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1만원의 기적, 위트컴 장군
이름은 때로 호칭이나 식별 이상의 특별함을 담고 있다.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안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Wall of Remembrance)’가 그렇다. 2006년 10월 제막된 이 추모명비에는 6·25전쟁 때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산화한 17국의 유엔군 전몰장병 4만896명(실종자 포함) 이름이 적혀 있다.
‘AUSTRALIA/ABELL, DONALD WILLIAM… WYOMING/SAMUEL L WOLFE.” 호주군 아벨씨를 시작으로 미국 와이오밍주 출신 새뮤얼씨까지 알파벳 순서로 새겨진 이름들은 높이 1.5~2m, 폭 0.73~1.2m 크기의 화강석 140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추모명비 입구엔 이해인 수녀가 쓴 짧은 헌시가 적혀 있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지난 11일 70년 전 이들의 이름에 ‘오늘의 이름’이 답했다. ‘감경태… 황희경, 무명… Unknown.’ 이날 제막된 리처드 위트컴(Richard S. Whitcomb) 유엔군 산하 미군 제2군수사령관 동상 성금 기부 시민 1만6000여 명의 명단이다.
위트컴 장군은 6·25 막바지인 1953년 부임했다. 그해 11월 27일 발생한 부산역 대화재 때 군수창고를 열어 피란 이재민 3만여 명을 도왔다. 상부 허락 없이 군수물자를 멋대로 민간인에게 나눠줬다는 이유로 미국 의회에 불려가 추궁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은 총칼만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다”라고 당당하게 말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예하 88개 부대와 지역 보육 시설을 연결해 전쟁고아들을 후원했고, 메리놀병원·성분도병원·고(故) 장기려 박사가 초석을 다진 복음병원 등의 건립을 도왔다. 협소한 부지에 있던 부산대를 지금의 금정구 장전동 50만평(165만㎡)으로 이사 갈 수 있도록 땅도 마련해 줬다. 퇴임 후 한국에 정착해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엔기념공원에 묻혔다.
그의 활동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부산에서 훈장 추서 운동이 일었고 정부는 작년 11월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내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 시민 위원회’가 꾸려졌고, “1인당 1만원씩, 3만명 참여로 3억원을 모으자”는 캠페인이 시작됐다. 누군가 SNS에 “국가 예산 말고 기업들 팔 비틀지 않고 70년 전 부산역 대화재 때 수혜를 입은 3만명, 딱 그만큼만 3억원을 모은단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참여다. 1만원의 기적이 한국병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썼다.
1년도 안 된 지난 6월 10일 3억원이 달성됐다. 1만3000여 명이 참여했다. 7월 말 모금 완료까지 모두 1만8300여 명이 3억6500만원을 모았다. 1인당 1만원씩은 아니었지만, 진영과 당파를 떠나 부산 시민들에게는 ‘1만원의 기적’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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