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 지원 아끼는 나라에서 연구하고 싶지 않아"
고려대, 서울대, KAIST 등 전국 11개 대학교 대학생이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해 "연구자를 꿈꾸는 미래세대의 꿈을 짓밟지 말라"며 "안전하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소리를 높였다.
13일 국회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국회토론회'에서 전국 11개 학교로 이뤄진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은 정부의 R&D 예산 감축으로 인해 대학생이 연구자를 꿈꾸기 어려워졌다며 R&D 예산을 복원할 것을 촉구했다.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에는 고려대학교 총학생,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학부 총학생회, 광주과학기술원(GIST) 학부 총학생회,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부 총학생회, 한국에너지공과대(KENTECH) 학부 총학생회, 포스텍(POSTECH) 학부 총학생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학부 총학생회 등 11개 학교가 참여했다.
● "자연과학 연구에 지원 아끼는 나라에서 자연과학 연구하고 싶지 않다"…R&D예산 삭감 발표 후 해외유학 고려도
'정부 R&D 예산 삭감과 다가올 미래'를 주제로 열린 1부 토론에서 패널로 나선 나세민 서울대 총학생회 R&D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R&D 예산안은 많은 대학생의 관심사"라며 자체 학내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46.3%가 "향후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홍석현 연세대 총학생회 비대위원장은 지난 9월 2주에 걸쳐 400명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R&D 예산 감축을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97.7%였으며 그 가운데 80.8%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인 학생이었다"며 "이공계 학생으로서 향후 진로를 선택할 때 국내 대학원을 계획대로 진학해도 될 것인지 자체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2부 '과학기술 거버넌스에서의 대학생의 역할'에서 발제자로 나선 조현서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회장 역시 같은 점을 지적했다. 그는 "천문우주학과는 학생의 80~90%가 대학원을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초과학 학과 중 하나"라며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자연과학 연구에 지원을 아끼는 나라에서 자연과학 연구를 하고 싶지 않다"며 R&D 예산 삭감안 발표 이후 해외 유학을 고려하는 학생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 "우수 이공계 학생에게 '의대 진학' 부추기는 사회… 연구자의 길 걸으려는 학생의 꿈 짓밟지 말라 "
정부가 의대 등 전문직 양성 등의 정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기초과학에는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정현 KAIST 부총학생회장은 "우수한 학생이 의대로 몰리는 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라며 "이공계 학생에게 의대를 선택해야 한다는 부추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R&D 예산 삭감은 한국 입시에서 우수 인력이 모두 의대로 빠지는 '의대 블랙홀'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현 연세대 총학 비대위원장도 "정부가 전문직을 양성하는 데 방점을 찍느라 연구직을 지망하는 학생에게 소홀한 건 아닌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융합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고려대에서는 "KIST 소속 선임·책임 연구원 및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연구비가 감소될 경우 학생연구원의 인건비를 맞춰줄 수 있을지 고민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수련이 더 필요한 석박사생들에게 조기계약종료를 통보하거나 신입생 자체를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김효찬 고려대 총학생회 안전기획부국장은 "선임·책임 연구원이 연구 방향을 잡지만 실제 그 연구가 가능한 건 수많은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 덕분"이라며 "이공계 전문가가 되는 꿈을 갖고 현재 최저시급도 못 받는 학생의 꿈을 짓밟지 말라"고 밝혔다.
서휘 DGIST 총학생회 회장 대행 역시 "석박사에 해당하는 대학원생들은 평균 임금 63~99만원을 받으며 연구하고 이는 대한민국 평균 직장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미 지적돼 왔던 학생 인건비 문제인데도 이에 더해 더 삭감하겠다는 게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저 새, 뇌과학, 광학을 좋아할 뿐인 기초과학 지망 학생의 마음이 많이 깎였다"며 "우리가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구 주제를 탐구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야할 학생들에게 이런 자리를 만들게 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다음주부터 국회에서 과학기술계 예산에 대한 증액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위원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토론회에 참석해 "R&D 예산을 모두 증액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합의가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시작한) 단기 행정 경험 위주의 정부청년인턴제 등에 도입할 예산을 줄여 필요한 데 쓰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가 정부의 657조 예산안을 두고 14일 본격적으로 내년도 예산안 증감액 심사에 나섰다. 14일부터 4일 간은 감액 심사가, 20일부터 24일까지는 증액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과학기술계 R&D 증액을 두고 여야가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여당은 13일 내년도 예산안에서 감축된 R&D 예산안을 일부 복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증액 규모는 불분명한 상태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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