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모두를 위한 열린 인재 정책

김정선 동서대 총괄부총장 2023. 11.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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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동서대 총괄부총장

“망할 여성들을 받지 마세요! (Keep the damned women out)” 미국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 낸시 웨이스 말킬 박사가 2016년 출간한 책 제목이다. 미국의 명문사학 예일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던 1969년, 이에 반대하는 졸업생이 대학에 보낸 편지의 문구이기도 하다. 우리를 놀랍게 하는 것은 당시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게 된 계기가 여성 운동가들의 압박 때문도, 남녀평등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결정권을 갖고 있던 남성들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즉, 남학생만의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당시의 대학은 마치 수도원 같은 분위기가 돼버려서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아이비리그 대학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인재풀을 채워줄 남학생들의 수가 부족하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은 인재난으로 연결돼 가고 있다. 부산을 포함한 지방에서 체감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선진국에서는 국가의 전략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첨단과학기술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데, 특히 여성과 다문화 인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실천 단계에 와 있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이 2013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인재 경쟁력지수 (GTCI)’는 국가별로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을 이끌 인재를 키우는 능력을 평가한다. 지난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글로벌 인재 경쟁력지수 상위 25위에 들지 못했다는 기사를 냈다. 뿐만 아니라, 올해 과학논문 인용 순위도 10위권을 벗어났고, 세계경제포럼의 젠더격차지수는 145개국 중 무려 125위로 떨어졌다. 한국은 다행히 젠더격차지수는 105위로 일본을 앞섰고, 인재 경쟁력지수도 24위로 26위인 일본을 처음으로 앞섰다. 그런데, 인재 경쟁력지수 순위를 살펴보면 스위스 싱가포르 미국을 포함한 10개 경제 강국들은 10년간 견고히 10위권 순위를 지켜오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경제지표로는 선진국에 들어선 지 오래지만,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원인이 젠더격차지수로 보여지는 유연하지 못한 인재 정책 때문이다. 인재 경쟁력지수 순위가 높은 국가들은 임금과 교육 수준이 높은 것에 더해 외국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규제가 적고, 여성과 취약계층의 성장 장벽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젠더격차지수 순위가 지난 20여 년간 하위권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다문화 인재의 진입장벽 역시 높은 편이다.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K-문화를 가진 나라, 가장 혁신적인 나라, 놀라운 경제성장을 보인 나라의 위상에 맞는 열린 과학기술인재정책이 시급하다.

올해 노벨 생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카탈린 카리코 박사는 1985년 서른의 나이에 남편과 2살 된 딸과 함께 연구자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고향인 헝가리를 떠나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1990년부터 mRNA 치료제 개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시작한 연구는 약 30년 후 코로나19 치료제로 많은 생명을 살리게 됐고, 그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했다. 카리코 박사의 연구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2012년 드루 와이즈만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협업을 통해 mRNA 치료제 개발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 박사처럼 카탈린 카리코 박사는 강한 집념으로 꿋꿋이 긴 세월 연구에 매진한 탁월한 과학자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사람 모두 이민자였고, 여성이었으며, 이들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협업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긴 연구 과정 덕분에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유연하고 열린 과학기술 인재 영입 정책은 국가의 경쟁력을 높임은 물론 모두를 위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우리도 이제 현명한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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