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뉴턴의 운동법칙 무시하는 정자] “정자 연구, 유체 이동 미세로봇 개발, 男 불임 문제 해결에 도움”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 2023. 11. 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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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으로 본 정자 이동을 그린 일러스트. 정자는 편모의 탄성을 이용해 유체 에너지를 잃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미 워싱턴 주립대

정자의 운동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연이어 밝혀졌다. 정자는 뉴턴의 운동법칙마저 무시하고 난자를 향해 돌진하고, 이동할 때 사이클 선수들처럼 서로 무리 지어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자 꼬리도 한쪽으로만 움직인다는 것도 최근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정자의 운동 능력을 밝히면 남성 불임(不姙) 문제를 해결하고, 유체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초미세 로봇을 설계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소 정자들(노란 타원 안)은 개별 정자보다 점도가 높은 체액이 흐르는 생식기 안에서 더 잘 이동했다. 사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농업기술주립대

편모의 탄성 이용해 추진력 얻어

일본 교토대 수리과학연구소의 이시모토 켄타(Ishimoto Kenta) 교수 연구진은 10월 11일(현지시각)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피지컬 리뷰 엑스(PRX) 생명’에 “인간의 정자와 녹조류 세포는 자기 몸을 변형해 뉴턴의 운동 3 법칙을 넘어서는 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뉴턴의 운동 3 법칙은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이다. 이를테면 내가 벽을 밀면 벽이 같은 힘으로 나를 밀어낸다는 것이다. 이시모토 교수는 “이번 연구에 따르면 내가 벽을 밀면 벽이 나를 미는 대신 내게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정자와 녹조류인 클라미도모나스(Chlamydomonas)의 운동을 관찰했다. 둘 다 몸에서 채찍처럼 뻗어 있는 가늘고 긴 편모(鞭毛)를 움직여 이동한다. 정자나 녹조류가 이동할 때 점성이 있는 주변 유체는 장애가 된다. 편모가 유체를 밀면 반작용으로 세포의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정자나 녹조류 세포는 아무리 편모를 흔들어도 더는 전진하지 못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정자나 녹조류의 편모는 탄성이 좋아 주변 유체와 반응해 형태를 쉽게 바꿀 수 있다. 덕분에 주변 유체에 에너지를 잃지 않고 뉴턴의 운동 3 법칙을 위배하는 비가역적(non-reciprocal) 방법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모가 유체를 쳐도 유체가 반작용하지 않고 밀려나는 식이다.

교토대 연구진은 이러한 편모의 변형을 ‘홀수 탄성 계수(odd elastic module)’란 수치로 정리했다. 이 수치가 클수록 편모는 주변 유체에 방해받지 않고 더 많이 흔들린다. 민태기 에스엔에이치연구소 소장은 “작은 새가 날개를 더 많이 퍼덕이듯 물속의 생명체도 작을수록 꼬리나 편모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이번에 이를 홀수 탄성이란 개념으로 일반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자가 뉴턴의 운동 3 법칙을 거스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민 박사는 말했다. 그보다 3 법칙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기동을 해서 추진력을 얻는다는 의미란 것이다. 새들이 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채를 아래위로 똑같이 흔들면 날지 못한다. 뉴턴 3 법칙에 따라 아래위로 작용하는 힘이 같기 때문이다. 새는 의도적으로 날개를 부채와 다른 형태로 퍼덕여 날 수 있다. 이시모토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이용하면 정자의 편모처럼 몸통을 부드럽게 만들어 뉴턴의 3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헤엄치는 초소형 로봇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태기 박사는 “생체 모방 역학이 중요한 것은 자연이 오랜 진화 과정에서 갖춘 기능이 인류의 진보에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자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것은 사이클 선수들이 공기저항을 덜 받기 위해 무리 지어 움직이는 펠로톤과 흡사하다. 사진 픽사베이

사이클 선수처럼 협동해 저항 극복

남녀 모두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정자의 운동 능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0년 35~49세 남성이 아빠가 되는 경우가 1000명 중 43명이었지만, 2015년에는 1000명 중 69명으로 급증했다. 2015년 뉴질랜드 연구진이 ‘노화 연구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남성의 나이는 정자의 모양과 움직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과학자들은 정자들이 난자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인다는 기존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보다 서로 밀어주는 사회적 협동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농업기술주립대 연구진은 2022년 ‘첨단 세포발생생물학’에 “여성 생식기의 3차원 구조를 모방한 실험을 통해 소의 정자들이 2~4개체가 무리 지어 체액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농업기술주립대 연구진은 그동안 물을 묻힌 유리판 사이에 정액을 눌러 붙인 상태로 관찰해 정자의 삼차원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신 연구진은 삼차원 입체 구조인 실리콘 미세관의 한쪽에 주사기로 여성 생식기에서 분비되는 체액처럼 점도가 높은 액체를 주입하고, 반대편에 사람 정자와 모양과 운동 형태가 비슷한 소의 정자 약 1억 개체를 넣었다.

관찰 결과 정자들은 둘에서 넷 정도 개체가 무리를 지어 마주 흘러오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거슬러 헤엄쳤다. 연구진은 “정자들의 군집 이동은 사이클 선수들이 공기저항을 덜 받기 위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펠로톤(Peloton)’과 비슷하다”며 “무리를 짓지 않으면 어떤 개체도 자궁에 흐르는 체액의 강한 유속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한 경쟁을 벌이다가 다 실패하기보다 일부만이라도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 갈 수 있도록 군집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자의 이동 모습 시뮬레이션. 꼬리를 한쪽으로만 움직이지만 몸통을 회전하기 때문에 직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영국 브리스톨대

300년 만에 밝혀진 정자의 진짜 운동

성교육 영상에서 정자는 꼬리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뱀장어처럼 이동했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헤르메스 가델하(Hermes Gadêlha) 교수 연구진은 2020년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정자가 한쪽으로만 꼬리를 움직인다는 사실이 300년 만에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자가 이동하면서 몸통을 회전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좌우로 대칭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가델하 교수 연구진은 1초에 5만5000번 촬영이 가능한 입체 카메라로 정자의 움직임을 찍었다. 동시에 시료를 아래위로 고속 이동시켜 꼬리의 여러 부분에 초점을 맺을 수 있는 현미경도 사용했다.

꼬리가 비대칭 운동을 하면 정자는 결국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꼬리를 한쪽으로만 움직이는 동시에 정자의 몸통 축이 회전하기 때문에 직선운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정자의 꼬리는 오른쪽으로만 움직이는데 몸통이 180도 돌면 왼쪽으로 움직이는 셈이 된다.

연구진은 정자의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하면 정자의 운동 능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남성 불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정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남성 피임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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