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는 흔하다’는 편견에 반기 든 당찬 토마토

엄하람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랩 연구원 2023. 11. 1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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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가 마트 매대에 오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다수 농작물은 공급자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대부분 병충해에 강하며 생산량이 많은 품종이 선택되고, 유통에 최적화된 시점에서 수확된다. 이는 생산량과 선도를 매출로 직결하기 위한 당연한 결과이자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소비자가 많은 양을 구매하는, 즉 수요량이 큰 품목이라고 해도 이 룰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해당 국가 혹은 지역에 적합한 품종과 유통사가 선호하는 시점에 수확된 농작물이 매대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룰에도 맹점은 존재한다.

첫 번째로 품종 다양성, 더 큰 개념으로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치명적이다. 생물다양성이란 특정 생태계나 지역에 존재하는 생물이 얼마나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일컫는 말이다. 효율적인 관점에서 선택된 단일품종, 혹은 2~3개의 품종만 생산된다면 다른 품종들은 자연적으로 도태될 확률이 높다. 이는 생물다양성을 훼손하고 지속가능성 여부가 희미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극단적으로는 인류의 후생,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찰토마토(단단한 식감의 동양계 분홍 토마토 품종) 단일품종만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찰토마토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면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토마토는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생물다양성 관점에서 단일품종 소비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소비자가 해당 카테고리에 느끼는 포만(satiation)을 증가시키는 것도 문제다. satiation을 '포만’으로 번역했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인 배가 부른 '포만감’과는 다르다. '충분히 만족되어 물리다’라는 뜻이 보다 정확하다. 우리나라 토마토 시장에 찰토마토만 존재한다면 소비자들은 토마토 카테고리 자체에 추가적인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또 토마토 구매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저렴한 가격’이 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소비자 패널 데이터를 활용하여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과거 토마토에 '포만’을 느낀 소비자가 최근 토마토를 더 적게 구매했다.

소비자의 포만을 줄이고 토마토 구매를 증가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토마토를 구매하는 것’이다. 같은 양이라도 찰토마토만 구매한 소비자보다 찰토마토, 흑토마토, 완숙 토마토, 대저 토마토와 같이 다양한 토마토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포만이 훨씬 낮았다. 즉, 소비자의 포만 관점에서 단일품종 소비는 카테고리에 대한 포만을 증대해 카테고리 자체를 지루하게 느끼게 했다. 결과적으로 추가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포만을 줄여주는 토마토 농장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그래도팜의 에어룸 토마토.
효율적인 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제고하고 소비자의 포만을 낮추는 2곳의 토마토 농장을 소개한다. 토마토에 이미 포만을 느끼고 있는 소비자는 물론, 토마토는 천편일률적인 맛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입맛을 돋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골든 주빌리, 그린 지브라, 퍼플 범블 비(왼쪽부터).
1 프리미엄 가격도 마다하지 않는 에어룸 토마토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그래도팜은 에어룸(Heirloom) 토마토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에어룸은 유전자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토종 토마토를 의미한다. 그래도팜에서는 모양도, 식감도, 맛과 향도 모두 다른 20가지 토마토 품종을 재배한다. 1983년부터 2대째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원승현 대표는 소비자에게 "토마토의 맛 방향성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단한 토마토가 싱싱하고, 완숙 토마토는 당연히 말랑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은 품종에 따라 완전히 틀린 말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토마토 품종에 따라 맛과 식감, 풍미는 천차만별이다.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의 식감은 카스텔라와 같이 부드럽고 포슬포슬하며, 새콤한 풍미가 매력적이다. 그린 지브라(Green Zebra)는 아삭아삭하며 풀 향이 도드라지고 강렬한 레몬 계열의 신맛이 느껴진다. 퍼플 범블 비(Purple Bumble Bee)는 과육이 단단하며 씹을수록 토마토의 깊은 향이 올라온다. 첫입은 새콤하지만 짠맛으로 마무리된다.

토마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래도팜 농장에서는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토양전시관부터 발효퇴비장, 토마토 밭을 돌아보며 체험한다. 품질관리가 보다 용이하다는 강점이 있는 양액재배가 아닌, 유기농 퇴비를 활용한 토경재배도 이곳의 특징 중 하나다. 다양한 품종의 토마토로 구성된 에어룸 믹스 토마토 3kg은 일반 가격의 2배 이상임에도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 예약 구매를 한다. 10월부터 그래도팜의 토마토 가을 작기가 시작된다. 토마토의 맛 지도를 넓히고, 취향에 맞는 토마토를 찾을 수 있는 기회다.

마틸다 토마토.
2 생산자와 유통사의 협업 마틸다 토마토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안스퓨어팜은 95% 이상 완숙한 캄파리(Campari) 품종의 마틸다 토마토를 생산한다. 누군가는 완숙 토마토는 모두 같지 않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완숙 토마토라고 판매되는 것들은 실제 유통과정 중에 '후숙’이 되는 토마토다. 일반적인 유통과정을 따른다면 후숙을 고려해 60~70% 정도 설익은 토마토를 수확한다. 설익은 토마토는 마트 매대까지 가는 유통과정에서 그리고 매대 위에서 후숙이 된다.

방울토마토보다는 크고 일반 찰토마토보다 작은 동그랗고 빨간 캄파리 토마토를 생산하는 안스퓨어팜 안수민 대표는 큰 고민이 있었다. 기존의 유통망을 통해서는 최상의 토마토를 판매할 수 없다는 점이다. 토마토는 줄기에 매달린 채 완숙했을 때 그 자체의 풍부한 맛과 복잡 미묘한 아로마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렇게 완숙한 토마토는 일반적인 유통과정과 매대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설익은 토마토가 유통과정에서 후숙이 되면 색은 먹음직스럽게 붉은빛을 띠지만 맛과 향은 풍성해지지 않는다.

안수민 생산자는 컬리(kurly) 유통사와 협업하며 이 고민을 차츰 해결하고 있다. 오전 6시부터 안스퓨어팜에서 줄기에 매달려 완숙한 캄파리 토마토를 수확하고, 오전 10시까지 1kg 단위로 박스 포장 작업을 완료한다. 오전 11시 30분에 온도가 10℃ 이하로 유지되는 컬리의 냉장 탑차에 상차하고, 오후 2시에는 컬리 물류 창고에 도착하여 품질검사를 받는다. 오후 11시에 물류 창고에서 배송이 시작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소비자는 현관 앞에서 진짜 완숙 토마토를 받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는 안스퓨어팜 생산자와 컬리 유통사의 파트너십을 통해 줄기에서 완숙해 풍부한 아로마를 지닌 캄파리 토마토를 집에서 맛있게 즐길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수확 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신선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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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그래도팜 마켓컬리 홈페이지

엄하람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랩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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