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러셀 로버츠 예루살렘 살렘칼리지 총장] “결혼할까, 말까” 다윈도 못 푼 과제…결정 아닌 결심의 문제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기차는 예정 없는 곳에 멈춰 서고, 종종 선로를 이탈하고, 제 갈 길을 간다(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흙에 불안을 섞은 존재가 인간이라고 한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운명의 볼모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측정하고 비교한다. 유한한 시간의 소비자로서 나 또한 결정적 순간에 가장 큰 쾌락과 효율을 가져올 선택을 내리고 싶어 했다. 예컨대 ‘장단점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서 불확실성을 제거해 보려고도 했고, 신에게 의지하거나 타인의 의견에 기대는 것으로 ‘위험 전가’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불확실성은 상종하기 싫은 적이었고, 통제감은 최고의 쾌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최고의 결정’ 혹은 ‘손해 보지 않을 결정’을 내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근사한 레스토랑, 효과 높은 영양제를 찾는 것은 ‘별점’과 ‘후기’라는 도구를 쓸 수 있다. 그러나 결혼(혹은 이혼)을 할지, 직장을 옮길지, 아이를 낳을지 등등 중대한 인생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하지만 애초에 결정 그 자체가 두려워 망설인다면?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예루살렘 살렘칼리지 총장인 러셀 로버츠가 쓴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불확실성과 통제감’이 밀고 당기며 고래 싸움하는 동안, 새우 등 터지듯 자책했던 보통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두려웠던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핵심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은 ‘답이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는 측정을 거부하고 다스려지지 않는다. 결혼, 육아, 이직 등에 관해 ‘선택의 효용’을 파고들었던 저명한 수학자, 과학자, 행동경제학자들도 똑같은 딜레마에 처했다. 심지어 찰스 다윈마저도.
러셀 로버츠는 중요한 인생 문제는 계량화하는 것이 불가하니 ‘최고의 결정’에 압도되지 말고, 그저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뛰어들라’고 조언한다. ‘옳은 결정은 없다’는 걸 인정한 후, 겸허하게 직관, 윤리관, 좋은 습관을 따라가 보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할 심오한 즐거움은 절대로 미리 다 상상할 수 없다. 정답이 없다는 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그는 조언한다.
‘인생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음미해야 할 미스터리’라는, 우리에게 ‘완벽한 내일’은 없고 오직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만 있을 뿐이라는 따뜻한 경제학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에 출간된 책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의 원제는 ‘wild problems’이다. ‘야생의 문제들’이란 무엇인가.
“결혼해야 할지 독신으로 살지, 자녀를 가져야 할지 무자녀로 살지, 이 일을 계속할지 그만둘지는 ‘답이 없는 문제’다. 개인의 삶에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테지만, 통제의 범위를 넘어선 야생의 문제다. 영어에서 ‘결정’은 집중해서 결단을 내리는 행위이자 동시에 강한 의지로 인내해 내는 것을 포함한다. 오랜 시간 경제학자로 보낸 후 나는 ‘완벽한 결정’은 없다는 걸 알았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인생은 어차피 지도 없이 하는 여행이기에 완벽함의 반대는 ‘엉성함’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삶을 선택과 효율의 계산기로 설명했던 경제학자가 인생을 ‘답 없는 문제’로 설정한 것 자체가 나는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선생이 생각하기에 ‘옳은 결정’이란 정말 없는 건가.
“나는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삶에서 합리적 선택을 내리도록 돕는 게 경제학이라고 배웠다. 기회비용과 트레이드오프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결정에는 대가가 따르고 하나를 챙기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말한 대로 지난 75년간 경제학은 훨씬 더 수학적으로 발전했고,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자로 불리길 바랐다. 그 결과 경제학자들은 훨씬 덜 철학적으로 됐다. 예를 들어 교육도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경로가 아닌 투자로 계산했다. 그러나 세계는 투자와 예측의 수학적 모델에서 벗어나 복잡성의 세계를 포용하는 문학적 모델로 가고 있다.
‘아름다운 신비(수수께끼나 미스터리)’를 수학 문제로 풀 수 있을까? 여전히 현대 경제학은 ‘답’을 찾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나이가 들수록 ‘답이 없는 질문’을 인정해야 각자가 당당하게 인생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와 결혼하기로 결정할 때, 그 사람과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하기란 어렵다. 또 다른 어떤 이(자녀 혹은 직장 상사)와 함께하는 삶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옳은 결정’이 있을 수 있을까? 자녀를 키우는 일은 고되고 좋지 않은 날이 더 많을 수 있지만, 부모가 된 것이 실수였다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찰스 다윈과 애덤 스미스는 왜 소환했나.
“다윈은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지만, 그 또한 결혼해야 할지를 앞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혼했을 때의 장단점을 낱낱이 적어가며 합리적 선택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냉정한 과학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는 결단력의 비약에 가까웠다. 그것만 봐도 ‘결심이 필요한 순간’의 어려움과 도전을 느낄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물질적 행복보다 평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거라고 가정했다. 비용이 더 든다 해도 ‘기본 원칙을 지킨다’는 것을 인간의 도덕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을 경제학자보다 도덕 철학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윈의 결혼 의사 결정 과정과 실제 결혼 생활을 보며 선생은 어떤 영감을 받았나.
“결심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떤 종류의 ‘뛰어듦’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당신의 결정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결과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윈은 결혼에 대해 고뇌했다. 그의 단점 목록은 장점 목록보다 더 많았다. 아내로 인해 시간을 얼마나 뺏길지를 고민했고, 자녀는 결혼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피해, 비용과 걱정의 원천이라고 기술했다. 어쨌든 그는 결혼했고, 좋은 결혼 생활을 했던 것 같다. ‘믿고 뛰어든다는 것’은 감정적으로는 보이지만, 그렇다고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심오하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러한 순간에 ‘뛰어듦’을 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카프카의 결혼에 대한 우유부단함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그것이 그에게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록을 보면 다윈은 최고의 아내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비슷한 환경에 살며 비슷한 경험을 한 사촌과 결혼했다. 40년 동안 열 명의 자녀를 낳았고, 결혼 생활 중 ‘종의 기원’ 등 학문적 업적을 이뤘으며, 현명한 조언자인 아내가 없었다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을 거라고 일기에 썼다.
수학자와 과학자들은 답이 없는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나.
“승산과 위험 확률 분야의 권위자인 스탠퍼드대 통계학 석좌교수 다이아코니스의 일화를 들려주겠다. 그가 스탠퍼드대에서 하버드대로 옮길지 말지 끝도 없이 고민할 때 친구들은 ‘자네는 의사 결정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니 ‘비용 혜택 목록’으로 기대 효용을 계산해 보게’라고 했다. 이때 이 석학의 반응은 ‘이봐. 나, 지금 심각해’였다. 이후에 의사 결정 분야의 최고 권위자는 고백했다. ‘비용 혜택 목록’은 합리적 의사 결정을 위해서라기보다 그걸 적으면서 자신이 정말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점에서 요긴하다고. 수학자 피트 하인은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결심이 서지 않으면 동전을 던지라고까지 했다.”
결혼, 이직, 이민 등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웹사이트의 가상 동전 던지기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체크리스트나 동전 던지기는 합리와 비합리의 극단 같지만 둘 다 효용이 비슷하다. 그런 행위가 감정을 자극해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알려준다. 동전이 나온 걸 보고 실망한다거나 장점 몇 개를 단점 목록으로 이동하는 자신을 보며, 진짜 마음을 목격하는 거다. 다윈도 그랬다. 끝도 없이 결혼 장단점 목록을 작성하다 마침내 데이터를 무시하고 자신의 직감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체크리스트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동전을 던져 결정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생이 안정적인 직장인 스탠퍼드대를 떠나서 예루살렘의 살렘칼리지 총장직을 수락했던 건 어떤 이유였나.
“대개 중요한 결심의 순간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의 변화나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 붙기 마련이다. 사실 내 경우는 간단하다. 그것이 옳은 일처럼 보였고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도전적이었기 때문이다. 소득 감소까지 감수하며 총장직을 수락한 후 아내와 나는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유대인인 나는 아내와 이스라엘 국민이 됐다. 들여다보면 그 결정의 진짜 이슈는 바로 정체성과 자아감을 향한 나의 오랜 열망이었다. 실제로 겪어보니 이민자가 되어 새로운 업무를 맡는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보람도 컸다. 지금까지는 정말 좋다.”
실수의 비용과 좌절은 어찌해야 하나.
“실수란 안초비를 싫어하면서도 계속 안초비 피자를 주문하는 거다. 빌 벨리칙 감독은 드래프트가 과학적 절차가 아니라 주사위 던지기에 가깝다는 걸 인정했다. 답이 없는 문제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해도 그게 내 실수는 아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결과가 나쁘면 빨리 중단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내가 이스라엘로 이민했는데 그곳이 싫다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랍비 조너선 색스가 그랬다. ‘결혼을 이해할 유일한 방법은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라고. 인생이 다 지나가는 것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실수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최적의 도시, 최고의 직장, 최선의 배우자를 찾는 노력을 그만둬야 할까.
“부디 과도한 부담을 내려놓으시라. 아마존이나 여행 사이트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거라면 별점과 후기를 참조하면 된다. 채용 후보를 고를 때라면 장단점 목록을 작성해서 선택지를 비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최선의 배우자, 커리어, 도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니다. 사회과학자 허버트 사이먼의 주장처럼 ‘최적화’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하라고 조언한다. 함께 여행하기 좋은 사람, 죽이 잘 맞고 서로 존중하는 사람과. 몇 년 전 결혼 정보 사이트의 자문위원회에 몸담은 적이 있다. 그 회사는 최고의 짝을 찾아주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단지 꼼꼼한 설문으로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서 높은 확률로 매칭 메이킹에 성공했다.
간절히 결혼을 원하면, 결혼에 진지한 사람과 데이트하면 된다. 간단하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때는 결정을 해야 한다. 완벽한 결정은 없다. 그저 더 나쁘거나 더 나아 보이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미래학자인 대니얼 핑크가 전 세계 2만여 명의 후회를 모은 ‘후회 프로젝트’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때 내린 결론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고, 대세에 큰 지장 없으니 ‘그냥 하라’였다. 동의하나.
“어쩌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일까.
“운이 좋아서 (혹은 나빠서) 계획한 대로 커리어를 쌓는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추구하는 것, 좋아하는 것, 의미를 주는 것들은 우연한 선택을 통해 하나씩 드러난다. 답이 없는 문제에 직면할 때는 예술가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예술가는 자신이 뭘 만들어낼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베토벤도 다음에 나올 음을 하나씩 고르면서 나아갔고, 피카소도 일단 그리면서 뭘 그릴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예술가의 태도로 삶을 살아도 괜찮을까.
“인생에서 때때로, 어쩌면 거의 항상(!) 명석한 분석보다는 직관에 의존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일단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키우시라. 그런 다음 A에서 B로 가는 최적의 경로를 찾으려고 하기 전에 애초에 B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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