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준의 돈 이야기 <33>] 프랑스에 ‘은행’이 없는 이유
역사적으로 돈이 풍부했던 시절은 없었다. 귀금속으로 돈을 만들던 금본위제하에서 특히 돈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1715년 평생을 방탕하게 살아온 태양왕 루이 14세는 프랑스에 끔찍한 재정 상태를 물려주고 사망했다. 왕위를 승계한 루이 15세는 다섯 살에 불과했다. 국가의 지배권은 삼촌인 섭정 오를레앙공에게 넘어갔다. 판단력이 부족한 오를레앙공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이를 간파한 사람은 은행가 존 로(John Law)였다. 오늘날 일부 역사가는 존 로를 악당이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역사가는 궤도를 잃은 천재라고 생각한다.
은행가, 범죄자, 혁신가
존 로는 스코틀랜드에서 부유한 금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금은이 화폐였기 때문에, 귀금속을 취급하는 금 세공인이 은행업을 겸했다. 이 시대에 금 세공인은 요새 같은 저택과 무장한 용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존 로는 새로운 종류의 혁신적인 은행, 즉 예금 지급을 금은이 아니라 토지로 보증하는 은행을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존 로는 결투에서 지나친 성공을 거둔 덕분에 영국 사법 당국이 살인자로 뒤쫓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영국의 법망을 피해 프랑스로 도피했고 곧 파리 사교계의 명사가 됐다.
존 로는 금속주의자 뉴턴과 로크에게 반대했다. 금속주의란 금은 같은 귀금속으로 화폐를 만들어야만 화폐가치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존 로에게 돈은 토큰(token·징표, 형식)의 의미밖에 없었다. “화폐가치는 상품 교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교환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돈은 물건을 사는 데만 사용될 뿐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 존 로에 따르면, 국가는 귀금속을 화폐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특히 국내에서 충분한 귀금속이 생산되지 않는 나라는 더 그러하다. 실제로 금이 생산되지 않는 스웨덴은 구리로 화폐를 주조해서 유통했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국왕)에 돈(금)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존 로가 제시한 해결책은 돈을 인쇄하는 것이었다.
연금술
섭정은 화폐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려는 존 로의 계획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섭정은 그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존 로 스스로 자본을 조달하는 것을 조건으로 소규모 은행 설립을 허용했다. 존 로가 설립한 방크 제네랄은 주화(귀금속)를 예치받고 은행권(약속어음)을 발행해 줬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금화나 은화는 금속 함량을 속일 수 있지만 은행권은 그러한 염려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 로의 은행권은 웃돈을 얹은 채 거래됐다.
존 로의 능력이 입증되자 섭정은 1718년 방크 제네랄을 국유화하고 방크 르와얄(왕립 은행)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제 존 로는 국왕의 힘으로만 뒷받침되는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존 로는 방크 르와얄을 이용해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을 능가하는 마술을 발휘한다. 방크 르와얄은 프랑스 왕실로부터 국채를 인수하고, 국채 원리금을 은행권으로 지급하되, 은행권 소지인에게 액면가에 해당하는 금은의 지급을 약속했다. 그리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 은행권에 법화성을 부여했다. 이제 사람들은 은행권을 이용해 세금을 납부하고, 물품 구매 대금을 지급하고, 빌린 돈을 갚을 수 있게 됐다. 존 로는 은행권을 금고에 보관된 귀금속과 분리하고 시중에 유통되던 금을 종이로 바꿔 버렸다. 존 로의 마술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돈 걱정이 사라지고 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누구도 존 로의 마술을 의심하지 않았다. 여기서 멈췄다면 행복한 결말에 이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백만장자의 유래
존 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미시시피회사를 설립했다. 미시시피회사는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회사의 자산보다 거대한 루이지애나(루이의 땅)를 보유하게 됐다. 그것은 남쪽의 멕시코만에서 북쪽의 오대호에 이르렀고 동쪽 애팔래치아산맥에서 서쪽 로키산맥에 이르렀다. 오늘날 미국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의 땅이었다. 미시시피회사는 국왕으로부터 미시시피 연안의 식민지 경영권과 신대륙 일대의 무역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소문의 발원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루이지애나에 엄청난 양의 금이 매장돼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존 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로 시스템’을 도입했다. ‘로 시스템’하에서 사람들은 방크 르와얄이 발행한 은행권을 들고 가 미시시피회사 벤처 주식을 사들였다. 은행권과 주식이 상승효과를 내면서 미시시피회사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통화량이 급증하자 많은 돈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넘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토지 가격이 급등했고 졸부가 속출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백만장자’라는 말은 이 시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최근 어느 신흥국 중앙은행 총재는 한국의 부동산 ‘영끌’ 현상이 개인의 탐욕과 경솔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부동산 투기는 화폐의 과잉 공급에서 시작된다. 어쨌든 존 로는 미국 아칸소주(州)의 유래가 된 아칸소 공작이 됐고, 섭정 오를레앙공은 미시시피의 항구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블루스, 재즈, 케이준으로 유명한 뉴올리언스가 그것이다.
볼테르의 종이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존 로는 미시시피회사에 국가 부채를 매입하고 세금 징수 업무를 인수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 확장을 위해서는 더 많은 주식과 더 많은 지폐가 필요했다. 불행하게도 통화 공급이 엄청나게 증가하자 상품 가격, 특히 파리 같은 대도시의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고 거대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발생했다. 이와 동시에 경제계에서는 존 로의 반대자가 미시시피에는 금이 없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1720년 미시시피회사 주가가 폭락하자 단단히 결합돼 있던 시스템이 급격히 해체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주식을 팔아치워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였고 주식시장에 몰려든 군중이 압사하기도 했다. 존 로의 은행권이 쓸모없어졌다는 판단에 이르자 급격한 뱅크런(예금 인출)이 발생했다. 철학자 볼테르는 “결국 종이가 자신의 내재 가치에 환원된 것”이라며 비웃었다.
존 로의 시스템은 화려하고 혁신적이며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지만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존 로가 세운 방크 르와얄과 미시시피회사는 순환 투자와 폰지 방식(다단계 투자)으로 운용됐다.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지 않으면 더 이상 주가가 상승하지 못하고 결국 모든 것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암호화폐 테라와 루나도 이와 구조가 유사하다.
존 로는 도망쳤고 결국 베네치아에서 가난뱅이로 죽었다. 1803년 나폴레옹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돈이 필요해지자 1500만달러라는 푼돈을 받고 드넓은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아넘겼다. 몇 년이 지난 뒤 존 로의 이야기는 괴테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파우스트’의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의 캐릭터는 존 로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존 로가 세운 방크 르와얄의 부정적 영향 때문에 19세기 후반까지 프랑스에서는 ‘은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많은 프랑스 은행이 은행(방크) 대신 보관(케스), 신용(크레디), 계산(콩트와), 모임(소시에테)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소시에테 제네랄, 크레디 아그리콜, 케스 데파르뉴 등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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