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머스크씨, 내 집중력을 훔쳐가지 마세요

변희원 기자 2023. 11.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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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씨름 끝 영화 16분 봐
인간은 산만해진 게 아니라 빅테크에 집중력 도둑맞는 중
이제 비행기까지 도둑이 든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가 2022년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서 열린 마이크 시버트 T모바일 CEO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다국적 통신회사 T모바일과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기술 제휴를 통해 통신 불가 지역 제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2022.8.26/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 X의 스타링크가 비행기에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스타링크는 지구 표면에서 약 550km 떨어진 저궤도에 수천 개의 통신 위성을 발사해 전 세계 지상은 물론 비행기와 선박에도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다. 덕분에 올 들어 국내외 항공사가 앞다퉈 기내 와이파이를 도입하고 있다. 이 소식에 한숨부터 나왔다. 머스크는 꼭 그렇게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집중력까지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을까.

처음엔 나이 때문인 줄 알았다. 그다음에는 책이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식은 줄 알았다. 지난 주말 밤,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가 나오는 넷플릭스 영화를 보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한 지 2분 15초 만에 익숙한 소리가 울렸다. 까톡! 메시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돌려봤다. 영화가 6분쯤 지났을 때 모니터 한편에서 운동화를 추천하는 알림이 뜨자 절로 거기에 마우스를 갖다 댔다. 온라인 쇼핑몰을 배회한 뒤 다시 영화를 보기 위해 자세를 다잡았지만 10분쯤 지났을 때 카카오톡 알람이 울렸고 곧 전화까지 걸려왔다.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렀다. 두 시간 동안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동안 본 영화 길이는 총 16분. 책상 앞에 앉아 영화 한 편을 진득이 보는 게 왜 이리도 어려운 일이 됐을까.

집중력 도둑 때문이었다. 이 도둑은 도처에 있는데 주로 스마트폰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유튜브는 물론 쿠팡을 비롯해 각종 광고 알림을 보내는 온라인 쇼핑몰은 대도(大盜)다. 넷플릭스처럼 알고리즘을 앞세워 추천 콘텐츠를 들이미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는 신종 도둑에 속한다. 스마트워치나 태블릿, PC에서 암약하는 좀도둑도 있다. 모든 도둑들은 인터넷을 타고 돌아다니며 성별·나이·국적을 불문하고 집중력을 훔쳐간다.

그렇게 느낀 건 나만이 아닌 듯하다. 올해 서점에서 인문 부문 1위에 오른 책 제목은 ‘도둑맞은 집중력’. 이 책에 따르면 2020년도 되기 전에 미국인의 하루 평균 스크린타임(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을 보는 시간)은 3시간 15분을 기록했다. 한국인은 이미 2021년에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일 평균 5시간을 돌파했다. 여느 범인(凡人)처럼 집중력을 잔뜩 도둑맞은 이 책의 작가 요한 하리는 의사와 과학자, 심리학자와 임상 실험을 통해 우리가 의지가 나약해서, 집중하려는 노력을 안 해서 도둑들에게 집중력이 털리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도둑질은 마크 저커버그나 세르게이 브린과 같이 동시대의 가장 똑똑하다는 자들이 긴 시간과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서 설계한 결과물이다. 집중력 훈련을 받았거나 초인적 결기를 갖고 있거나, 이마저도 아니면 구글과 메타를 앞설 만큼의 전략을 짜지 않는 이상 이 도둑질에 당할 방법이 없단 얘기다.

인터넷을 끊거나 소셜미디어를 탈퇴하는 ‘러다이트’ 유의 전복을 꿈꾸는 게 아니다. 탕후루와 같은 새로운 음식이 유행할 땐 의사와 과학자는 물론 정치인까지 나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런데 왜 기술 분야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올 땐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회적 이득과 손실 중 무엇이 더 큰지 따져보는 이가 없는 걸까.

불편한 좌석, 밀폐된 실내와 답답한 공기, 맛을 논하기 어려운 두세 끼의 기내식까지, 도무지 좋아하기 힘든 장거리 비행을 즐기게된 건 인터넷이 없는 이 공간이야말로 집중력 도둑에 대한 방범이 완벽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서부를 다녀오는 왕복 비행기에선 CD 네 장을 건너뛰기 없이 들으면서 500쪽이 넘는 소설 두 권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행기마저 무력하다. 우리의 집중력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으며, 어디서도 안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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