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아직도 삼성전자의 '워너비'인가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 11. 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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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지난 20년과 삼성과 소니의 길 비교해보니
삼성전자와 소니 홈페이지 초기화면 캡쳐/사진제공=각사 홈페이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자 업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은 늘 소니(Sony)가 다음은 어떤 제품을 출시할지 궁금증을 가지고 소니의 제품 발표를 기다렸고, 소니는 늘 우리를 놀라게 하곤 했죠. 소니는 항상 우리의 워너비(want to be: 되고 싶은 것)였습니다."

2018년 1월 초순 어느 날 저녁 국제가전전시회(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식당에서 만난 삼성전자의 한 사장은 이날 현장에서 발표된 소니의 로봇반려견 '아이보(aibo)'에 대한 기자의 혹평에 이같은 평가를 내놨다. 한마디로 소니의 실력을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소니 부스에서는 1999년 처음 발표했던 아이보 ERS-110의 후속 버전으로 ERS-1000이 발표됐다. 각종 센서 기술과 인공지능 학습 능력을 가진 아이보가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멈추는 등 다소 어설픈 장면이 연출됐다. 이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린 기자에게 그는 엔지니어적 관점에서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삼성전자의 CEO가 된 그(한종희 부회장)는 당시 "소니는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진 기업이며 항상 미래 변화를 선도해왔고, 삼성에게는 늘 큰 자극이 되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2004년 소니와 합작한 S-LCD에서 등기이사를 맡으면서 협력관계를 이어왔고, 2011년 오가 노리오 전 소니 회장 별세 후 추도식에도 참석하는 등 소니 측과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2009년 6월 2일 삼성전자 탕정사업장에서 개최된 S-LCD 두번째 8세대 라인 양산 출하식에서 참석자들이 첫 출하를 축하하기 위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맨 끝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전무)

소니의 변화는 삼성에게는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 소니가 지난 9일 2023년 2분기(7~9월, 우리나라와 분기 기준이 다름)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매출 11조 5398억엔,-한화 111조 8207억원, 영업이익 1조 2080억엔-한화 11조 7055억원)을 올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던 소니는 2분기 영업이익(2630억엔-한화 2조 5485억원 )이 전분기보다 30% 가량 줄며 주춤한 상태다.

2022년 43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삼성전자가 약 12조 6900억원에 달하는 반도체 부문의 누적적자로 올 3분기까지 누적이익이 3조 7423억원에 그친 것과 닮은 듯 다른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90% 이상 줄어 '어닝쇼크'다.

2003년 4월 '소니 쇼크'를 경험한 후 20년의 시간동안 소니의 변화와 비교해 삼성전자가 지나온 발자취와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사흘만에 30% 폭락 20년전 '소니 쇼크'의 진실은
2003년 4월 24일 오후 소니는 2002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까지) 실적을 발표했다.

당시 소니는 매출 7조 4736억엔, 영업이익은 1854억엔, 순이익 1155억원을 기록했다. 직전해에 비해 매출은 1.4%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37.7%, 순이익은 655% 늘어나며 V자 반등에 성공했다. 2008년 이후 적자를 이어가던 것에 비하면 완전한 턴어라운드이자 호실적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소니의 분위기는 좋았다.

문제는 이날 발표한 다음해(2003년 4월~2004년 3월) 실적 전망이었다. 이날 소니는 "다음해 영업이익은 2002년 대비 -30%, 순이익은 -57% 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니의 내부적 판단은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전자제품 부문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본 듯했다. TV 부문에선 삼성전자나 샤프와 달리 자체 패널을 확보하지 못해 LCD TV의 수익성이 하락할 것으로 분석한 듯했다.

앞서 1990년대 중반 LCD 시대를 읽지 못하고 미국 내 브라운관 공장 건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것과, 1998년 콜롬비아 영화사를 5000억엔 이상의 고가의 프리미엄까지 얹어 인수하면서 불어난 부채 부담도 실적 악화의 한 요인으로 분석됐다. 2003회계연도에 대한 부정적 전망은 소니의 주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소니 주가 추이/사진제공=구글 파이낸


이 발표로 이튿날부터 소니의 주가는 사흘동안 30% 가량 급락했고 세간에서는 이를 '소니 쇼크'라고 불렀다. 그 영향은 일본 증시는 물론 전세계 IT 기업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듬해 소니의 실적은 전망보다 더 나빴다. 1300억엔 정도로 기대했던 영업이익은 989억엔으로 떨어졌다. 전년보다 30% 줄어들 것이라던 영업이익은 반토막 수준인 46.7%로 줄었다. 순이익도 적자는 면했으나 885억엔에 그쳤다.

부문별로는 전자제품(4조 8974억원)이 전체 매출의 65.3%를 차지했는데, 여기서 353억엔의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게임(매출 7802억엔), 영화(7564억엔), 금융서비스(5935억엔), 음악(5599억엔), 기타(3304억엔)에서 돈을 벌어도 핵심사업의 적자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소니는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는 본업이었던 TV 등 전자 업종의 비중을 줄이고, 오래 전 투자했던 음악과 영화·게임 등 컨텐츠 분야로의 활로 모색이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TV는 LCD TV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듬해인 2004년 삼성전자와 50대 50의 S-LCD 합작사를 설립해 명맥을 이어갔다.

전자왕국 소니에서 게임왕국 소니로 체질 개선


지난 9일 소니는 2분기 매출 2조 8286억엔과 영업이익 2630억엔을 각각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8.7%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28.8% 줄어든 것이다. 이익이 가장 많이 줄어든 분야는 전분기와 비교해 643억엔(-80.4%)이 줄어든 금융서비스 분야였고, 뒤를 이어 276억엔(-37.3%) 줄어든 이미지센서였다.

소니의 사업구조를 보면 플레이스테이션(PS)을 포함하는 게임&네트워크서비스(G&NS) 부문이 전체 매출의 33.7%(9541억엔)를 차지했다. 게임의 경우 플레이스테이션5(PS5) 외에도 구독서비스인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의 가입자 약 4800만명의 안정적 수익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음악부문이 810억엔(전체의 29.8%)로 1위를 차지했고, 홈엔터터엔먼트와 사운드 장비 등이 포함된 엔터테인먼트 기술&서비스(ET&S)가 610억엔으로 두번째로 이익이 높은 부문이다.

게임과 음악, 영화 등 컨텐츠 부문이 소니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의 60%를 넘어서 20년전 전자제품 부문이 60%를 넘어선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확실히 하드웨어 제조회사에서 컨텐츠 기업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하지 못하는 은행과 보험, 손해보험 등 금융서비스 분야도 소니에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니가 어려울 때는 마중물 역할도 했다. 10년전인 2013년의 경우 금융부문의 매출(9938억엔)이 모바일(휴대폰)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고, 이익은 금융의 이익(1703억엔)이 적자를 낸 다른 사업부문을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로 커졌다. 과거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워크맨, CD 플레이어, 브라비아 TV 등 전자제품 명가였던 소니의 변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포트폴리오 변화 없이 기술경쟁력으로 성장한 삼성전자


지난 20년간 소니의 드라마틱한 변화와 달리 삼성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큰 변화 없이 기존 주력 사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시장 지배력을 넓힌 경우다.

2003년부터 20년간 삼성전자는 정보통신, 반도체, 디지털미디어(TV) & 가전, 디스플레이 등 크게 4가지 사업을 핵심으로 해왔다. 이 중 몸집을 키우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휴대폰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이후 이름은 TN, IM, MX로 바뀜) 부문이다.

2003년 삼성전자의 5개 총괄의 매출은 정보통신이 14조원, 반도체가 약 13조원, 디지털미디어 약 8조, LCD 5조원 등 생활가전을 빼면 그 덩치가 비슷비슷했다. 그러다보니 해당부문 총괄 사장들간의 주도권 경쟁도 치열했다.

그러던 것이 10년이 지난 2013년에는 휴대폰·IT 부문인 IM 부문이 평정했다. IM이 전체 매출(228조 6900억원)과 영업이익(36조 7900억원)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 나온 얘기가 정보통신(스마트폰)에 편중된 삼성전자 사업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우려였다. 매출과 이익이 한 부문에 집중될 경우 위험하다는 논리였다. 편중된 매출과 이익의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 두가지다. 해당부문의 사업을 줄이거나, 다른 부문의 사업 경쟁력을 높여 비중을 맞추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후자의 전략에 성공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 구조를 보면 MX(휴대폰 등)가 전체의 40%를 차지한 가운데 반도체가 32.6%, DX가 20.1%로 과거보다는 모바일 부문의 편중도가 완화됐다.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매출은 모바일 부문이 많지만 이익은 반도체가 모바일보다 2배를 더 벌어들이며 전체의 54.9%를 차지했다.

지난 20년간 삼성전자는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하고, 고성능 메모리로 기술적 진화에는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주요 사업 아이템의 변화는 크게 없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가전(TV포함)의 구조를 유지해왔다. 그나마 2017년 인수한 하만의 전장 사업이 삼성전자가 새로 찾은 아이템이다.

소니의 위기에서 삼성전자가 배울 점
사실 삼성전자의 20년과 소니의 20년을 단순비교하기는 힘들다. 두 회사의 성장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년간(2003년~2022년) 매출이 594% 성장했고, 이익도 503% 성장했다.

반면 소니는 같은 기간 매출이 54%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반적인 성장률을 감안하면 20년간 사실상 정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익은 1122% 늘었으나 이는 2003년의 이익이 워낙 낮은 기저효과 때문이라 큰 의미가 없다.

2022년 삼성전자와 소니의 영업이익을 비교하면 소니(1조 2080억엔-한화 11조 7055억원)는 삼성전자(43조 3800억원)의 3분의 1도 안되는 27%에 불과했다. 매출도 삼성전자의 37% 수준이다. 20년전인 2003년 소니의 매출(7조 4960억엔-한화 약 81조 4568억원, 100엔당 1,086.67원)이 삼성전자 (43조 5800억원)의 두배 정도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다.

실적으로 말하는 기업의 역사에서 소니의 지난 20년의 성장은 삼성전자의 그것에 훨씬 못미친다. 소니의 변신은 혁신에 앞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다만 위기에서의 소니 생존비법이 향후 삼성전자에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소니의 위기와 부활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롤모델로 삼던 소니는 한 때 전자기술에서는 세계 최고봉을 찍은 기업이다. 이런 기업의 몰락에는 항상 '자만심'이라는 복병이 숨어있다.

최근 만난 삼성전자 전직 CEO는 "제가 2000년대 초반 소니를 방문했을 당시 소니 임원이 저에게 '소니는 엔지니어의 자만심 때문에 망해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보다 앞서 1994년 각 사업부별 독립채산제를 도입한 소니는 선의의 경쟁보다는 부서간 칸막이와 부서이기주의가 팽배해졌고, 단기적인 이익에 치중해 미래 투자를 도외시하면서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기술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시장의 변화를 도외시했고, 각사업부별 역할을 조정하는 기능이 사라지면서 불필요한 과당경쟁이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사실 이데이 노보유키 회장은 소니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바르게 수립했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다. 이데이 회장의 전략을 현재의 애플이 그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만봐도 소니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타이밍에서 실패한 뿐이다.

반면 삼성의 경우 독립채산제를 하면서도 사업부간 과당경쟁이나 계열사간 중복투자 조정 등은 컨트롤타워역할을 했던 구조조정본부나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이 조정하면서 비효율을 줄였던 차이가 있다. 또한 강력한 리더십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했던 점이 다르다. 소니는 잘못된 인사 제도나 현장중심의 소니 정신이 사라지면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졌다. 이런 부분은 삼성전자가 깊이 꼽씹어볼 대목이다.

소니가 CES 2022에서 공개한 SUV형 전기차 프로토타입 비전S02.

삼성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드웨어 중심의 삼성전자와 소프트웨어와 컨텐츠로 전환하는 소니의 길 중 어느 길이 옳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소니는 지난해 9월 혼다와 함께 소니 혼다 모빌리티 합작사를 설립하고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 진출보다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경우 차량 내에서의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등에 자사의 기술력을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새다.

2021년 소니그룹의 지주회사 출범 이후그 산하에 게임 & 네트워크 서비스, 음악, 영화, ET&S(엔터테인먼트 기술 & 솔루션), I&SS(이미징 및 센싱 솔루션), 금융의 6 개 사업 회사로 재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더해 아이보를 비롯한 로봇산업과 노인 케어 등 건강관리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의 변화는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역량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우선 과제는 파운드리 사업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AI(인공지능)와 로봇, 바이오 산업에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그동안 주춤했던 반도체 설계 기술을 최첨단으로 유지하는데도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대 플라톤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정신을 육체보다 상위 개념으로 놓듯 현대에도 소프트웨어(정신)를 하드웨어(육체)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며 "하지만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의 기본 틀 위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있어도 담을 그릇이 없으면 갈증을 해소할 수 없듯 소비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조화로운 결합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소니가 가야할 길도 그 위에 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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