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IB ‘불법 공매도’ 철퇴… 개인-기관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 주목[10문10답]
“기관·외국인 유리… 개미만 피해”
폐지 vs 유지 끝없는 찬반 논란
금감원, 560억원대 공매도 적발
‘불법’ 조사 대상 10곳으로 늘려
금지조치에 증시 하루 새 출렁
업계 “시장신뢰 크게훼손”지적
상환 기간·담보 조건 동일하게
금융위, 연내 제도 개선안 마련
금융 당국이 지난 6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국내 증시 모든 종목의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이후 네 번째다. 2021년 5월부터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를 구성하는 대표 종목에 한해 공매도를 다시 허용했지만, 2년 6개월 만에 다시 전면 금지 조치를 발동했다. 금융 당국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관행화된 대규모 무차입(불법) 공매도를 처음 적발한 것을 계기로 공정한 시장 환경 조성이 완료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전면 금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개인투자자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준 정치적 결정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이 같은 공매도 전면 금지 결정이 내려진 것을 두고 기습적인 조치라는 반응까지 나오는 등 해외 투자자들의 반발과 이탈 조짐도 커지고 있다. 최근 증시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는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의 배경과 파장, 논란 등에 대해 알아봤다.
1. 공매도란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란 향후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실제로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되사들여(쇼트 커버링) 빌린 주식을 갚음으로써 차익을 얻는 매매기법을 말한다. 가령 한 종목의 주가가 1000원이고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경우 해당 종목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일단 1000원에 공매도 주문을 내고 실제 주가가 500원으로 하락하면 되사서 500원의 시세 차익을 챙기는 식이다. 공매도는 차입(借入)이 확정된 타인의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을 빌려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와 현재 유가증권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파는 무차입 공매도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 기관투자자의 차입 공매도는 1996년 9월, 외국인 투자자의 차입 공매도는 1998년 7월부터 각각 허용됐다. 무차입 공매도는 2000년 4월에 공매도한 주식이 결제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지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끝없는 찬반 논란
공매도 폐지론자들은 우리나라 공매도 거래대금의 대부분이 외국인 자금이고, 외국인이 공매도로 돈 벌기가 쉽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매도 세력들이 한국 증시를 과매도 상황으로 몰고 가고 결국은 국민의 자산 손실과 국부 유출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사실상 외국인, 기관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는 공매도 때문에 개미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11월 2일까지 외국인의 공매도 누적 거래액은 107조63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외국인의 전체 공매도 누적 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9%에 달했다. 반면 공매도 찬성론자들은 “불법 공매도는 엄벌해야 하지만 공매도 자체는 주가 거품을 걷어내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강변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을 위해 글로벌 표준에 맞춰 공매도 전면 재개를 추진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와 역행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 역대 네 번째 전면 중단 배경
종전만 해도 금융 당국은 ‘공매도 완전 재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 지난 5월 주가 조작 세력이 무더기 하한가 종목 속출 사태를 촉발했을 때만 해도 금융 당국은 관련 종목 8개 중 6개 종목이 공매도 금지 대상이라는 점을 들어 거품을 걷어 내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방증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소문만 무성했던 글로벌 IB의 관행적인 불법 공매도를 처음 적발해낸 것을 계기로 금융 당국의 입장도 급변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임시 회의를 열고 “외국인, 기관투자자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아 전향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며 전면 금지 조치를 결정했다. 하지만 여당이 총선을 다섯 달 앞두고 1400만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공매도 전면 금지를 내세운 것에 금융 당국이 굴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대급 증시 한파 속에서 이뤄졌던 과거의 전면 금지 조치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4. ‘1일 천하’ 된 증시 효과 왜?
일요일 오후 5시 예고 없이 발표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 6일 오전 증시는 무섭게 질주했다. 주가가 오르자 공매도를 청산하기 위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쇼트 커버링 매물이 나온 영향이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장보다 134.03포인트(5.66%) 오른 2502.37에, 코스닥 지수는 57.40포인트(7.34%) 상승한 839.45에 장을 마쳤다. 국내 주식시장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오름세다.
하지만 단기 급등에 대한 경계감과 차익 실현으로 다음 날부터 지수는 하락을 거듭했고, 10일 코스피는 2409.66, 코스닥은 789.31로 장을 마치며 상승 폭을 대부분 반납했다. 이 과정에서 앞서 공매도의 타깃이 됐던 2차전지 종목의 변동성이 커졌다. 대장주인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은 공매도 금지 첫날 주가가 가격제한폭(30%)까지 올랐고, LG에너지솔루션(22.76%), 포스코퓨처엠(29.93%) 등도 일제히 올랐다. 하지만 13일 주가를 보면 대부분 공매도 금지 직전 거래일인 3일 수준으로 돌아갔다. 공매도 전면 금지 후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대규모로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6∼10일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개인은 2조2260억 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2조1510억 원, 7380억 원을 순매수했다.
5. 역대 공매도 중단 기간은
공매도를 주가 하락의 원흉으로 의심하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지만, 과거 3차례의 사례를 보면 공매도 금지가 주가 상승으로 직결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첫 번째 공매도 금지 조치가 단행된 2008년 10월에는 1개월 후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23%, 30% 하락했다. 코스피는 공매도 중단 3개월 뒤 -22%, 조치 해제 직전 -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공매도 금지로 외국인이 주식을 팔면서 증시 수익률이 하락하고 원화 가치도 급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럽 재정위기 당시인 2011년 8월에는 공매도 금지 한 달 뒤 코스피 지수에 변화가 없었고, 코스닥 지수는 4% 내렸다. 하지만 서서히 수익률을 회복해 공매도 해제 직전에는 6%, 12%의 수익률을 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인 뒤 공매도가 금지된 2020년 3월에는 이전과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코스피는 5%, 코스닥은 17% 상승했다. 3개월 후에는 23%, 44%로 수익률이 더 높아졌다. 2021년 4월 30일 공매도 재개 직전에는 78%, 8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당시 증시 상승은 동학개미운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6.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해소되나
금융위는 제도 개선을 위해 개인과 기관·외국인 투자자 간 대주 상환 기간이나 담보 비율 등에서 차이를 두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개인투자자는 공매도 때 빌린 주식 금액 대비 보유해야 할 담보 총액 비율이 120% 이상으로, 기관과 외국인(105%)보다 높다. 또 차입 공매도와 관련해 개인투자자의 상환 기간은 90일이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제한이 없다. 당정은 이르면 이달 말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은 뒤 내년 상반기 중 관련 입법과 시스템 구축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실시간 불법 공매도 적발이 가능한 공매도 전산 시스템 구축 여부다. 공매도 전산 시스템 구축은 개인투자자들이 주장해온 최우선 공매도 개선 조치다. 금융사들은 “주식을 빌리는 거래 목적이 여러 가지이고 이용하는 플랫폼이 다 달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 당국은 추진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7. 업계·전문가는 외국인 이탈 우려
이번 조치로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시장 이탈이 우려된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한국은 국제금융 중심지가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블룸버그통신·로이터 등 외신은 공매도 금지로 인해 한국 증권시장의 MSCI DM 지수 편입이 어려워졌다고 관측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국가별 투자 비중을 결정할 때 이 지수를 사용하는데, 현재 한국은 MSCI 신흥국지수에 속해 있다. 특히 코스피200·코스닥150 기업에 제한된 공매도는 MSCI DM 지수 편입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목표로 애초 공매도 전면 허용 시기를 저울질해 온 당국이 기존 입장을 전격적으로 뒤집으면서 시장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8. 불법 공매도 추가로 밝혀지나
금감원은 지난달 BNP파리바와 HSBC 등 글로벌 IB 2곳의 560억 원대 불법 공매도 의혹을 적발했다. 금감원은 글로벌 IB의 관행적 불법 공매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조사 대상을 글로벌 IB 10곳으로 넓혔는데, 이 과정에서 BNP파리바와 HSBC 외에 2∼3곳 IB의 불법 공매도 정황을 추가로 포착,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조사 중으로 정확한 검사 완료 시점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6일 20여 명으로 구성된 공매도 특별조사단(특조단)을 출범시켜 글로벌 IB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특조단은 금감원 내 조사 경력자, 영어 능통자, 정보기술(IT) 전문가 위주로 모두 20명으로 구성됐다. 당장은 감독 당국의 칼끝이 글로벌 IB들로 향하겠지만 결국 국내 증권사들도 조사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공매도 주문을 수탁하는 국내 증권사에 대해서도 관련 법규 준수 여부와 운영상 문제점 등은 없는지 불법 공매도 조사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9. 다시 불거진 시장조성자 논란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유동성 공급을 위해 예외적으로 공매도가 허용된 시장조성자(MM)와 유동성 공급자(LP)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개인투자자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공매도 금지 이틀째인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MM 공매도 허용은 반쪽짜리”라며 모든 공매도 금지를 촉구했다. 한국거래소와 MM·LP 계약을 맺은 일부 증권사는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매매 비활발 종목에 대해 지속적으로 유동성을 높이고 적정 가격 형성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매수·매도 양방향의 호가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 분산(헤지) 차원에서 공매도를 허용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들이 제도의 취지와 다르게 거래가 활발한 종목에 대해서도 공매도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이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된 7월 업틱룰(공매도 호가를 직전 체결가격 이상으로 제한하는 제도)을 적용받지 않는 거래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MM 등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해 달라고 촉구 중이다.
10. 해외 공매도 제도는
미국은 공매도를 비교적 자율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의 시장 참여를 활발히 유도하기 위함이다. 미국에서 공매도를 위한 주식 차입 경로는 크게 ‘마진거래’와 ‘증권대차시장’으로 나뉜다. 마진거래는 우리나라의 대주거래, 증권대차시장은 대차거래에 해당한다. 마진거래는 우리나라의 대주시장과 달리 개인과 기관 모두 참여할 수 있다. 마진거래 시에는 투자 주체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150% 보증금률이 적용된다. 일본의 경우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공매도 거래 비중이 전체의 23.5%를 차지할 정도로 개인의 공매도가 활발하다. 공매도 시장에는 일정한 거래상한선, 시가총액 대비 공매도 비중 등 규정이 있어서 공매도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거나 시행이 의심되면 해당 기업 주식에 대한 공매도가 금지될 수도 있다.
이관범·박정경·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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