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점퍼’ 입은 박용택, “뜨거운 우승 풍경…LG, 이제 ‘심심한 우승’도 하게 될 것”
박용택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오랜만에 유광점퍼를 다시 입었다. 지난 13일 한국시리즈 잠실 5차전에서 LG의 통합우승이 확정되는 흐름을 타자 구단에 부탁해 유광점퍼를 하나 빌려입었다. 누구보다 유광점퍼를 긴 세월 입었던 박 위원이지만 유광점퍼를 입은 이날 모습은 또 달랐다.
사실, 박 위원은 이튿날 벌어질 수 있는 중계방송 준비를 겸해 이날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6차전은 KBS 지상파 중계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LG가 5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면서, 박 위원이 LG 우승 확정 경기를 중계석에서 해설하는 드라마 같은 상황은 실현되지 않았다.
박 위원은 경기 뒤 더그아웃으로 내려와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중간자 시점에서 LG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봤다. 박 위원은 스탠드를 둘러싼 LG팬들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더그아웃 안쪽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편으론 오묘한 장면이었다. 이날 우승 축배를 든 LG 선수단에는 ‘28년의 기다림’을 LG 트윈스 울타리 안에서 느껴온 사람이 많지 않았다. 2009년에 LG에 입단해 암흑기의 마지막 몇 년을 경험한 뒤 리그 대표 유격수로 성장한 오지환을 빼고는 5차전 선발라인업에서 그 시절 그 느낌을 체험한 선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박 위원은 ‘눈물이 나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지는 않았는데, 포인트는 하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오지환이 박경수와 박병호를 한 번씩 안아주는 모습을 볼 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박경수와 박병호는 지금은 베테랑으로 KT를 끌어가지만, 그야말로 LG가 가장 어려웠던 2000년대 중반 이후 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 속에 저장해둔 선수들이다.
LG의 이전 마지막 한국시리즈 시즌인 2002년 입단해 2020년까지 박 위원은 가을야구 도전 스토리를 온몸으로 겪은 주인공이다. LG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13년 정규시즌 2위가 확정된 정규시즌 최종일에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했다. 박 위원은 이후로도 몇 차례 포스트시즌에 올랐지만 팀 전력의 모호함 속에 우승권에 근접하지는 못했다.
박 위원은 한국시리즈 MVP가 된 오지환을 두고 “내 마음의 MVP도 오지환이다. 너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토리도 좋다”고 말했다. 또 “국민 ‘밉상’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LG 팬들이 먼저 생각날 선수가 김용수도, 이병규도, 박용택도 아닐 수 있다. 오지환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관중석 표정 하나하나도 살핀 모양. “8회까지만 해도 팬들이 오히려 흥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9회부터 아웃카운트 잡을 때마다 일어나시는 걸 봤다”며 “결국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감동 크기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올해 LG의 우승이 ‘반짝’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평했다. “10여 년 암흑기 거치고, 시행착오도 겪은 뒤로 하나하나 잘 준비가 된 것 같다”며 “지금은 1, 2군이 모두 잘 돌아간다. 전체적으로 뎁스가 두꺼운 팀이 됐으니 당분간은 우승권에 늘 있을 것 같다”며 향후 몇 년간 황금기를 예상했다. 더불어 “올해는 오래 간절히 기다린 우승이어서 감동이 달랐지만, 앞으로는 조금 ‘심심한 우승’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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