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도 하는 소독, 방문간호사는 불법… 묵은 원칙에 “무력감” [심층기획-지역의료 돌파구를 찾자]

이정한 2023. 11. 1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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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규제에 손발 묶인 간호사
의료기관·의사 지시서 있어야만 처치
혈압·맥박 체크·건강 상담 밖에 못 해
“90대 남편 인공항문 70대 부인이 관리
사고 날까 겁나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재택의료 수요 느는데 인프라 ‘태부족’
가정간호시설 10곳 중 6곳 수도권 집중
재가수급자 67만 불구 인력은 2396명
“의료기관 중심 방문간호 확대·협력을”
“가랑가랑 소리가 나네요. (가래) 한 번 뽑아드릴게요. 힘들죠? 기침 한 번 해보세요.”

지난 8일 경기 성남시 한 가정집. 엄재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전문간호사가 거실 가정용 병원침대에 누워 있는 강정화(가명·79)씨 가래를 뽑아내는 석션을 반복했다. 엄 간호사는 혈압과 맥박을 확인하고 체온을 잰 다음 강씨 남편 김순호(가명·83)씨와 곁에 있던 간병인에게서 일주일간 환자 상태를 들었다. 엄 간호사가 “소변줄은 깨끗하네요. 새진 않았어요?”라고 묻자 간병인이 “거의 안 샜어요. 조금 정도밖에”라고 답한다. 그러자 엄 간호사는 “소변줄은 다음에 바꾸고 오늘은 위루관 소독하고 수액 놔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강씨는 2016년 파킨슨병을 진단 받았다. 지난해 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입으로 음식을 먹기 어려워 위루관(위장관에 음식을 직접 넣기 위해 연결한 관)으로 식사하고 소변줄을 꽂았다. 병원에서 몇 개월을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지난 7월부터 한 주에 한 번씩 가정간호를 받고 있다.

59년째 강씨와 함께 사는 김씨는 간호사를 바라보며 “기적 같은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는 “요양원 안 보내겠다고, 같이 있겠다고 약속했어”라고 나지막이 말하고는 “그런데 소변줄, 위루관 저게 문제였다”고 하소연했다. 소변줄을 교체하거나 위루관을 소독하려면 병원을 다시 가야 하는데 와상(누워 있는) 환자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래 진료에 맞춰 사설 구급차를 부르고, 보호자들도 시간을 비워야 할 만큼 만만찮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재택돌봄을 포기하고 요양기관이나 병원 입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엄재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전문간호사가 지난 8일 경기 성남시 한 집에서 파킨슨병 환자인 강정화(가명·79)씨를 살피고 있다. 남정탁 기자
숙련도 높은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간호, 건강상담을 해주는 덕에 부부가 바라는 재택돌봄이 가능해졌다. 장기 와상환자는 석션을 제때 안 하면 침, 가래가 기관지로 넘어가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 있다. 반복되면 기관절개를 해야 한다. 면역이 떨어진 환자가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 욕창이 생기기 쉽다. 보호자나 요양보호사가 있더라도 의료진 검진은 필수이다. 의료기관 소속 가정간호사는 비위관(콧줄)과 위루관, 장루(인공항문) 등을 관리하고 상처 부위 보호를 위해 거즈를 붙이는 등 드레싱을 한다. 수액 등 담당의사가 처방하는 주사제를 투여하는 것도 가정간호사 일이다.

퇴원한 환자를 지속 관리하는 가정간호는 지역사회 돌봄체계의 주요 축이다. 다만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 위주로 주거지 기반 서비스가 제공돼 대상자가 제한적이다. 지역별 격차도 크다. 지난 6월 기준 가정간호 실시기관 192곳 중 113곳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가정간호 외 방문간호로는 장기요양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장기요양기관 방문간호, 보건소나 행정복지센터(동주민센터) 방문건강관리가 있다.

경기 안산시 단원보건소 소속 고경남(56) 방문건강관리 간호사는 장기요양 수급자·중환자가 아닌 만성질환자를 주로 방문한다. 대부분이 취약계층이다. 안산시 방문건강관리 사업 대상자 약 6000명 중 2000명이 독거노인이고 집에서 요양하는 암 환자도 200명쯤 된다. 치료보단 건강관리 능력을 높이고 중증으로 가지 않게 도와주는 게 방문간호 역할이다.
지난 8일 방문간호에 나선 고 간호사는 힘이 넘쳤다. 고지혈증과 고혈압, 불면증, 관절염이 있는 독거 어르신 박혜숙(73)씨도 오랜만에 간호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 신이 난 모습이다. 박씨는 “혈압이 120에 70, 좋으시네요. 컨디션이 좋으신가 봐요”라는 고 간호사 말에 “요즘 기분이 좋다”고 활짝 웃었다. 고 간호사는 “여름하고 겨울은 수치가 차이가 있어요. 뇌혈관 질환이 있으시니까 계속 혈액순환이 돼야 좋아요”라고 설명했다.
응급실 경력 10년인 고 간호사는 “생명을 구하는 응급실과 달리 환자들과 얘기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베테랑 간호사인데도 혈압·혈당·맥박 체크와 건강상담 말고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는 집에서 환부 소독 등 단순 처치도 할 수 없다. 간호사 역할이 ‘의료기관 내’, ‘의사 지도하에 하는 진료보조’로 단순하게 묶여 있어서다.
경기 안산시 단원보건소 소속 고경남(56) 방문건강관리 간호사가 지난 9일 박혜숙(73)씨에게 3개월 정도 평균 혈당을 알 수 있는 당화혈색소 검사를 하고 있다. 이정한 기자
의사의 방문간호지시서 없이 또는 지시서에 포함되지 않은 의료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환자가 필요하더라도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단 걸 감수하고 간호해야 한다. 가래를 빼는 석션을 하거나 피부가 짓무른 욕창 환자 소독, 소변줄·콧줄 교체 등도 지시서에 없으면 할 수 없다. 가정간호의 경우 환자가 소속 병원에 다니고 담당교수가 있어 그나마 지시서를 받기 수월하다.

장기요양기관 방문간호는 협력 의료기관을 통해 지시서를 받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필요할 때 병원을 찾아 지시서를 새로 발급받긴 쉽지 않다. 보건소와 동주민센터 간호사는 지시서가 대체로 없다.

방문간호사들도 의사 지시·처방 원칙을 중요하게 본다. 다만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 문제다. 서울에서 8년째 찾아가는 주민센터 방문간호를 하는 이지현(가명·42) 간호사는 “보호자도 하는 석션, 소독 등을 방문간호사가 하면 불법이 된다”고 했다. 이 간호사는 “자식 없이 노인부부끼리 사는 경우가 많은데 90대 할아버지 인공항문 관리를 70∼80대 할머니가 해줘야 한다”며 “사고가 날까 봐 겁나지만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와상환자가 변비 때문에 가스가 많이 차서 관장을 원해도 간호사는 직접 간호행위를 하지 못한다. 대신 보호자들이 약국에서 관장약을 사서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인이 할 수 있는 단순 처치를 간호사는 못한다. 이 간호사는 “간단한 세척, 드레싱을 병원 안에선 가능한데, 밖에선 할 수 없으니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방문간호를 확대하고 의사 지시가 필요한 간호행위와 간호사가 현장에서 판단해 할 수 있는 간호행위가 구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택의료 수요는 늘어나는데 방문간호 인프라는 미비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장기요양 재가수급자는 66만8304명인데 방문간호 기관 간호인력은 간호조무사를 포함해 2396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방문간호 이용자 수도 1만5904명으로 전체 수급자의 2.38%에 그쳤다.

지자체도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단원보건소 방문간호팀에는 간호사 12명이 있고, 간호사 1명당 500명 정도 사례관리를 한다. 서울 주민센터 방문간호사는 작은 동의 경우 200∼300명, 큰 동의 경우 400∼500명을 맡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남·안산=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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