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시험처럼, 시험은 산책처럼!"
영하권 초겨울 날씨를 보인 지난 일요일 오전 8시 30분. 평소대로라면 적막함이 감돌았을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어울림 광장이 강아지 친구들과 보호자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서울시와 동그람이가 공동 주최하는 '2023 반려인 능력시험(반능시) 실기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반려인들과 반려견들이었죠. 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털옷을 입고 목도리를 두른 이들은 색다른 공간에 호기심을 느끼며 시험장 이곳저곳을 탐색했습니다.
지난 2019년 성숙한 반려문화 확산을 위해 처음 시행된 반능시는 올해로 다섯 번째 개최되어 반려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려인으로서의 일상 대처 능력을 평가하는 오프라인 실기시험이 치러져 많은 반려인들의 관심을 받았었죠. 이번 반능시 실기시험에는 더 많은 반려인들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응시 인원을 기존 50팀에서 80팀으로 대폭 늘렸습니다. 또한 평소 산책 상황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야외 공간에서 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오전 9시, 드디어 2023 반능시 실기시험의 문이 열렸습니다. 첫 번째 응시자는 주영신 씨와 '주몽'이었습니다. 생소한 산책길에 당황한 기색도 잠시, 주몽이는 자연스럽게 보호자의 옆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행사 소품이 쓰러진 돌발 상황에서도 주몽이는 의연하게 산책을 계속했답니다.
영신 씨는 "막상 시험을 보니 평소 산책 환경보다 더 산만한 느낌이 들어 조금 떨렸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안락사 직전 구조되어 가족이 된 주몽이에 대해서는 “잭러셀테리어라고 해서 악마견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짖지도 않고 조용한 반려견이다. 평소 주몽이가 무던한 친구라서 돌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시험을 끝낼 수 있었다"며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반능시를 위해 지인들과 필기 스터디 모임까지 결성한 영신 씨는 "전문적이고 올바르게 주몽이를 양육하고 싶다"며 더 성숙한 반려인이 되겠다는 열정을 내보였답니다.
수능 못지않은 열띤 응원전 "우리 막내 잘한다!"
반려견은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반려견을 응원하기 위해 온 가족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영은 씨와 '치즈'를 응원하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동생이 함께 등장하며 훈훈함을 자아냈습니다. 추운 날씨에 가족분과 함께 나오신 이유에 대해 묻자, "반려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에서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함께 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여쭤봤다"며 "반려견, 가족과의 추억도 남기면서 올바른 반려문화를 만드는 좋은 행사인 것 같다"는 만족감을 보였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녀의 마음에 화답하듯 "아이 잘한다 우리 손녀! 치즈 너무 예쁘다"를 시험 내내 외치셨답니다.
강아지 가족이 함께 참여한 팀도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시험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7시에 출발했다는 '토토'와 '코코'. 이번 반능시 참여견 중에 최연장견인 토토의 보호자의 홍윤기 씨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반능시 실기에 응시한 단골손님입니다. 작년 실기시험에서 가볍게 합격을 받은 윤기 씨는, 토토와 시험에 참여했을 때의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두 번째 응시를 결정했다고 하는데요. 함께 사는 몰티즈 코코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해 아내 장혜원 씨와 함께 필기시험에 응시했고, 둘 다 높은 점수를 받아 실기시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특히 "시험을 통해서 반려견들과 더 교감하고, 반려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자부심이 들어서 좋다"며 3회차 시험에도 또 응시할 것이라는 다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경험자의 노련함을 공유한 덕분인지 토토와 코코 모두 훌륭하게 코스를 통과했답니다.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게... 발전하여 돌아온 반려인들
반능시 실기에 두 번 응시한 반려인은 홍윤기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작년 실기시험 첫 번째 주자로 출발해 훌륭하게 시험을 끝냈던 박지훈 씨와 '코기'도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훈 씨는 작년 시험에서 줄을 느슨하게 잡는 것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았었는데요. 줄을 적당하게 늘려 코기가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연습해 다시 실기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코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잠시 한눈이 팔리기도 했지만, 이내 편안하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시험 코스를 통과했답니다.
실기시험 참여 반려인 중 필기시험 1등(98점, 전체 2등)을 획득한 정연주 씨와 '우주' 역시 이번이 두 번째 참여입니다. 우주는 반능시에 참여하기 위해 무려 수원에서부터 먼 발걸음을 했답니다. 1등을 하겠다는 목표로 두 번 연속 반능시에 참여하셨다는 정연주 씨는 "작년과는 달리 실외에서 시험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 작년에 더 잘 해냈던 것 같다"고 웃으면서도 "오늘 신호등에서 목줄을 조금 더 짧게 잡는 것이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내년 시험에도 다시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습니다.
이처럼 작년 실기시험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외부 자극'입니다. 연출된 자극만 주어지던 작년 반능시와 달리, 올해 반능시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외부 자극이 있어 반려견들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넓어진 시험장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도 재현이 가능했습니다. 반능시 실기시험을 기획하고 심사까지 담당한 스파크펫 김민희 트레이너는 "작년에는 실내라서 시험을 보시는 분들만 계셨다면, 지금은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 갑작스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등이 반려견들의 집중력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도 "일상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니 동네에서 편안히 산책하는 느낌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고득점 팁을 알려주었답니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이날 시험장에는 크기, 견종, 성격이 제각각인 반려견들이 모여 반려인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했습니다. 특별한 믹스견부터, 맹견으로 오해받는 미니어처 불테리어, 추운 날씨에 한껏 기분이 좋은 시베리아허스키까지. 처음 보는 친구들과 인사하고 새로운 냄새를 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바우와우로 유명한 미니어처 불테리어 '경자'를 양육하는 임경태 씨는, '불테리어는 모두 사납다'는 오해가 속상하기만 합니다. 사실 경자의 성격은 겁이 많은 편으로, 조금은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경태 씨는 경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평소에도 줄을 당기지 않는 루즈리시 워킹, 반려인에게 바짝 붙어서 걷는 측면 보행 연습을 자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어질리티 클럽에 3년째 참가하여 꾸준히 경자와의 호흡을 맞춘다고 해요. 실제 실기시험장에서도 경자는 모든 코스를 침착하고 신중하게 통과했습니다. 보행 내내 경태 씨를 바라보는 경자의 눈에서는 굳건한 신뢰가 느껴졌답니다.
이날 진돗개 '이든'이도 늠름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반려인 정희재 씨는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생각으로 구조된 진돗개의 자견을 입양하게 되었어요. 입양 전 진돗개가 예민하다는 얘기를 듣고 사전 공부를 하기도 했다는 희재 씨. 산책 시 줄을 당기지 않도록 노력했고, 자극에 흥분하지 않고 긴장도 풀어주기 위한 연습을 평소에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다만 희재 씨는 진돗개가 사납다는 얘기는 잘못 알려진 것 같다며, 진돗개를 올바르게 양육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였을 뿐이라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이날 이든이 역시 친구들과 편히 인사하고 시험장 주변을 차분히 산책했어요. 물론, 실기시험도 무탈하게 따라와 주었습니다. 희재 씨는 "산책하면서 진돗개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뻐해 주는 분이 더 많다"며, 앞으로도 이든이가 믿을 수 있는 보호자가 되고 싶다는 애정 담긴 말을 남겼답니다.
실제로 반려인의 양육 방식은 반려견의 성격과 기질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반능시 역시 반려인이 반려견을 올바르게 양육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죠. 시험장 밖에서 반능시를 지켜보던 행인들도 강아지가 아닌 사람이 평가 대상인 점을 신기해하면서도 행사 취지를 듣자 필요성에 동감했습니다. 이날 시험을 지켜보던 행인 권현수 씨는 "반려견을 양육하고 있지만 이런 행사가 있는지 몰랐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에 이렇게 반려인으로서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올바른 반려 환경 조성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서울시 윤민 주무관은 "시험이 외부에 노출되다 보니 응시자들과 반려견이 불편할까 우려한 게 사실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다 있는 환경인 만큼 실전으로서는 더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나 싶다"라며 첫 실외 실기시험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는 자극인 만큼, 실제 반려인의 대처능력을 평가하기에 더 적절했다는 뜻이죠. 이어서 시민들이 많이 응시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내년에는 반능시 실시 횟수를 늘려 시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축제가 되길 희망한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죠.
이날 많은 보호자들은 시험이 끝난 후에도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반려인들은 "실기시험에 응시하길 잘했다"며 내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다시 참가할 것이라는 다짐을 남겨주셨는데요. 오늘의 경험으로 인해 더 좋은 반려문화가 조성되길, 그리고 내년에는 더 많은 반려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봅니다.
글 = 김건희 동그람이 에디터 ghmrkim@naver.com 사진 = 김건희,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1%' 신유빈 황선우 꿈꾸며 퇴로 없이 '올인'… 한국 스포츠의 비극
- '흡연·음주·노출' 성인방송 BJ 활동한 7급 공무원 적발
- 잠자던 롤렉스 시계 주인공은 LG '캡틴' 오지환
- '응팔' 커플 류준열·혜리 결별…연애 7년 만
- 태진아 "아내 옥경이, 5년째 치매 투병…이루가 대소변 받아"
- [단독] 서울대공원 호랑이 '수호', 시민들 애도에 박제 대신 소각한다
- 김연경에 가려졌던 한국 배구 민낯 "10년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 권한·특혜 다 누리며 서울 들어오겠다는 구리시… '형평성 논란' 불가피
- [단독] 홍콩 영화 전설 ‘영웅본색2’ 한국 애니로 부활한다
- 박지윤 측 "이혼 관련 루머 유포에 강경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