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김중곤 NH투자증권 IB1본부·ECM부문 대표 | “제로 금리 덕에 성장한 회사들, 상장하려면 수익성 체질로 바꿔야”
김중곤 NH투자증권 IB1본부·ECM부문 대표는 국내 기업공개(IPO) 업계를 대표하는 베테랑으로 꼽힌다. 1998년 LG증권(NH투자증권에 합병된 우리투자증권의 전신)에 입사해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IPO 업무를 계속해 왔다. 현재 김 대표가 이끄는 IB1본부에는 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몸담고 있다. NH투자증권의 IPO 주관 성적은 화려하다. 넷마블(이하 공모금·2조6600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2조2500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1조4900억원), 제일모직(1조5200억원) 등 IPO 당시 사상 최대 규모 ‘대어(大魚)’들의 대표 혹은 공동 주관사로 참여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NH투자증권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최근 들어 가열되고 있는 공모주 투자 열기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이란 어떤 것인지, 반도체와 바이오 업종에 대한 견해는 어떤지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공모주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IPO 시장이 회복됐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회복이라는 표현에 어폐가 있다. 나는 현 상태가 노멀(normal)에 가깝다고 본다. IPO 시장 규모가 2021년 20조원, 2022년 16조원에 달했던 건 제로(0) 금리가 만든 특수한 현상이었을 뿐,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평균을 내 보면, 연간 공모액이 약 4조원 정도 된다. 올해 공모 시장이 3조~4조원 정도 될 테니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온 것이다.”
올해 말과 내년 IPO 시장 전망은.
“4분기엔 일시적으로 좀 안 좋아질 수 있다. 상반기엔 IPO 공급 물량이 5000억원에 그친 반면, 하반기엔 공모주가 많이 몰려 있다. 두산로보틱스도 최근 IPO를 했고 곧 있으면 에코프로머티리얼즈도 시장에 나온다. 미 국채 금리가 오르고 있는 것도 우리 공모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레버리지 전략을 많이 쓰는 해외 헤지펀드들은 롤오버(roll over·만기가 도래하는 채무를 다른 자산으로 교체해 사실상 포지션을 이월하는 것) 금리가 너무 높아지면 레버리지를 청산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한국 IPO 시장에 많이 참여하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기관의 자금 유입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엔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돈이 많이 묶이지 않나. 증권사는 유동비율을,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묶였던 돈이 연초가 되면 다시 운용되기 시작한다.”
작년과 올해 상장 문턱을 넘지 못한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내년부터는 IPO를 재추진해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플랫폼 기업과 재무적 투자자(FI)의 눈높이와 시장의 눈높이는 간극이 크지 않나. 이런 회사들이 IPO를 완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FI들이 투자했을 때 몸값과 지금 시장에서의 몸값에 차이가 커 상장하지 못하는 건 FI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초저금리라는 특수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했지만 금리 등 외부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한 게 아닌가. 이건 빈티지(vintage·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 해라는 뜻으로, 펀드를 결성한 해를 의미한다)의 문제다. 시장 변화를 인정하고 기대 수준을 확 낮춰서 IPO를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플랫폼들이 전략을 바꿔 투자자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제로 금리였을 때는 자본의 원가가 없었으니, 원가 없는 자본을 마케팅에 대거 투입해서 매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내야 할 이자가 없으니 디폴트(채무 불이행) 리스크도 없었다. 그것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플랫폼 업체들의 전략이었다.
자본을 태워서 매출을 사는 이런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게 만든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은 투자자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사업해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재투자해 영업하는 게 바로 금리가 있는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전략이다. 매출 성장률이 다소 둔화하더라도 이익으로 캐리코스트(carry cost·상품 보유에 필요한 비용이나 증권 보유에 필요한 이자 비용)를 상쇄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시장의 부침과 관계없이 언젠간 IPO를 완주할 수 있는 ‘좋은 회사’란 어떤 회사인가.
“진입 장벽이 높고 현금흐름 창출 능력이 뛰어난 회사다. 예를 들어 게임 업체라면, 다른 곳에서 만든 게임을 퍼블리싱(판매)만 하는 회사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계약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순 없으니까. 국내에는 아직 퍼블리싱만 해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회사는 없는 것 같다. 자기만의 지식재산권(IP)이 있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업체도 마찬가지다. 매니지먼트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IP를 갖고 있어야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 시장에서 각광받을 만한 섹터에 속해야 한다. 회사 자체가 좋고 섹터도 인기 있고 IPO 시장 상황까지 좋다면 딜이 잘될 충분한 여건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은 어떤 섹터를 괜찮게 보고 있는지.
“반도체 분야를 굉장히 좋게 본다. 수천억원의 몸값에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퓨리오사나 리벨리온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회사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등 밸류체인 안에 있는 회사들도 당분간 전망이 긍정적이다. 반도체 업황이 나빠질 때도 있지만 그건 재고 사이클의 문제일 뿐 트렌드 자체가 망가졌기 때문으로 볼 순 없다. 반도체 시장이 앞으로 계속 커진다는 건 글로벌 컨센서스(consensus)다.”
반도체 팹리스 업체 파두의 상장을 주관하지 않았나. 벤처캐피털(VC) 투자 유치 이후 몸값이 많이 올라서 IB 업계에서는 꽤 화제가 됐다.
“파두 상장 주관을 하면서 느낀 바는 이런 회사가 하나 나오는 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칩을 하나 개발해서 샘플을 생산하려면 자그마치 200억원이 드는데, 채택되지 않으면 비용 대부분을 날리게 된다. 리스크가 굉장히 큰 사업이다. 그래도 한국 기업들은 경쟁력이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뒤늦게 반도체 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지만, 미세공정 때문에 투자 비용이 과거와 비교도 안 되게 높아진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엔 이미 늦었다. 국내에선 이런 회사들 덕에 지난 20년간 반도체 섹터에 우수 인력들이 계속 공급돼 왔고, 인프라 자원도 풍부하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여전히 IPO가 잘 안되는 것으로 안다. 유상증자 외엔 답이 없는 것일까.
“많은 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임상시험을 하면서 파이프라인 하나에 연간 50억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 앞으론 이런 고비용 사업 모델로는 사업을 지속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임상부터 시작하고 돈을 태워 상장 심사를 청구하는 사업 모델을 지속해선 곤란하다.
국내 임상부터 해본 다음 좋은 결과가 나오면 라이선스 아웃(LO·license out)을 하든가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게 낫다. 한국거래소는 산업 활성화뿐 아니라 투자자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업황이 나쁘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상장 심사를 통과시켜 줄 수는 없다. 바이오 기업에 대한 상장 심사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진다면, VC가 져야 할 리스크가 코스닥 시장 투자자에게 전가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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