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기술의 진보, 그 득실

2023. 11. 14.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용기 시인

꿈에 자동차가 나오면 대체로 악몽으로 흘러간다. 앞에 장애물이나 사람이 있어서 아무리 브레이크 페달을 세게 밟아도 차는 멈추지 않는다. 캄캄한 밤중인데 전조등이 없어 어둠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진땀을 흘린다. 잠에서 깨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깊은 안도감! 어쨌거나 자동차는 스마트폰 등과 함께 우리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문명의 이기다.

1870년대에 처음으로 현대적인 내연기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880년대에는 처음으로 자동차에 장착하였고, 1908년에 포드사에서 가족용 자동차인 '모델T'를 선보이며 인류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오데드 갤로어'가 쓴 책 '인류의 여정'에는 미국 기준으로 1940년에 전체 가구의 거의 60%가 자동차를 가졌다고 나온다.

미국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궁벽한 시골은 여전히 자동차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우리 고향 사람들은 여전히 걸어 다녔다.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면 소재지 오일장에 가고, 전보를 보내고 전화를 하기 위해 우체국을 다녔다. 필자도 면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를 산길로 자주 걸어 다녔다. 자동차와는 거리가 먼 시절이었지만, 중학교 기술 시간에는 내연기관의 작동 원리를 배웠다. 실린더 내에서 연료와 혼합된 공기가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행정으로 실행되면, 피스톤의 왕복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바꾸어주는 크랭크축이 2회전 하면서 운동 에너지가 바퀴로 전달돼 자동차를 움직인다는 원리였다. 머리가 여물지 않은 중학생에게는 여전히 이론에 머물러 있었고, 수십 년 후에 자가용 차를 직접 운전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옆집 형의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서울에 가 있던 큰아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우체국에서 서울로 전화를 하거나 전보를 쳐야 했는데, 다급한 심정으로 면 소재지로 갈 때 그 절실함이야 오죽했겠는가. 그 시오리 산길이 얼마나 멀었겠는가.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을 지불해야 했던 전보는 '부친 위독, 급래' 이런 식으로 문구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전화를 하려고 해도 우체국에서 신청을 해 놓고 연결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통화 부스에 들어가서 사연을 나눠야 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언젠가 그 산길을 걸어보고 싶어 가보았지만, 온갖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찾을 수가 없었다. 산길에 접어들면 나오는 상엿집과 황토 절개지에 있던 물총새의 둥지를 지나 한동안 올라가서 쐬골 뒷산을 지나고 중간에 느티나무를 지나고 당산나무를 지나면 나오던 마을, 그곳에서 에움길을 한참 돌아 전망이 트이는 곳에 서면 저 멀리 들판 너머로 기차역이 있는 면 소재지가 보였다. 그 당시는 면 소재지까지만 나가도 세상이 엄청 넓게 다가왔다. 이제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그 길은 완전히 사라지고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지금은 고향에 가서 면 소재지에 볼일이 있으면 당연히 차를 운전해서 간다. 걸어서는 한 시간 가량 걸렸지만, 차로는 칠팔 분이면 족하다. 길도 아스팔트로 포장돼 흠잡을 데가 없다. 또한 휴대폰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보급되고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통화를 할 수 있다. 외국에 가 있는 가족들과도 무료로 영상통화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니까 물리적 거리는 변함없지만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심리적 거리가 아주 짧아졌고, 마음의 영토도 그만큼 축소되고 절실함도 줄어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과거에 비하면 데면데면해졌다.

기술의 진보는 세상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바꿔 놓는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면서 육체노동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유사 이래로 가장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실직이나 양극화, 인간소외, 환경오염 등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장차 인공지능이 자동차나 스마트폰보다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터인데, 그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가 되도록 대비해야 한다. 우선 마음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도록 자연을 존중하고 감성을 키운다면 어떨까? 자동차나 스마트폰 때문에 굽이진 산길과 절실함을 잃고 맹목적인 직선을 얻는 것처럼 되어서야 유토피아가 오겠는가. 정용기 시인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