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휴스턴' 29년 묵은 LG家 우승열망 푼 구광모 구단주, 그는 왜 취임 3년간 외부 FA를 잡지 않았을까

정현석 2023. 11. 1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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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LG가 5차전을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구광모 회장과 차명석 단장이 환호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11.13/
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KT와 LG의 경기, 경기장을 찾은 LG그룹 구광모 회장이 김인석 LG스포츠 대표이사와 함께 선수단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3.11.07/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구단주 취임 직후였다.

해설자에서 현장으로 복귀한 LG 트윈스 차명석 신임 단장이 구광모 신임 구단주를 인사 차 방문했다.

"취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단장님의 메이저리그 중계를 더 이상 못 듣게 돼 아쉽습니다."

구광모 회장은 스포츠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 즐겨보던 미국 4대 스포츠(야구, 농구, 미식축구, 하키)에 조예가 깊다.

당연히 LG 트윈스 야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관심도 각별하다. 표현을 과하게 하지 않을 뿐이다.

이유가 있다. 40대 초반에 LG라는 거대그룹의 총수를 맡은 터. 그룹 전체 경영이 당연히 우선 순위였다.

하지만 트윈스에 대한 관심은 늘 변함이 없었다. 구단주는 이번 한국시리즈 잠실 1차전, 수원 4차전에 이어 우승이 결정된 잠실 5차전에도 경기 전부터 야구장을 찾았다. 많은 구단주들이 우승이 확실시 되는 경기 종반에 야구장에 나타나는 것과는 다른 파격적 행보였다.

1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경기장을 찾은 LG 그룹 구광모 회장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3.11.13/
6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IA와 LG의 경기, 경기 종료 후 펼쳐진 LG 트윈스의 정규시즌 우승 세리머니에서 차명석 단장과 염경엽 감독이 팬들에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3.10.06/

2019년 구단주 취임 초기, 팬들은 살짝 오해를 했다.

우승이 목표인 구단이 무려 3년 간 외부 FA 영입에 팔짱만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차명석 단장과의 대화 속에 답이 있다.

구단주가 대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간 차이'를 물었다. 휴스턴은 2017년, 보스턴은 2018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다.

차 단장은 "휴스턴은 오랜 탱킹을 통해 유망주를 키웠고, 보스턴은 적절한 타이밍이 오면 윈나우로 슈퍼스타를 영입했다"고 우승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했다.

질문의 이유는 분명했다.

구단주가 원한 LG 트윈스의 미래는 "1년 반짝이 아닌 지속 가능한 강팀"이었다. 이를 위해 "화수분 야구가 가능한 팜 시스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홍창기 등 특정 유망주를 직접 언급하며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물어볼 정도였다.

구단주가 다시 물었다. '왜 모든 단장과 감독이 바뀌면 3년 안에 우승하겠다고 이야기 하는 겁니까?'

차 단장은 "팜이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팀이라면 몰라도 하위권 팀은 3년 안에 우승 못합니다. 지속적인 강팀으로 우승까지 넘보려면 5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팜을 키우는 시간인 3년 동안은 외부 FA를 잡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약속했고, 실천했다. 3년 간 외부 FA 영입 없이 2군 유망주들을 키웠다.

구단주의 철학과 의지가 확고했던 만큼 팜 시스템에 대한 구단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경기도 이천의 LG 챔피언스파크는 최고 시설을 자랑한다. 최대 규모의 실내 돔 연습장과 메인 야구장에는 천연잔디와 태양광과 흡사한 전광탑, 안전펜스 등 최신식 시설이 갖춰져 있다. 훈련에 전념하기 최적의 환경. 고우석 정우영 김윤식 등 유망주 투수들과 홍창기 문보경 등 타자들이 급성장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풍성해진 LG 트윈스의 팜은 이제 10개 구단 최고의 뎁스를 자랑한다. 올 겨울 다시 부활된 2차 드래프트 시장의 최대 타깃은 LG 유망주다. 한때 '화수분'으로 불렸던 전성기 두산 베어스 팜 시스템을 능가할 정도다. 구단주의 관심과 지원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10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 KT와 LG의 경기. 1회 선두타자 안타를 날린 홍창기.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3.11.10/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1차전. 1회말 1사 박해민이 안타를 친 후 환호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11.7/

2017년 6위였던 LG는 이듬해인 2018년 8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암흑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 부터 한해도 빠짐 없이 5강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구광모 구단주가 원했던 '지속가능한 강팀'의 첫 걸음이었다.

외부FA 영입 없이 유망주 발굴에 힘써온 '약속의 3년'이 지난 지난해, LG는 박해민을 FA로 외부에서 영입했다. 이제는 우승할 때가 됐다는 판단이었다. 올시즌을 앞두고는 안방마님 박동원까지 FA로 영입했다.

실제 LG는 류지현 감독 시절인 2022년 구단 역대 최다승을 기록한 뒤 올시즌 대망의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홍창기 같은 팜에서 성장한 유망주 출신과 박해민 같은 우승청부사로 영입된 선수가 어우러져 이뤄진 융합의 과실이었다.

드디어 LG 챔피언스파크가 진정한 이름을 찾게 된 셈. 이 곳이 배출한 유망주 선수들이 팀을 29년 만의 챔피언에 올렸다. 야구에 대한 구광모 구단주의 폭 넓은 이해와 조바심 없이 장기적 호흡으로 기다려준 결실이 2023년 통합우승의 결실로 돌아왔다.

선대부터 그토록 열망하던 LG가(家)의 한국시리즈 우승 열망.

야구에 대한 조예가 깊은 구광모 구단주가 '보스턴의 길+휴스턴의 길'을 적절히 융합해 멋지게 해냈다. 29년 묵은 숙원을 푼 LG가 젊은 구단주의 새 바람과 함께 바야흐로 새로운 왕조 시대의 출발점에 섰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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