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농구인생 제 2막 ① ‘12년 만에 회원 1500명’ 강남 삼성 농구클럽 이나남 원장
[점프볼=김종수 칼럼니스트] ‘배운게 도둑질이다’는 속담이 있다.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하는데 주로 직업을 고민할 때 자신이 하던 일이 익숙해서 그 길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이는 운동을 배우는 혹은 운동을 해온 선수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런저런 정황상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쉽지 않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길로만 가야되는 경우가 있다. 어렵사리 간 후에도 다른 길을 찾지 못해 한동안 붕 뜨기도 한다.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를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강남 삼성 농구클럽 이나남(37, 197cm) 원장의 성공사례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후배 농구인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구선수가 아닌 공부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공이라는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다수가 걷는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다져나가고 있는 농구인 이나남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진행형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자.
“농구 선수로서의 삶,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Q.안녕하세요. 한창 바쁘실 시기에 이렇게 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요새 이런저런 일이 많기는 하지만인터뷰할 시간조차 못낼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살짝 부담되기는 했어요. 보통은 굵직한 커리어를 남기거나 막 이슈가 되는 분들이 인터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냥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판을 깔아주고 가르치는 사람일 뿐인데…, 농구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이고, 더불어 또 다른 길을 찾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터뷰가 될 수도 있다고해서 하기는 하는데, 여전히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생소하기도 하고요.(웃음)
네? 삼성요? 삼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깊지는 않아요. 강남 삼성 농구클럽은 브랜드라고 보시면 되고요. 우리 회사는 한국체육교육진흥원이라는 법인체에 스마트스포츠라는 농구학원 브랜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수는 1500명 정도 되고요. 많이 아시겠지만 프로 유스 클럽이 직영으로 운영되는 곳은 없잖아요. 우리도 2018년도에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서 강남 삼성 타이틀을 단것이거든요.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가 되면 구단명이 포함된 곳과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KBL 관련 대회를 나가기 위한 이유가 크죠. 우리같은 경우 브랜드만 빌린 상황인데 문제는 삼성 간판이 너무 많다는 것이에요. 얼핏 잡아도 30개 정도는 될걸요. 우리랑 전혀 관계없는 곳들이거든요. 대부분이 독자적으로 돌아가는 곳이 많아요. 하지만 기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듯이 삼성에서 운영하는 곳 중 하나로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일일이 설명드릴 수도 없고 따로 입장문을 내는 것도 말이 안되잖아요. 그래서 기존 스마트 스포츠를 더 강화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Q.혹시 브랜드가 겹쳐서 서로 다른 농구클럽을 같은 곳으로 착각하는 등 난감한 일도 벌어지고 그랬나요?
휴우…, 그러게요. 생기더라고요. 솔직히 아무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구태여 따로 우리는 관계가 없습니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고 우리는 우리대로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간혹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삼성 타이틀을 달고 있는 다른 곳에 가신 분들이 이런저런 부분에서 불만을 가지고 컴플레인을 하는거에요. 같은 삼성이니까 서로 연결됐다고 여기신 것이죠. ‘원장님 믿고 소개시켜 드렸는데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항의를 받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지라 도움을 드릴 수도 없고 여러모로 난감합니다. 이대로는 변별력이 떨어져서 안되겠더라고요. 강남 삼성은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대표선수들 위주로, 일반 취미반 친구들에게는 스마트 스포츠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농구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Q.현재도 엘리트 쪽은 안하고 유소년만 하시는거죠?
그럼요. 저는 유소년이 튼튼해야 다른 쪽도 순탄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즐기면서 하는 아이들이지만 실력만큼은 상당한 친구들도 많아요.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실력이 쭉쭉 더 잘 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항상 느끼는게 직업이 되면 괴로워지잖아요. 취미가 되면 즐거운거니까요.(웃음) 일단 아이들이 농구를 즐기면서 행복감을 느끼는게 주 목적입니다. 현재 6학년 기준으로 우리 아이들이 전국 1위에요. 휘문, 용산중 등 엘리트 농구를 하는 학교로 진학하는 케이스도 있고요. 이미 선수로 갔어도 저희 쪽에서 스킬트레이닝을 병행하고 싶다고하면 그렇게 해주기도 합니다. 일단 모든 것을 오픈한 상태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최대한 맞춰주고 싶어요. 진학 관련해서 엘리트 쪽을 원한다면 연결은 해줍니다. 다만 제가 먼저 권고하지는 않아요. 선수 쪽으로 가도 되겠다는 식의 말은 선생님들에게 절대 못하게 합니다. 아이들의 선택에 어떤 식으로든 먼저 영향은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Q.국내같은 경우 처음부터 엘리트로 시작해서 농구공을 잡는 케이스가 많잖아요. 반면 해외는 처음에는 즐기듯이 하다가 이게 나의 길이다 판단이 섰을 때 본격적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후자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재능이라는 것은 각자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쪽에 서투르다고 저쪽까지 못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서로가 가진 능력치가 다를 뿐이에요. 농구라는 틀 안에서 우등생, 열등생을 가리기보다는 처음에는 그냥 즐겼으면 합니다. 농구 외에 다른 쪽에서 뜻밖의 길도 찾을 수 있기에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겪어보니까 패스도 재능이고, 슛도 재능이고, 운동능력이 특별하게 빼어난 친구도 있더라고요. 열심히하면 분명 더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선수로서 경쟁을 하게 된다면 재능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겠죠. 제가 구태여 권유하지 않아도 될 친구들은 결국 선수로 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수의 길은 제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니 저는 그저 즐겁게 농구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주는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Q.좋아서, 혹은 키가 커서. 농구를 시작하는 동기도 각양각색이더라고요. 원장님은 어떤 케이스에 속하셨나요?
저는 농구가 좋아서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농구공을 처음 접하고, 6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에 입문했으니 조금 늦게 한편이긴 해요. 키는 본래 또래 중에서 큰 편이었어요. 동네에서 우승도 하고 그러면서 농구에 대한 애정? 관심? 그런게 더 커지더라고요. 당시에는 농구 인기가 상당히 높았거든요. 자연스럽게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Q.어떤 플레이 스타일의 선수였는지 궁금합니다.
달리는 농구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호리호리한 대신 발은 빠른 편이었으니까요. 아무래도 템포를 빨리 가져가면 득점기회도 더 쉽게 많이 나잖아요. 동포지션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속공참여나 그런 부분도 많았고요. 당시부터 그런 부분의 효율성에 대해 몸으로 느꼈던 탓인지 지금도 아이들에게 기브 앤 고를 많이 주문하는 편이기는해요. 그렇다고 안에서 몸싸움하고 그런 것을 피하지는 않았어요. 빼지 않고 나름 열심히 했죠. 그래도 용산 출신이었으니까요. 미드레인지 등도 즐겨 쐈고요. 사실 제 체형을 보면 골밑에서 비비고 그런 플레이가 강하지 않게 보이잖아요. 실제로도 그 부분에 강점은 없었고 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해야만 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깨달은 부분도 많아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안해요. 종종 동호인 농구 같은 곳을 나가서 경기도 뛰고 그러는데 몸싸움 별로 안해요.(웃음)
Q.용산에서 힘들게 훈련도 했고 체력도 약하다고 했는데 농구를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을까요?
딱히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훈련하다가 힘들면 ‘아! 죽겠다. 진짜 농구를 내가 왜 하는거지’라고 잠깐씩 그런 생각은 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진지하게 후회하고 그래 본적은 기억에 남지 않아요. 제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니까요. 저는 결정을 내린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아요. 단, 아니다 싶을 때는 수정도 빠른 편이에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앞으로가 불투명하면 미련을 가지고 질질 끄느니 더 나은 길을 고민해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스스로 몸이 약하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농구를 그만둔 이유중에 부상 영향도 있었을까요?
아니요. 크고 작은 부상은 늘 가지고 있었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거에요. 온전한 몸 상태로 뛰는 선수들 많지 않아요. 멀쩡하다가도 어디 한군데 삐끗하는 경우가 다반사니까요. 부상을 핑계로 삼는 것은 아닌거 같고요. 프로에 가서 경쟁력이 높지 않을 것이다고 판단한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백업 빅맨으로 뛰면서 3~4000, 4~5000만원. 잘 풀려야 7~8000만원 정도 받을 것 같은데 그렇게 20대 다 보내고 30대 초반 정도 은퇴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잘할 자신이 없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자신이 없는게 아니라 저 자신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본거죠. 스스로에게 희망고문 같은 것을 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
Q.조금 눈에 띄는 이름을 가지고 계세요. 혹시 이름을 지을 때 특별한 의미같은게 담겨져 있었을까요? 딸이 많은 집안이라 아들을 꼭 보고싶어서 태어나기 전부터 지어졌다던가.
하하핫…, 그렇게까지 특별한 의미는 없고요. 한글 이름이고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 때 나라의 특별한 공로를 세운 사람한테 잘했다고 칭찬을 해줄 때 ‘나남하다’라고 표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지었다고는 하는데 제가 그다지 의미 부여같은 것을 안하는 성격이라서요. 어쨌든 이름에 관해서 제가 알고있는 것은 그 정도입니다.
Q.신장같은 부분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았을까요?
아니에요. 부모님께서는 그리 키가 크지 않으세요. 아버님이 172cm 어머님이 163cm정도 되니까요. 딱 대한민국 평균 키 정도 아닐까요. 여동생이 그나마 170cm로 큰 축에 속하지만 아주 큰 편은 아니고요. 집안에 신장이 좋은 분이 있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제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딘가에 그런 유전자가 있었겠구나하고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에요.(웃음) 그런데, 농구하는 친구들보면 안 큰다, 안 큰다하면서도 180cm는 거의 넘기더라고요. 저도 농구를 안했으면 이 정도로 크지는 않았을 듯 싶어요.
Q.농구를 하기에는 좋은 신장이지만 일반인으로 돌아가서는 큰키 때문에 불편한 부분은 없었나요?
20대 중반까지는 불편할 때도 있었어요. 그러나 요즘은 워낙 이런저런 부분이 잘되어있으니까 딱히 체감될 정도로 그런 것은 거의 없어요. 대중교통이나 옷 문제가 있지만 자가용 타고 다니면되고 옷도 맞춰입거나 큰 사이즈로 잘 구매하면 괜찮더라고요. 아! 놀이기구도 못타는 구나. 다는 아니고요. 190cm가 넘으면 못 타는 기구가 더러 있어요. 하지만 일상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요. 요즘은 워낙 큰 사람들이 많아서 다양하게 잘되어있어요. 2m넘는 분들도 잘만 생활하시는데요.
Q.제가 원장님만큼 키가 크면 무엇이 불편할까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일단 어디가서 나쁜 짓은 하기 힘들겠어요. 하다못해 술에 취해서 고성방가만 해도 더 눈에 띄잖아요.
하하핫…, 제가 집과 직장만 오가고 다른 취미나 관심거리는 거의 없어요. 좀 건조한 편이죠. 말씀하신대로 키가 크면 그런 불편함 아니 무얼해도 눈에 띄기는 할 것 같네요.
Q.농구를 그만둔 후부터 유소년 농구를 계획하신건가요?
아뇨. 경영대를 복수전공하면서 처음에는 회계사를 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만 잠깐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니까 수업 듣는 것도 별 어려움 없었고 성적도 잘 나왔거든요. 더불어 유소년 쪽도 관심이 있어서 아르바이트로 종종 나가고는 했어요. 공교롭게도 강남 쪽이었네요. 그때 느낀 점이 ‘이렇게 하는데도 운영이 돼?’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어요. 제 눈에 비친 모습은 체계적이지도 않고 완전 주먹구구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원수도 많고 잘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제가 가진 카드가 참 많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본래는 회계사로 가서 ‘운동을 그만둬도 충분히 다른 분야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유소년 농구 쪽을 접하다 보니 제가 하기에는 회계사 쪽보다 더 경쟁력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개인적인 영달 차원은 물론 후배들을 끌어주기에도 훨씬 좋겠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중도에 농구를 그만둔 것인지라 금전적으로 준비된 것도 없었을 텐데 자본금 등은 어떻게 충당했나요?
나이도 상황도 사업자금을 만들어놓고 시작하기에는 부족한게 많았죠. 그래서 처음에는 야외수업부터 시작했어요. 선배 권유로 상암동에 야외스케이트장을 만드는 분과 인연이 닿았어요. 팔자에도 없는 스케이트 레슨을 하게 됐고 한시즌 동안 1000만원 조금 더 벌었어요. 그걸로 스타렉스 차량 할부계약하고 야외에서 농구 교실하면서 한걸음씩 가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26살이었는데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일부에서는 오해도 많이 해요. 농구 교실을 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한지라 제가 금수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전혀 아닙니다. 그냥 젊은 패기 하나 믿고 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간 케이스입니다.
Q.아 그렇군요. 우여곡절이 많았겠어요?
아무래도요. 자수성가로 사업하신 분들은 다들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엄청 많을거에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어느 날인가. 야외수업을 이어나가던 중 모 농구교실을 알게 되어서 서로 협업하에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어요. 학교 체육관을 빌린 형태이기는 했지만 실내에서 농구를 지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같이 야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지도자 입장에서는 그것만 해도 엄청 큰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들어간지 한두달 만에 내부사정으로 인해 공중 분해되고 말더라고요. 그래도 체육관 임대 기간은 8개월 정도 남았던지라 제가 데리고 있던 40여명 정도의 학생들과 그곳에서 수업을 했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저희가 쓸 수 있는 체육관도 가지게 됐고 학생수도 늘어갔습니다. 도곡동에 만들어지게 될 예정인 체육관이 7번째입니다. 많은 분들이 믿어주고 도와주셔서 가능했다고 생각하고 늘 감사한 마음 잊지않으려 합니다. 야외수업 아니 학교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 해도 우리 클럽이 이렇게 번성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운도 많이 따랐던 것 같아요. 계속 야외수업만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시간도 더 걸렸을 것이고 이렇게 커졌을까 싶어요. 임대지만 학교체육관을 쓸 수 있어서 탄력을 받게 됐죠. 강남 삼성하면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그전에 제가 스마트 스포츠로 12년을 활동하면서 키워온 업체입니다.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Q.외모가 훤칠하신 편인데 모델 제의는 받아보신적 없으실까요?
하하핫…,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잠깐씩은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딱히 없었습니다. 제가 몸이 약하다는 말을 몇 번 드렸는데 그게 뼈대가 약해서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뜻이었어요. 조금만 과하게 훈련을 해도 몸이 버티질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운동선수로서는 약점이죠. 하지만 반대로 모델로서는 나쁘지 않겠지만 그쪽 길로 가기에는 키가 너무 크죠. 이러나저러나 농구 쪽으로 갈 운명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Q.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실까요?
지난 10월3일 도곡점을 오픈했고요. 저희가 농구회원으로만 1400명인데 도곡점 오픈으로2000명 이상도 수용이 가능할 것 같아요. 더불어 내년 3월에는 송파점 오픈 예정이에요. 새로 만들어가는 곳들은 건물주와도 협의해서 체육관도 모두 정규 사이즈로 짓고 있어요.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좋지만 더불어 어깨도 조금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믿고 맡겨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고 싶고, 함께하는 21명의 강사들에게도 더 좋은 대우를 해주고 싶어요. 21명중 정규직이 13명이에요. 저랑 12년째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요. 오랜시간 함께 함께 고생하고 비전을 나눠온 만큼 고마운 마음도 큽니다. 더불어 농구판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좌지우지하겠다는 뜻은 아니고요. 농구계에서 은퇴하고 길을 모색하는 후배들에게 저희가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는 등 긍정적인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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