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43> 34년째 매출, 이익 신기록 달성한 日 유통사 돈키호테] 야스다 다카오 회장 경영 철학 “물건이 아니라 공간을 판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2023. 11. 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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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베 시내 돈키호테 매장. 사진 박혁신 일본 F&L 대표

일본의 버블(거품)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해가 1990년이다. 주가는 1989년 연말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이듬해 벽두부터 내림세를 탔고, 부동산 시장도 1991년께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일본은 지난 30여 년간 장기 침체를 겪고 있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 여파로 다른 선진국이 겪어보지 못했던 저성장 시대를 맞았다.

그런 일본에서 34년째 매출과 이익을 경신하는 대기록을 세운 소매 유통 기업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 관광을 가면 한번쯤 들르는 ‘돈키호테’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 10년간 네 배 이상 뛰었다. 야스다 다카오(安田隆夫) PPIH(돈키호테 운영 회사) 창업 회장은 명문 게이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29세에 도쿄 시내에 60㎡(약 18평)짜리 소매 할인점에서 출발해 일본 4대 유통 업체로 키운 기업인이다. 1989년 창업한 돈키호테가 장기 침체기에도 꾸준히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돈키호테, 즐겁지 않으면 소매업이 아니다

돈키호테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도 이겨냈다. “재미있는 공간을 만든다면 물건은 팔린다”는 야스다 회장의 경영 철학이 불황기에도 소비자에게 먹힌 덕분이다. 돈키호테 매장은 세계 어디를 가든 압축된 상품 진열, 손 글씨로 쓴 아날로그식 종이 광고판, 지루할 정도로 느껴지는 긴 상품명이 눈길을 끈다. 돈키호테는 2019년에 팬 퍼시픽 인터내셔널 홀딩스(PPIH)로 회사명을 바꿨다.

PPIH그룹이 새로 만든 브랜드 ‘도미세’에 가면, 야스다 회장의 독창성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도미세는 돈키호테의 오리지널 상품을 모아놓은 플래그십 스토어다. 도쿄 번화가 시부야에 올 8월 문을 연 1호 매장에는 산처럼 쌓인 재고 상품 앞에 사원의 반성문이 붙어 있다. “상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상품 색상을 잘못 정해 대실패한 상품입니다.” 너덜너덜한 골판지에 안내 문구가 지저분하게 씌어 있다. 100엔(세금 10엔 별도)이란 놀랄 정도로 ‘싼 가격’에 떨이 판매를 한다.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상품 매입을 맡긴다

돈키호테는 프랜차이즈 체인점의 기본 상식을 깨뜨린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회사라는 게 관련 업계와 학계의 평가다. 일반적으로 체인점 업태는 본부가 상품을 발주하고, 각 매장은 매뉴얼에 따라 운영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돈키호테는 많이 다르다. 정규직 사원뿐만 아니라 ‘메이트’로 불리는 아르바이트생이나 파트타임 직원에게도 상당한 권한을 준다. 상품 매입은 물론 가격 책정과 상품 진열, 제품 광고까지 허용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너무 많이 매입했다”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왔다”라며 시행착오가 생기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럴 경우 회사 본부는 “너무 공격적으로 나섰던 것뿐”이라며 매장 사원을 보호한다. 떨이 판매를 통해 실패를 드러내 점포 평판을 떨어뜨리는 리스크도 있지만,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보고 있다.

해외 점포도 상황은 비슷하다. 점장을 포함해 일본인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외부 디자인, 점포 내 레이아웃, 진열 상품이 다 다르다. 돈키호테는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매장이 한 곳도 없는 이유다. 최상철 간사이대 상학부 교수는 “정통 체인점의 기본 상식을 깨고, 기존 업계 추세를 거스르는 돈키호테의 ‘역추세 경영’이 장기 침체기에 효력을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야스다 다카오 돈키호테 창업 회장. 사진 PPIH

매장 콘셉트는 C+D+A

돈키호테에서는 판매점을 ‘구매처’라고 부른다. 판매점은 기업 측에서 본 용어고, 방문 고객 입장에선 상품을 사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구매처를 만드는 명확한 철학도 있다. 바로 ‘컨비니언스(Convenience·편리함)+디스카운트(Discount·저렴함)+어뮤즈먼트(Amusement·즐거움)’의 덧셈이다.

가루베 테츠야 최고정보책임자(CIO)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잃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DNA”라고 강조한다. 돈키호테는 상품을 높이 쌓아 올린 ‘압축 진열’로 유명하지만, 그것은 소비자를 즐겁게 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그는 “입사 직후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공간 창조였다”며 “재미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물건은 팔린다”고 주장한다.

돈키호테에는 언제든 매장을 방문해도 고객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흥미 기한’ 개념도 있다. 식품의 유통기한처럼 반년 동안 한 개도 팔리지 않은 상품은 강제적으로 손실 처리 대상이 된다. 그만큼 이익이 줄기 때문에 직원은 필사적으로 팔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낸다. “그러면 매장이 또 즐거워진다. 가게 안쪽에 있었던 상품이 밖으로 나오면 손님에게 신상품처럼 보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세븐&아이, 이온 웃도는 높은 이익률

PPIH는 1989년 창업 이후 2022 회계연도(2022년 7월~2023년 6월)까지 34기 연속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일본 소매 업계에서 세븐&아이홀딩스, 이온,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운영회사)에 이어 매출 기준 4위다. 2022 회계연도에는 영업이익이 1000억엔(약 9000억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률은 5.4%로 세븐&아이, 이온을 웃돈다.

최근 일본 국내에서 나가사키야(長崎屋)와 종합 슈퍼마켓 ‘유니’를 인수, 그룹에 편입시켰다. 미국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서도 슈퍼마켓을 인수했다. 아시아 지역에선 일본산 식품과 생필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DON DON DONKI(돈돈돈키)’ 매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홍콩에는 스시 전문점도 열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것도 돈키호테의 실적에 호재가 되고 있다. 2022 회계연도 면세 매출액은 383억엔(약 3400억원)까지 회복됐다. 올해 6개월 기준으론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많았다.

토착형 점포 지역 재생 기여, 해외 매장 확대

돈키호테는 고치현을 뺀 46개 도도부현(광역 지자체)에 진출했다. 지난 2020년에는 미야자키의 백화점 ‘본벨 타치바나’를 이온으로부터 인수해 ‘메가 돈키호테 미야자키 타치바나 도리점’을 열었다. 쓰러져 가는 백화점을 재생한다는 측면에서 PPIH에도 새로운 도전이다. 회사 측은 “첫해는 목표에 미달했지만, 2년째부터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며 “지역 점포의 성공적인 회생 모델 케이스”라고 자평했다.

지역 출점은 특성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식품 슈퍼마켓은 물론, 백화점에 들어가는 사례도 있다. 외딴섬에도 돈키호테가 있다. 2016년에는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에 진출했고, 2018년에는 이시가키섬에도 상륙했다. 미야코지마나 이시가키섬의 돈키호테는 신선 식품이나 토산품을 팔아 현지 주민과 관광객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일본의 소매 유통 업체들은 편리성과 저가로 회사를 키워왔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편의점은 포화 상태가 됐고, 슈퍼마켓은 엔화 약세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소비자가격을 올려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 이런 시장 환경에도 돈키호테는 쇼핑의 ‘즐거움’을 내세워 체인점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돈키호테 매장을 방문하면, 테마파크처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 쇼핑 시대에도 사람들은 굳이 시간을 들여 매장을 찾아간다. 최상철 간사이대 교수는 “돈키호테는 소비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강하고, 조직 운영 방식이 독특하다”며 “회사 경영에 독창성이 있고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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