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55> 라이벌 박세리·소렌스탐·웹의 경쟁과 우정]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LPGA 빅3…세계 골프발전 위해 뭉친다
“안니카 소렌스탐은 자기 관리의 달인이다. 연습도 그렇고 마인드도 그렇다. 연습할 땐 하고 쉴 땐 푹 쉰다. 지금도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카리 웹도 자기 자신을 정말 잘 알아서 대회를 준비하고 휴식을 취한다. 내 장점은 셋 중 가장 막내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걸 따라서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웃음).”
박세리(46)에게 왕년의 라이벌이자 지금은 절친이 된 ‘빅3’의 장점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평가했다.
1994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데뷔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53·스웨덴)은 이듬해인 1995년 여자골프 최고권위 대회인 US여자오픈을 비롯해 3승을 거두며 LPGA 투어 ‘올해의 선수’ ‘상금왕’ ‘최저타수상’을 휩쓸었다. 소렌스탐 독주 체제가 되는가 싶었는데 1996년 ‘여자 백상아리’라 불리는 카리 웹(49·호주)이 등장해 4승을 올리며 상금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1998년 ‘한국 골프의 선구자’ 박세리가 등장해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과 LPGA챔피언십을 포함해 4승을 거두었다. 유럽의 소렌스탐과 남반구의 웹, 아시아의 박세리가 ‘트로이카 시대’를 연 LPGA투어는 황금기를 맞았다.
소렌스탐, 웹, 박세리의 3인 3색 매력
현역 시절 셋은 서로 다른 개성의 카리스마를 지닌 지독한 선수였다. 소렌스탐은 대학 시절부터 모든 샷을 컴퓨터에 입력하며 약점을 고쳐나간 완벽주의자. 한 라운드 54타를 치겠다는 ‘비전 54’ 목표 아래 하루 1000개씩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엄청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질 몸집을 키웠다. 여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꿈의 59타를 기록했고, 남자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웹은 LPGA 사상 가장 뛰어난 볼 스트라이킹 능력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호주의 전설 그렉 노먼(68)이 웹의 스윙을 처음 보고는 “아름답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감탄했다. 박세리는 연장전 6전 전승이 말해주듯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 강한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나란히 LPGA투어 신인상을 시작으로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며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된 소렌스탐(72승)과 웹(41승), 박세리(25승)는 셋이 합해 138승을 거둔 최고의 맞수였다. 이들의 명승부를 TV로 지켜보느라 밤잠을 설친 국내 팬들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출근해 회사에서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렌스탐은 2008년, 박세리는 2016년 공식 은퇴했다. 웹은 대회 참가는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세계로 이끈 골프에 대한 사랑과 큰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 각자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을 운영하며 골프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세계 골프 발전을 위해 뭉친 골프계 왕언니들
젊은 시절 경쟁자였던 골프계의 왕언니들이 세계 골프 발전을 위해 뭉쳤다는 점에서 골프계가 더욱 주목하고 있다. 10월 7일 부산 기장군 스톤게이트CC에서 열린 ‘2023 Maum(마음) 박세리 월드 매치’에 참가한 이들을 인터뷰했다. 그 뒤에도 이메일을 통해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소렌스탐이 LPGA투어에서 유일하게 기록한 꿈의 59타는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PGA투어에서는 여러 차례 50대 타수가 나왔다. 소렌스탐은 2001년 3월 16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문 밸리CC(파 72)에서 열린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 2라운드에서 8연속 버디를 포함해 총 13개 버디를 잡으며 13언더파 59타를 쳤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LPGA 18홀 최소타 신기록이다. 소렌스탐의 말이다. “그날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믿을 수 없게 8연속 버디를 잡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남은 9홀에서 더 버디를 잡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골퍼들이 54타를 칠 수 있다는 ‘비전 54’의 정신을 믿는다. 요즘 여성 골퍼들은 실력이 좋기 때문에 50대 타수는 조만간 나올 것이다.” 소렌스탐이 말하는 ‘비전 54’는 스웨덴 국가대표 코치였던 피아 닐슨과 린 매리어트가 설파한 골프의 목표로, 정신과 기술이 완벽하게 준비하면 한 라운드 18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렌스탐은 웹의 꾸준함과 박세리의 강한 정신력을 높이 샀다. 그리고 자신은 골프에 완전한 몰두 하는 것이 장점이었다고 했다.
소렌스탐은 “골프는 평생 기쁨과 고통을 함께 준 애증(love and hate)의 대상이었다”며 “골프를 통해 많은 걸 누린 우리는 서로 힘을 합해 세계 골프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했다.
웹은 좀처럼 한국을 찾지 않았다. 본인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아주 오래전 한국을 찾았을 때 화장실 이용에 불편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박세리가 귀띔했다. 이런 웹은 올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에서 열렸던 US여자오픈에서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역대 US여자오픈 챔피언들의 이벤트 대회에 박세리, 줄리 잉크스터(63·미국)와 한 조가 된 웹은 라운드 중 박세리가 자신의 자선 대회 참석을 제의하자 “세리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가겠다”며 곧바로 수락했다고 한다. 웹은 며칠 일찍 국내에 들어와 평소 연락을 주고받는 최나연 안내로 서울 여행을 하고, 박지은과 한국식 갈비를 즐겼다. 웹은 “한국이 참 멋진 나라라는 걸 만끽했다”며 웃었다.
“LPGA투어의 미래 만드는 3인방”
위대한 골프 선수의 자질은 무엇일까. 웹의 생각은 이랬다. “글쎄, 대단한 골프 선수의 성공 원인을 그냥 몇 가지 특성으로 한정 짓기는 쉽지 않다. 성공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골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부모나 코치 등 다른 사람에 의해서 억지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수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자신의 최고를 뽑아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희생이라는 그런 생각이 없어야 한다.” 웹은 “소렌스탐보다 육체적으로 나은 선수는 분명 있었겠지만, 다른 선수들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강한 멘털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박세리에 대해서는 독특한 관점을 이야기했다. “박세리는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하는 선수였다. 그 덕분에 매주 자신감이 충만했다. 박세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골프를 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모든 응원을 한 몸에 받고 그 힘으로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웹은 “인구 8500명인 조그만 시골 마을 출신인 내가 골프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만났던 것처럼 더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호주 교포 출신 프로 골퍼인 이민지와 오수현, 그레이스 김 등은 주니어 선수들에게 세계 무대를 경험하는 기회를 주는 ‘카리 웹 장학금’을 받으며 성장했다.
박세리와 소렌스탐은 지난 10월 한국에서 연 제1회 주니어 골프 대회인 박세리&안니카 인비테이셔널 아시아를 시작으로 더 많은 협업을 구상하고 있다.
웹도 더 많은 일을 같이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현역 시절 한 외신은 “박세리와 소렌스탐, 웹을 빼놓고는 LPGA투어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될 예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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