 총 건설업으로만 번 돈은 총 2000여만원이다.
건설 현장 일자리를 찾는 10대의 발길이 늘고 있다. 수능을 치르거나 성인이 된 직후 일당이 많은 단기 일자리를 찾아온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건설업 일자리를 경험한 10대는 건설업을 ‘고소득 일용직’ 이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전문가 사이에선 건설업계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숙련공’ 육성이 절실한 상황인 만큼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 취업 기피 현상에 따른 청년층의 건설 현장 이탈 현상은 오래된 문제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건설기술인 가운데 30대 이하는 20.8%(21만2924명)로, 10년 전(45%)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단순노무직이 아닌 청년층 기술인력이 그만큼 줄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엔 유의미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건설업에 새롭게 취업하는 10대 건설업 근로자가 늘어난 것이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 산하 건설근로자공제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년~2023년 8월) 10대 신규 취업자는 5.1%(1만9052명)에서 8.1%(2만2948명)로 늘었다.
최근 건설업 일자리를 경험한 10대 청소년은 대부분 ‘생계’를 이유로 들었다. 권재봉(19) 씨는 한 학기 등록금이 300만원이었던 대학 입학을 앞두고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에 뛰어들었다. 자취생활을 앞두고 보증금과 월세를 미리 벌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권씨는 “건설 일자리가 아니면 당장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절박한 심정으로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권씨는 6주가량 현장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일일 10시간 근무로 총 600만원을 받았다.
여성과 청소년이 건설업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 경우 대부분 현장에서 수신호를 전달하는 역할로, 비교적 부담이 적은 신호수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인 황모(21) 씨는 19세이던 2021년부터 약 6개월간 경남의 한 하수관로 현장에서 신호수로 일했다. 황씨는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드문 지역에 살다 보니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기 힘들었는데 일당 13만원이라는 액수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청년세대가 건설업을 기피한다는 인식과 달리 ‘고소득’이라는 점에서 인력 유인 효과가 있는 셈이다. 다만 이들이 건설업 일자리에 장기적으로 종사하려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대부분 단순노무직 수준에 그친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김씨는 “사실 청년 사이에선 건설 일자리가 ‘기술직’이라는 인식은 없다시피하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신원상 한국건설인정책연구원 팀장 역시 “청년층 진입은 적지 않지만 일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청년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국토교통부는 2021년 건설업 일자리 개선대책의 일환으로 ‘기능등급제’를 도입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명시된 60개 직종 중 49개 직종에, 현장 근무경력을 기반으로 초급·중급·고급·특급으로 나누는 제도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건설업 근로자들이 처우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능등급제 시행 3년이 지나도록 현장 정착은 미진한 상태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기능등급을 받은 근로자는 99만1363명에 달했지만 정작 이를 적용하고 있는 현장은 60개소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은 “기능등급제 등 제도적 장치를 현장에서 보여줘야 젊은층이 숙련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혜원·박지영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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