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 '순항'…한국노총 참여로 노사정 대화 물꼬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 틀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업종·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다만 장시간 근로에 따른 근로자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주당 근로시간 상한 설치 등의 보완 장치를 함께 마련한다.
세부 정책 방안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복귀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고공농성 시위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을 이유로 경사노위에서 탈퇴한지 5개월 만이다.
고용노동부는 13일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은 개편 방향을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 주52시간제에 대해 국민의 48.2%가 '장시간 근로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54.9%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이 곤란하다'고 응답했다. 긍정 평가와 함께 경직성에 대한 보완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개편이 필요한 업종으로 △제조업 △건설업, 직종의 경우 △설치·정비·생산직 △보건·의료직 △연구·공학 기술직 등이 꼽혔다.
정부는 이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 업종·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단위 선택권 부여 △주당 근로시간 상한 설정,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 △공짜야근 근절 등의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세부 정책 설계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마련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탈퇴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복귀에 대한 대통령실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며 이날 복귀를 선언하며 사회적 대화의 문이 열렸다.
주 52시간제 성과와 경직성에 대한 보완 요구가 확인됐다는 게 정부 평가다. 주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부는 '방안' 대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정부 정책의 수립이 아니라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한 대안 마련을 하겠다는 의지다. 한국노총이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 복귀하기로 선언하며 모양새도 갖춰졌다. 다만 노사정에서 다룰 '뜨거운 이슈'가 워낙 많은데다 4월 총선 일정 등 정치 변수도 많아 사회적 대타협 성공을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한발 물러선 근로시간 개편
정부는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를 발표하며 개편 방향을 짧게 내놨다. 우선 필요한 업종·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전제는 '노사가 원할 경우'다.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한 선택권이다.
이성희 고용부차관은 "이번에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조금 확대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다수가 동의 의견을 표시했다"며 "그 방향성은 유지하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필요한 업종·직종에 대해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장시간 근로를 방지할 수 안전장치 마련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1주 근로시간 상한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 △단위기간(월·분기·반기·연 단위) 확대 범위 조정 △공짜야근 근절 등이다. 근로시간 상한은 '주 69시간' 논란을 의식한 장치로 읽힌다. 대상 업종·을 일부로 국한한 것이나 단위 기간을 조정키로 한 것 등은 당초 정부안에서 물러날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방안' 대신 '방향'
정부가 설문조사 결과를 설명하며 강조한 게 노사정 대화다.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개편 방향'을 내놓은 것도 일방 통행의 정책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다. 이 차관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기존의 방향은 유지하되 노사의 수용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그런 제도 개선 방안을 도출하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도 "근로시간 제도가 국민 생활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는 지난 6월 이후 5개월만이다. 당시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전면 중단했다.
망루에서 농성 중이던 김준형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사무처장의 경찰 구속이 이유였다. 정부의 과잉 대응을 문제삼았지만 실제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일방통행식이었던 노동 정책에 대한 반발 성격이 강했다. 근로시간 개편, 상생임금 방안 마련, 노동조합 회계 공시 등 노동 현안을 정부가 몰아붙였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정책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 대화장을 떠났다. 정부는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근로시간 개편 관련 재시동을 걸면서 과할 정도로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며 모양새가 신경을 썼다. 한국노총을 의식한 발언이자 행보였다.
앞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30년간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온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하고, 노동정책의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존재를 인정하라. 이것 말고는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대통령실은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한국노총이 조속히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 근로시간 등 여러 현안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할 것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장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긍정적이다. 정부는 노동개혁 이슈 관련 내부 검토를 마무리한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현안을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근로시간 개편은 시작일 뿐 상생임금,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 현안의 실타래라 풀릴 것이란 얘기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제도 개선 방안을 도출하겠다고 말씀드린 바와 같이 노사도 이제는 정부와 함께 머리를 맞대주시고 정부도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정간 의견차가 뚜렷한 현안이 존재하는 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유력시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조합의 양대산맥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불참은 또다른 숙제다.민주노총은 1999년부터 사회적대화에 불참한 가운데 정부에 강경대응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고용부와 경사노위는 한국노총의 복귀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그간 사회적 대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온 노동계 대표 조직인 한국노총의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노사정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대화 복원을 위해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경사노위는 "한국노총이 근로시간 등 시급한 노동현안들을 주도적으로 적극 논의해 나가기를 바란다"며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함께 만나 허심탄회하고 진정성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세종=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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