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철학과 역사, 문학을 배워야 할까?

김영훈 2023. 11.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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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교육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은 오래 전부터 대두되었다.

의예과 외의 자연계열 학과들, 예컨대 건축과, 토목과, 전산학과, 기계과 등도 대학 1~2학년 때 이와 비슷한 수준의 인문학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전국 각지의 의과대학 교수들이 참여한 이 포럼에서 강조된 것 중 하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교육'과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이었다.

또 인문학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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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의사의 인문학
의사들이 환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문학적 지식과 능력이 필요하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의학 교육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은 오래 전부터 대두되었다. 현대 의학의 뿌리는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로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이다. 이때 활동한 히포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알크메온 등은 모두 의사이면서 철학자, 수학자였다. 의학은 철학에 바탕을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의사들은 스승에게서 배우는 도제 교육으로 의술을 배웠지만, 철학과 수사학에도 뛰어났다.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의사는 갈렌(Claudios Galenos, 그리스어로 '조용하다'라는 뜻) 이라 할 수 있다. 사학자들에 따르면 갈렌은 의학을 과학으로 만든 본격적 의사이며 '의사들의 왕자'로도 불린다. 의학 교육을 받기 전 그는 고향 페르가몬에서 수학, 철학, 논리학 등을 배웠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그가 의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그러한 배움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현대의 의학 교육은 어떠할까? 학교마다 다르지만 1~2학년인 의예과 시절에는 교양 및 의학의 기초 학문을 배운다. 고려대 의예과에서는 인문학 강의라 할 수 있는 '세계의 문화,' '역사의 탐구,' '문학과 예술,' '윤리와 사상,' '사회의 이해,' '과학과 기술,' '디지털 혁신과 인간'의 일곱 과목 가운데 2개 이상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모두 3학점짜리이므로 6학점을 이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별개로 '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1년에 1회씩 모두 2회 받아야 한다. 이 정도면 인문학 교육이 충분할까?

의예과 외의 자연계열 학과들, 예컨대 건축과, 토목과, 전산학과, 기계과 등도 대학 1~2학년 때 이와 비슷한 수준의 인문학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온통 숫자와 부호, 공식들이 난무하는 전공학과와 비교해 인문학 강의는 쉬울까, 어려울까? 학생들은 '서양철학사'를 배우는 것이 삶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규정 탓에 마지못해 수업을 들을까? 졸업 후 현장에서 일 할 때 서양 철학은 도움이 될까?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2021년 2월에 '뉴노멀 시대 의학 교육의 미래'를 주제로 온라인 포럼이 열렸다. 전국 각지의 의과대학 교수들이 참여한 이 포럼에서 강조된 것 중 하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교육'과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이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온라인 교육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비록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또 인문학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되었다.

미래의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의료 기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와 가족, 지역 사회를 둘러싼 보건 의료 정책, 환경과 질병의 관계 연구, 팀워크, 리더십 역량, 협업, 비판적 사고 능력, 창의력, 문해력, 감성 역량 등이 필요하다.

'한 명의 의사가 이 많은 능력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 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답은 '갖추어야 한다'라고 필자는 강력히 믿는다. 의사로서 필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주위의 의사들을 살펴봤을 때 답은 명약관화하다. 의사들이 환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문학적 지식과 능력이 필요하다. 또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할 때에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다. 환자도 사람인데,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의사도 사람이기에 의사 자신이 시시각각 부딪히는 각종 문제에서도 인문학적 지식과 능력은 큰 도움이 된다.

필자는 의사를 포함해서 모든 청춘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바다를 건너서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좁쌀뱅이 시야로는 직업생활이 조금이라도 높은 벽을 마주치면 좌절할 수도 있지만, 넓은 시각으로는 자신의 난관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이전 시대에 설정된 의학 교육의 내용과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의료진이 우리 사회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을 때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김영훈 교수 (yhkmd@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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