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타향살이 마치고…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의 귀향
환수 운동 통해 국내로 들여와
실록박물관, 유물 1천여점 보존·전시
"실록 원본 상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평창=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오대산사고본을 통해 조선왕조의 기록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던 선조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요. 임진왜란(1592∼1598)으로 인해 사고가 소실되자 이후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 설치해 보존에 공을 들였죠.”(서정민 학예연구사)
임진왜란으로 주요 서적을 보관하던 사고가 불타 없어지자, 조선왕조는 급하게 실록을 보관할 ‘외사고’(外史庫)를 깊은 산 속에 지었다. 정족산·적상산·태백산·오대산 사고 등 4곳이었다. 그중 오대산은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하는 상서로운 곳으로, 조정은 월정사를 수호사찰로 두어 보안을 맡겼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실록은 수난을 겪게 된다. 1910년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본은 본격적으로 문화재 유린에 나섰다. 오대산 사고 문화재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대산사고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3년 도쿄제국대로 반출됐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부 소실됐다. 의궤는 1922년 왕실도서 105종 1205책과 함께 일본 궁내성으로 반출됐다.
민족사의 아픔을 간직한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는 200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환수운동을 통해 어렵사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6년과 2017년에 실록이, 2011년엔 의궤가 각각 환수됐다. 상당수가 소실되고 현재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75책, 의궤는 82책이 전해진다.
국내로 환수된 후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왔던 유물들은 순차적으로 실록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실록박물관 직무대리를 맡은 노명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실록박물관은 실록의 원본을 상시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실록의 체계적인 관리와 조사 연구는 물론 지역 문화향유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제1대 왕 태조부터 제25대 왕 철종까지 472년간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보물로 지정된 ‘조선왕조의궤’는 조선 왕실 행사 준비와 시행, 사후 처리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유물 1207여점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수장고,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실감형 영상관 등 다양한 공간들로 구성됐다. 총 3부로 구성된 상설 전시는 조선시대에 왕실 기록물을 어떻게 만들고 보관했는지를 설명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상·그림·사진·지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오대산 사고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실록각’ ‘선원보각’ 등 지방 사고에 걸었던 현판도 볼 수 있다.
1913년 도쿄제국대로 반출된 이후 1932년, 2006년, 2017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돌아온 오대산사고본 ‘성종실록’ ‘중종실록’ ‘선조실록’ 등도 전시해 놓았다. 이 중 ‘성종실록’과 ‘중종실록’은 글자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첨부한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정족산 사고본과 비교하면서 조선시대 실록 편찬의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왕실의 ‘행사 보고서’인 의궤도 만나볼 수 있다. 2011년 일본에서 환수한 오대산사고본 의궤는 모두 19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것이다. 의궤에 찍었던 인장인 ‘유서지보’와 활자본 의궤의 도설을 찍어낸 ‘연화대무의궤도설판’을 비롯해 1906년 경운궁을 중건한 공사 과정을 기록한 ‘경운궁중건도감의궤’, 철종(재위 1849∼1863)이 승하한 뒤 국장과 관련한 절차 등을 정리한 ‘철종국장도감의궤’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오대산 수호사찰이었던 월정사는 2006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통해 환수 운동에 동참했다.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은 “‘환지본처’(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라는 말처럼 문화재도 있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며 “실록이 본래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지역 영혼의 회복, 역사의 회복, 미래로 나아가는 평화로움과 희망의 의미를 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윤정 (younsim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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