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모습 바꿔도 변화는 계속될 것”…활동 마무리하는 연세대 마지막 페미니즘 동아리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는 싫었어요. 우리가 이만큼 잘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연세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페스포트’ 구성원 장현주씨(24)와 박신형씨(28)는 동아리 마지막 활동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세대 내 유일한 동아리 형태의 페미니즘 공동체인 페스포트는 오는 12월 8년의 활동을 마무리한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난 두 사람은 덤덤한 목소리로 마지막 행사를 준비하는 소회를 밝혔다.
페스포트가 활동을 마무리하는 것은 신입 부원 충원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씨는 “현재 학내에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일상이 됐다”며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페미니즘 동아리에 가입할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학 내 백래시로 페미니즘 담론이 위축되는 것을 체감했다. 2019년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이후 백래시는 정점을 찍었다. 박씨는 “이때가 안티페미 세력이 효능감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라며 “이전까지는 혐오가 페미니즘 동아리의 포스터를 찢는 것에서 그쳤다면, 이후로는 전면에 실명을 내건 혐오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선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게시글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페스포트의 마무리 전시 홍보 게시글에도 ‘학교 이름 제멋대로 걸지 마세요’ ‘이과대학이라 하지마. 쪽팔리네’같은 댓글이 달렸다. ‘똑똑하면 페미하겠냐’ 같은 조롱이 담긴 게시글도 보였다.
익명의 공격이 주를 이루던 백래시는 총여학생회가 사라진 이후 날로 과감해졌다. 지난해에는 페스포트 신입 부원으로 지원하는 척 연락한 뒤 혐오와 조롱이 섞인 메시지를 보내는 이도 있었다. 장씨는 “그 사람에게 메신저로 응대할 때 쓴 프로필 사진이 내 얼굴이었다”며 “내 얼굴이 알려지는 건 아닌가 무서웠다”고 했다. 실명과 얼굴을 내걸고 혐오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대학 내 페미니즘 공동체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범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인 ‘유니브페미’는 지난 2월 6년간의 활동을 정리했다. 중앙대 성평등위원회 ‘뿌리’도 2021년 문을 닫고 지난 2월 활동을 마무리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박씨는 “최근 1~2년간 학내의 페미니즘 동아리 10개 중 9개는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2241629001
두 사람은 8년간의 동아리 활동을 두고 “늘 버티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동아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는 누군가를 위해 버텨왔다는 것이다. 박씨는 “우리도 동아리를 운영하는 동시에 보호받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페스포트 구성원들은 동아리 안에서 신뢰를 쌓으며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내게 어떠한 혐오 발화를 하지 않겠구나’ ‘안전한 공간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정감이 시간이 갈수록 커졌어요.”
이들이 활동을 정리하며 전시를 하는 것은 지난 8년간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과대 페미니즘 동아리로 시작한 페스포트는 단과대 내 소수자 혐오 분위기를 바꾸는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성평등 교육을 했고, 술을 마시며 ‘게이샷’이나 ‘레즈샷’ 등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외치는 관습들을 없앴다. 교수들의 성차별적인 발언에 문제를 제기해 사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장씨는 “마지막까지 으쌰으쌰 힘을 내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박씨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충실히 활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던 마음을 치유했다”며 웃었다. 앞으로 학내 분위기가 나아질 것 같냐는 질문에 이들은 “백래시와 혐오가 모습을 바꿀 때마다 계속 지적하고 비판한다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저희가 없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개개인의 노력이 계속되고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페스포트의 그간 활동을 담은 전시 ‘비행일지’는 오는 30일부터 내달 2일까지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지하1층 무악로타리홀에서 열린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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