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래 칼럼] 신도시 주민들의 반란
신도시 서울 편입 이슈는 매일 교통지옥을 겪는 사람들에겐 생존에 직결된 문제
국토 균형 개발 美名 아래 고통 감내하라는 건 횡포
인구 12만명의 위례신도시는 ‘교통의 섬’으로 불린다. 지하철·버스 등 열악한 교통 인프라 때문이다. 위례신도시와 서울 강남을 잇는 위례신사선 건설은 신도시 입주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2010년 무렵 아파트 분양 당시 정부와 건설사들은 2021년 위신선이 완공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인근 성남·하남 구(舊)시가지 시세에 비해 분양가를 20~30% 높게 책정하고 가구당 평균 1400만원의 교통 분담금까지 물렸다. 주민들은 “정부가 약속한 지하철 개통이 10년 가까이 늦어진 것은 명백한 분양 사기”라며 신도시 개발 사업 주체인 LH공사와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에 나설 태세다.
상당수 주민들은 위례신도시가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하남 등 3개 지자체로 나뉘어져 있는 게 위신선 지연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위례 주민들의 60% 이상이 경기도민이니까 서울시가 온갖 민원에 시달려 가며 위신선 건설을 서둘러봐야 향후 선거에서 득(得)이 될 게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우여곡절 끝에 2020년 위신선 예비 사업자로 GS건설 컨소시엄을 선정하고도 본계약을 체결할 때까지 3년 넘게 끌었다. 김광석 위례하남 입주자연합회장은 “서울시의 버스 총량제 때문에 버스 노선 신설 때마다 전쟁을 하다시피 했는데 그나마 생긴 버스도 서울시 경계인 송파구까지만 운행을 한다”면서 “위례가 3개 지자체로 쪼개져 있다 보니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고 했다.
김포나 구리 등 서울 인근 도시들이 서울시 편입을 요구하는 첫째 이유도 교통난이다. 구리시 인터넷 홈페이지의 시민 게시판에는 “서울로 매일 출퇴근하기 위해 새벽 일찍 나가서 버스를 타고 퇴근 때에도 버스 두세 대를 보내고 간신히 귀가한다” “콩나물 시루 경기도 버스가 아닌 쾌적한 서울 버스 타고 출근하고 싶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경기북도 편입 절대 반대” 등 구리시의 서울 편입을 지지하는 글들이 수십 개씩 올라와 있다. 김포시에 사는 40대 회사원도 “김포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버스로는 2시간, 승용차로는 새벽 6시에 출발해도 1시간 30분이 걸린다”면서 “주민들이 하루 3~4시간 자동차 안에 갇혀 있다 보니 김포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도 유독 정형외과가 많다”고 씁쓸해했다.
신도시와 서울 도심을 잇는 교통망 확충이 힘든 것은 서울시가 사실상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를 설치해 신도시 교통난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인천·경기 등 지자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데다 도심 혼잡과 환경을 우려하는 서울시의 문턱을 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김병수 김포시장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버스 노선을 증편하거나 지하철 연장을 추진할 때마다 번번이 서울시의 반대에 부딪쳤다”면서 “서울로 편입되면 현안인 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도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골병라인’이라고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역시 당초엔 서울 도심을 통과하는 9호선 연장으로 추진했으나 전동차 8량 이상의 중전철을 요구하는 서울시와 갈등을 빚었다가 전동차 2량짜리 경전철 라인으로 건설됐다. 김포시는 골칫거리로 전락한 경전철 건설에 무려 1조5000억원의 헛돈을 썼다.
수도권 2기 신도시 개발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본격 추진됐다. 하지만 신도시 10곳 중 판교·광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통 인프라가 거의 낙제점 수준이다. 위례·인천검단·파주운정·평택고덕 신도시는 교통 계획 이행률이 60%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 정부 정책보다도 “죽어도 강남”을 외치는 부동산 유튜버를 더 신뢰하는 세상이 됐다.
수도권 도시들의 서울 편입을 놓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방자치를 무력화하는 반란, 총선용 정치쇼”라고 비판하지만 하루하루 출퇴근 지옥을 겪어야 하는 신도시 주민들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국토 균형 개발이라는 거룩한 구호 아래 신도시 주민들에게 무작정 고통을 감내하라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횡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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