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15] 한동훈 장관의 잘못
자료들을 무작위로 섭렵하다 고(故)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agner) 하버드대 한국학 교수가 1985년 10월 28일 밤 KBS TV 단독 대담 프로에 출연한 영상을 보았다. 그의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은 자주 뒤적이곤 하는 역저(力著)인지라 묘한 감상에 젖었다. 와그너는 조선 지배 계층의 실체와 구조 연구에 탁월했다.
교과서는 다음같이 얘기한다. 성종 때 중앙 정계에 등장해 선조 시대에 정권을 장악한 사림(士林)은, 한양 거점 대지주 기득권 부패 훈구(勳舊)와는 달리, 지방 출신의 청렴결백한 주자 성리학적 개혁 세력이라고. 한데 1960년대부터 와그너 교수는 이 선악 대립이 허상임을 밝힌다. 그는 단언한다. “훈구와 사림의 배경에 차이는 없다.” 사림 대부분은 조선 상위 1%, 0.1% 안에 드는 특권층이었다. 가령 조광조는 지조형 낙향 선비 집안이 아니라 한양 토박이며 고조부가 건국 2등 공신이다. 사림들의 재산과 권세, 혈족과 학연 등의 화려함은 예를 들기 숨차고 많은 부분 훈구와 엮이어 있다. 이런 사실들은 ‘일부러’ 무시되다가 2000년대 초를 거치면서 다른 역사학자들에게서도 실증된 지 오래다.
그러나 고독한 진실은 대중화된 거짓 앞에 무기력하다. 역사는 한번 잘못 설정돼 상당 기간 지속되면 교정하기가 죽은 자를 되살리기만큼 어렵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자신을 ‘민주화 투사’라고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일이 없다. 사회주의 혁명 세력이거나 주사파 김일성주의자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구호를 가면(假面) 삼아 변장했고, 문민 시대에 스며들면서 민주화 운동가로 ‘신분 세탁’을 한 것이다.
인민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다. 진정한 민주제도는 자유민주주의뿐이다. 자유민주화를 원한 대중, 민주화 세대는 있었다. 하지만 자유민주화를 원한 운동권은 없었다. 전두환의 적이었다고 해서, 강도가 예수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훈구와 사림처럼 연구가 필요하지도 않고 몇 백 년 전 일도 아니다. 당장 나부터가 그 시대의 증인이다. 현 여당 국회의원들이 천치(天痴)인 것은 저 ‘빤한 거짓말’의 프레임 앞에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대협보다 훨씬 악성인 한총련 출신 파시스트들까지 국회의원이 되려 한다. 살인과 살인 은폐도 한 자들이다. 그들이 전대협 출신들에 이어 정통 민주 야당을 점령하려는 시점이다. 저들에게서 ‘민주화’라는 단어를 몰수(沒收)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정치에 미래가 있다. 며칠 전, 비리 수사를 받고 있는 한 전직 당대표가 법무부 장관에게 욕설을 하자, 법무부 장관은 젊은 시절 운동권으로 민주화 투쟁 좀 했다고 평생 갑질이냐며 맞받아쳤다. 민주화 운동을 한 적이 없는 자에게 그랬으니, 법무부 장관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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