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분의 일초' 문진승의 기세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내면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내공을 쌓고 있는 문진승. "후회한 적 없다"며 오로지 연기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달린다. 그 기세는 검도와 닮은 듯하다.
문진승이 출연한 '만분의 일초'(감독 김성환·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는 0%의 확률을 깨트릴 0.0001% 그 찰나를 향해 검을 겨누는 치열한 기록을 담은 영화다. 작품은 일찌감치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 수상 등 다수 영화제서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문진승은 주변 호평에 대해 "전혀 예상 못했다. 상을 받았을 때도 놀랐다. 좋은 작품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영화는 검도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는 재우(주종혁)가 과거 자신의 형을 사고로 죽게 한 황태수(문진승)를 만나 상처를 극복하는 성장형 이야기로 흐른다. 문진승은 극 중 과거 상처를 뒤로하고 한국 검도계 1인자가 된 실력자 황태수 역을 맡아, 감정의 동요 없이 묵직한 아우라와 절재된 톤을 연기했다.
문진승은 "국가대표 1인자라는 타이틀이 당연히 매력적이었다. 또 굉장히 절재된 캐릭터라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아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영화는 대사 보다 눈빛, 표정, 호흡, 행동, 숨소리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연출됐다. 전체적으로 많지 않은 대사임에도 극 중 황태수는 묵직한 존재로 비쳐졌다. 문진승은 "황태수는 악의적이지도 않고 친절하지 않은 중립적인 면으로 보였으면 했다. 또한 재우의 거울로 보였으면 했다. 과거 비극이 있었음에도 벗어나서 살아가는 인물이 검도를 어떻게 대할까란 것에 초첨을 맞췄다. 그 과정에서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감정을 비워내고 수련하는 느낌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재우의 분노에도 동요하지 않는 황태수의 중립적인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려 했다는 문진승이다. 그는 "태수가 재우의 트리거로 터지게 하려면 분노를 받아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벽처럼 튕겨내는 얘기를 하면서 분노가 쌓여가는 것에 집중했다"며 "또 태수는 초반 재우의 분노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 같다. 1인자라 재우가 아니여도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을 테니"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황태수는 자기 목표만 보고 있는 만화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검도만 보는 만화적인 부분이 있지만, 전화하는 장면, 재우에게 두건을 주는 장면에서 인간적으로 보이고자 했다"며 "또 태수가 항상 강하게 있으면 입체적이지 않고, 단편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리 위 장면이나, 나중에 재우와 화해할 때 나름대로의 따스한 눈빛을 보냈는데 그게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도도 문진승에게 도전이었다. 발, 손에 물집도 생기는 부상이 있었지만, 역할을 위해 최대한 검도인의 생활에 녹아들었다. 그는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 그전에도 '달이 뜨는 강'에서 검술을 했는데 검도는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광화문 검도관에서 3개월 동안 기초부터 연습했다. 이후 용인대 선수들이 일대일로 붙어 연습을 했다. 검도라는 게 단순히 검술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마음자세도 있어야 했다. 느껴지는 기세와 아우라가 있더라"고 전했다.
문진승은 호면을 쓰고 푸는 장면, 칼를 휘두르는 장면 등 검도의 가장 세세한 부분부터 신경 썼다고. "저의 등장신이 가장 어렵지 않았나 싶다. 호면을 쓰고 풀 때 동작이 절제되면서도 과하지 않고 어색하면 안 됐다. 또 묵상하고 호흡하는 것까지, 혼자서 한 손으로 검도를 휘두르는 장면도 도인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연출한 감독에게 존경심을 드러낸 문진승은 "현장에서도 너무 꼼꼼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셨다. 콘티를 너무 잘 짜주셔서 편하게 촬영했다.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열려있는 분이었다"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만분의 일초' 1인자 황태수에 도전하고, 녹아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문진승. 과거 IT기업에 다니다 떠난 독일 유학길에서 연기를 시작하고자 마음먹었다. 32살이란 적지 않는 나이에 시작한 도전은 계속 나아가고 있다.
문진승은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IT 회사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3개월 정도 비는 시간이 있어 어학원에 갔는데 외국인 배우를 찾는다는 공고가 있어 생활에 적응할 겸 지원했다. 이전 대학교에서 연극 동아리를 하며 단편 영화 3편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주연으로 발탁된 거다. 그 영화가 '선샤인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날 문득 잠에서 깼는데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IT를 좋아하지만 일하는 결과는 맞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이 됐다. 순간적인 결정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확신했다.
연기의 매력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점"이라는 그다. "얼마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나라는 존재를 얼마나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철학과 심리학, MBTI까지 관심이 많다. 성장과정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연기가 재밌다"고 눈을 빛냈다.
단역, '모범가족' '몸값' 커튼콜' '악인전기' 주조연을 거쳐 첫 주연작까지 꿰찬 문진승은 "역할이 조금씩 커지더라. 지금의 회사도 만나게 됐다. 지금도 계속 오디션을 보고 도전하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문진승은 악역 연기에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다. 선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냐는 질문을 받자 "최근에 단편 영화도 많이 찍는다. 작품에서는 허당 캐릭터도 많이 했다. 또 코믹을 굉장히 좋아하고, 자신 있다. 로맨틱 코미디도 욕심난다.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내부자들'에도 코미디가 들어가지 않냐. 그런 것들을 닮고 싶다. 앞으로 보여드리겠다"고 답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만분의 일초'는 제 인생에서 많은 처음을 준 작품입니다. 첫 언론시사회, 첫 영화관 시사회, 첫 주연, 첫 해외영화제 입상 등 처음이 많아요. 앞으로도 주어진 작품을 계속해나가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대중들에게 좋은 배우, 진정성 있는 배우, 스펙트럼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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