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그 많던 친윤과 중진은 어디 갔을까

강필희 기자 2023. 11.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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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출마 요구에 묵묵부답…소나기만 피하자 계산인가
일부는 세과시로 양지 집착, 뽑아준 시민을 부끄럽게 해

일주일 전 부산 사상구 학장동에서 한 행사가 열렸다. ‘서부산 행정복합타운 착수식’이다. 낙후한 서부산에 부산시 제2 청사를 지어 동서 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착공을 2년이나 앞두고 별도의 착수식이라? 게으른 탓인지 과문한 탓인지 30년 가까운 기자생활 동안 ‘착수식’이란 것도 처음이거니와 그렇게 대단한 행사인 줄도 몰랐다. 지역 국회의원인 장제원 의원은 물론 부산시장과 시의회 의장까지 총출동했다. 지난 주말엔 한술 더 떠 경남 함양에서 회원 4200여 명과 대규모 원정 산악회 모임까지 가동했다. 마침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영남 중진의 험지 출마를 연일 요구하던 참이다. 이 정부 실세 중 실세로 꼽히는 장 의원이고 보니 이런 모습이 “죽어도 안방 사수 하겠다”는 위력 과시로 읽히지 않으면 이상하리라.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당 지도부·친윤·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결단을 촉구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당 차원의 반향이 없다. 당 최고위원회는 비주류 인사들의 포용을 요구한 1호 혁신안은 즉각 받아들였으나, 정치 개혁을 골자로 하는 2호 혁신안과 물갈이 권고에 대해서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대상자 40여 명 중 부산·울산·경남(PK) 의원이 절반쯤 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의 과반이 PK 의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 많던 ‘친윤’과 ‘중진’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혁신위로부터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의원들에게 쏟아지는 당 안팎의 시선은 따갑다. 그나마 명시적인 대꾸라도 한 건 대구에서 5선을 쌓은 주호영 의원으로 “서울 갈 일 없다. 대구서 시작했으면 대구서 마친다”며 혁신위 요구를 거부했다. 울산 4선인 김기현 당 대표는 한때 측근을 통해 “큰 영광을 다 이뤘다”며 모종의 결단을 시사했으나, 이후 “모든 일엔 시기와 순서가 있다”고 했다. 뉘앙스가 바뀌었다. 부산 경남 의원들은 이런 반응조차 없이 오히려 자기 정치에 더 열을 올린다. 3선의 장제원 의원이 딴청 피는 동안 5선의 조경태 의원은 ‘메가 서울 만들기’의 다른 이름인 ‘뉴시티 프로젝트’ 위원장을 맡아 혁신위에 신경 쓸 새 없다는 기세다. 5선의 서병수, 3선의 김도읍·이헌승, 또 다른 친윤 의원도 모른 체 하고 있다.

물갈이 대상자 중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역에 예산 따서 도시철도 놓고 공원 만들고 공단 개조하는데 힘을 보탰을 뿐, 다른 의원들처럼 돈봉투를 받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화살이 우리에게 쏟아지냐”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악과의 비교우위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3당 합당 이후 사실상 부산을 장악한 보수 정당의 역사는 기업도 젊은이도 떠난 부산의 위상 추락 역사와 완전히 궤를 같이 한다. 그 속엔 공천만 받으면 당선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무혈입성 구조가 도사린다. 다선 의원이 즐비하고 국회의장을 연이어 배출했어도 중앙 정치 무대에서 선수에 걸맞은 영향력이나 존재감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그 증거다. 이래도 보수 정당이 지금의 부산에 책임이 없는가.

민주당 계열 정당의 토대를 다진 건 김영삼과 김대중이지만, 호남을 넘어 수도권까지 명실상부 전국 정당으로 당세를 확장한 교두보는 노무현이 만들었다. 민주당 계열 국회의원이 꼬박꼬박 배출되는 현재도 보수 텃밭인 부산은 여전히 험지다. 노무현은 어렵사리 재선의원이 된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를 내놓고 다시 부산에서 국회의원과 시장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다. 그렇게 ‘바보 노무현’이 탄생했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보수 정당엔 ‘바보 김기현’도 ‘바보 장제원’도 없다. 부산 경남의 따뜻한 아랫목을 벗어나면 죽는 줄 안다. 수영장에서 수영만 해 온 사람들이 바다 파도에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이치와 같다. 사실은 그게 진짜 실력이기도 할 것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지더라도 그냥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 자신이다. 보수의 핵심가치가 애국심이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지만, PK 정치인에게 그건 교과서에나 있는 구절일 뿐이다.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가 아니라 늙은 정치인과 바다만 남은 도시다. 전국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경쟁할 엄두도 안 내는 정치인들이 부산을 변방화 주변화시키는 데 일조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실세”요 “내가 친윤이요, 중진(重鎭)”이라 하던 이들이 입을 닫은 채 ‘비윤’ 혹은 ‘경진(輕鎭)’ 코스프레 하는 모습을 보는 지역 주민의 심정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차출이라는 소나기만 피하면 국회의원 당선은 따 놓은 당상처럼 행동하는 그들에게 부산 시민이 모욕감을 안 느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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