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계속된다" 아나운서 꿈꾸던 박세경,서른다섯에' 한신'육상선수가 되다![진심인터뷰]

전영지 2023. 11.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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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시장애인체육회

지난 3일, 목포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전남전국장애인체전 여자육상 800m 결선, 박세경(35·서울시장애인체육회)은 2분34초08의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2위 오상미(경기·3분08초84)보다 30초 이상 앞섰다. 박세경의 금메달 직후 서울 잠실벌 러닝전문 스쿨 '오픈케어' 블로그는 난리가 났다. 비장애인 육상인, 동호인들로 구성된 '오픈케어'에서 박세경은 유일한 청각장애 선수. "서울시 대표로 출전한 박세경 선수가 7월말 발가락 골절 부상을 이겨내고 청각장애인(DB) 선수부 여자 800m 대회신기록, 2연패했습니다!"는 포스팅 아래 '축하합니다' '와! 빛의 속도' '멋있어요' 수십 개의 실시간 축하 댓글이 쏟아졌다.

사진제공=서울시장애인체육회

▶아나운서 꿈꾸던 그녀, 육상선수가 되다

지난 6월 27~28일 경북 구미에서 열린 제17회 전국장애인육상선수권 겸 제1차 국가대표선발전에 첫 출전한 박세경은 400m에서 1분04초45의 대회신기록을 세웠고, 800m에서 2분32초51, 1500m에서 5분10초85로 한국신기록을 연거푸 경신했다. 지난해 수영에서 육상으로 전향한 후 나선 첫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휩쓸었던 박세경이 올해 첫 대표선발전에서 '미친' 질주를 선보였다. 최고의 컨디션이었던 지난 7월 발가락 골절 부상으로 두달 넘게 레이스 훈련을 하지 못한 채 나선 체전서도 보란 듯이 800m 대회신 금메달을 포함해 1500m 금메달, 400m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철인' 함연식 오픈케어 총감독과 함께 육상 훈련중인 박세경. 사진제공=서울시장애인체육회

큼직하고 맑은 눈, 예쁘장한 이목구비에 길고 튼튼한 두 다리로 안정적인 질주를 이어가는 35세의 아름다운 레이서, 박세경의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숙명여대 국문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어느날 돌발성 난청이 찾아왔다. 강의실에서 교수님 목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청각 기능이 급격히 저하됐다. 이명과 난청 탓에 몸은 쉽게 지쳤고 마음도 우울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녀는 학교 앞 수영장을 향했다. 2012년 인공와우 수술 후 활력을 되찾았고, 2015년 첫 출전한 수영선수권 대회부터 메달도 목에 걸었다. 청각장애 수영선수로 지난해 카시아스두술 데플림픽에도 출전했던 그녀는 2년 전 운명처럼 '달리기'의 길을 마주했다. 수영에 필요한 체력훈련 중 달리기를 체계적으로 배워보기로 결심하고, 수소문해 찾아간 '오픈케어'에서 배문고-한체대 출신 육상 중장거리 에이스, 100㎞ 울트라마라톤 한국신기록 보유자, '철인' 함연식 러닝 코치를 만났다. 박세경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함 코치가 육상 전향을 권했고, 서른세 살의 나이에 '육상 꿈나무'가 됐다. 박세경은 "함 코치님이 내 고관절 움직임이 선수 못잖게 좋다면서 눈여겨보시더니 육상이 잘 맞을 것같다고 하셨다"고 했다. 수영에 또래 선수들이 사라지면서 흥미가 시들해지던 무렵, 박세경은 새 도전을 선언했다. "코치님께서 잘할 수 있다고 늘 신뢰를 주셨다.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딱 좋은 나이라고 하셨다"며 웃었다. "'단거리는 타고난 부분이 크지만, 중장거리, 마라톤은 후천적 노력이 더 중요하다'면서 용기를 북돋워주셨다"고 했다.

베테랑의 눈은 정확했다. 박세경은 지난해 체전에 이어 두 번째 출전한 공식대회에서 '한신'을 휩쓰는 괴력을 뽐냈다. 달릴 때마다 기록은 일취월장했다. 함 코치는 박세경에 대해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대단한 연습벌레다. 하루 훈련양이 7시간 정도 되는데 모든 훈련에 다 성실하게 임한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큰 선수"라고 했다.

서른세살에 육상 꿈나무가 된 박세경은 두번째 공식대회에서 한신 2개를 휩쓴데 이어 두번째 체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사진제공=서울시장애인체육회
사진제공=서울시장애인체육회

▶"스포츠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 데플림픽 메달의 꿈

박세경이 후천적 청각장애 이후 일상으로 빨리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학창시절 몸에 밴 운동습관 덕이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도 하고 수상스키도 하고 중고등학교 땐 계주 멤버로도 뛰고, 스포츠를 워낙 좋아했다"고 했다. "대학서도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는 틈틈이 친구들과 효창운동장을 달리고, 체육학과 수업을 듣기도 했다. 청각장애가 생기면서 피로가 쉽게 오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같아 자연스럽게 운동을 다시 해야겠다 생각했고 운동을 좋아하다보니 더 잘하고 싶었다"며 선수의 길에 들어선 과정을 설명했다.

"내 한계치에 도전하는 게 재미있다"는 그녀에게 스포츠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던 게 운동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운동을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좋아졌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됐고, 또다른 길, 새로운 기회가 됐다"고 털어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 장애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10명 중 8명은 후천적 질환이나 사고로 장애를 얻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시련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이때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는 힘이 세다.

박세경은 "운동하는 장애인들, 장애인 선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작이 쉽진 않지만 일단 용기를 내 발을 들여놓으면 수없이 많은 기회가 열리더라"고 했다. "오픈케어에는 중고등학생, 육상선수, 동호인 등 달리기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새벽, 오전, 오후, 저녁반 각자 트레드밀에서 페이스에 맞춰 맞춤형 훈련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 잠실보조경기장에서 공동훈련을 하는데 정말 재미있다. 달리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 누구나 오시면 된다"며 활짝 웃었다.

박세경은 두 번째 데플림픽이 될 2025년 도쿄 대회에서 육상 메달을 목표 삼고 있다. 현재 기록은 2022년 카시아스두술 대회 기준 결선 5~6위에 해당하는 기록. 지금의 기록 단축 페이스라면 충분히 메달권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박세경은 "아직 2년의 시간이 있다. 800m, 1500m와 10㎞ 마라톤 출전을 목표로 계속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목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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